최근 네이버 웹툰에 '틴맘'이라는 이름의 만화가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십대 여고생이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는 내용의 만화인데,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네티즌들의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비판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여주인공은 임신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하는데, 이는 남성에게 높은 수준의 성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시대의 기치에 위배된다는 점. 두 번째, 만화 안에서 여주인공은 큰 혼란 없이 차분하게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는데, 십대 독자가 이를 보고 혼전 임신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는 점. 세 번째는 만화의 선정성입니다.
만화가 아예 웹툰 플랫폼에서 퇴출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이런 반응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진단해 보고, 과연 합당한 비판인지 따져 보려고 합니다.
'틴맘'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여주인공이 남성을 임신의 책임에서 해방시키는 내용이 거북하다'입니다. 만화 속 세상이 왜 독자가 원하는 이상과 합치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술의 목적은 독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등장인물이 독자의 비위에 맞춰 예쁜 말만 하고 예쁜 행동만 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가 옳다고 규정한 가치관을 지닌 예술만 선발하여 대중에게 보여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 선전입니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만화 속에서 여주인공은 남자친구에게 임신과 육아에 필요한 비용 분담을 청구하지 않는데, 이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도전이 아닙니다. 공상 속 캐릭터들의 행동은 현실 여성의 권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리의 당위성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면 픽션 속의 캐릭터의 행동을 보고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틴맘'을 향한 또 다른 비판은, 여주인공이 태연하게 임신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고 십대가 임신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독자가 만화가에게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합치되는 그림을 그려 주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임신을 가벼이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예술만 보고 살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으로, 여고생이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에 대해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을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여주인공이 안절부절못하며 패닉 상태에 빠지는 그림을 보아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임신은 무서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침착하게 대처해야 할 대상이고, 또 우리의 십대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틴맘'의 여주인공은 오히려 우리 사회가 장려할 십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만화가 너무 선정적이고, 여고생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현재 4화까지 연재된 만화를 직접 살펴본 결과 미성년자의 접근을 차단해야 할 만큼 선정적인 장면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성관계에 관련된 장면이 나온 적도 없고, 여주인공의 성기가 노출된 적도 업습니다. 여주인공이 집 안에서 편한 옷을 입고 입는 것을 왜 꼭 성(性)과 연관 지어 바라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만화에 성관계 등 매우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면 성인물로 등급을 조정하면 될 일입니다.
본 만화가 여고생에 대한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성범죄가 저질러지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인물 접촉과 성범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픽션과 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된다면 아동 성애를 다룬 소설인 '롤리타'는 당장 금서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영국의 계몽 작가 에블린 홀이 한 말입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가 위협받는다면 당신의 편에 써서 싸울 것입니다.' 불편한 의견을 포용성 있게 받아들이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상징입니다.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예술을 검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조지 오웰, 알더스 헉슬리 등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이미 탐구된 바 있습니다.
만약 '틴맘'이 네이버 웹툰에서 퇴출된다면 이는 예술가의 목소리가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당한 전례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사회의 억압에서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계몽 철학자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것입니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숭고한 가치가 다치지 않도록, '틴맘'도 포용성 있는 자세로 바라보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