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여름 보리가 수확되기 전까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울고 넘었던 보릿고개가 있었다. 이를 경험한 해안가 사람들의 구황식품이었던 '톳'은 곡식과 섞어 톳밥을 만들어 허기진 배를 채웠던 암울한 시대의 기억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톳이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비상의 날개를 펴고 있다.
톳을 말할 때 '산삼, 녹용보다 질병치료에 더 좋은 효과를 본다'라고 해서 '바다의 불로초'라 부르기도 한다. 톳의 모양이 '사슴 꼬리와 닮았다' 해서 한자어로는 '녹미채(鹿尾菜)'라 한다.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에 의해 양식줄을 탈피해 해안가로 떠밀려 온 톳을 '풍랑초(風浪草)'라고 하며, 지방에 따라 '톳나물(경상도)', '톨(제주)', '따시래기(전북 고창)'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밥상에 늘 빠지지 않는 톳나물 요리라 하여 '히지키(ひじき)'라고 부른다.
톳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물살이 완만한 암반층에서 착생하는 자연산 톳과 바다의 부유물을 띄어 대량 생산하는 양식산 톳으로 구분한다. 제주도, 신안, 완도지역을 비롯해 연간 가장 많은 톳 생산량을 자랑하는 진도 조도(鳥島) 해역이 주요 생산지다.
진도 조도 해역의 톳은 5월 초에서 6월 중순까지 두 달 남짓 짧은 기간 동안 비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 채취와 자연건조 작업을 동시에 거친다. 수협 수매의 요건을 충족하면 생 톳을 건조한 톳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왜 도로에 '검정 페인트 칠'을 했을까?
전국 톳 최대 생산지, 진도군 조도군도는 목포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유인도 35개, 무인도 119개로 총 154개의 섬들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섬이 분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도군도에서 톳 양식에 종사하는 어민의 수는 대략 200여 명이 넘는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톳과의 전쟁은 정오가 넘은 시간까지 계속된다. 채취선들이 바다를 오가며 톳을 실어 나르고 섬 아낙들은 생 톳을 엷게 펴 널면서 톳 속에 들어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데 허리를 펴지 못한다. 톳 생산량에 비해 한정된 자연 건조장이 턱없이 부족해 차량이 다니는 한쪽 도로변까지 자연 건조장으로 사용하면서 '검정 페인트 칠'을 해 놓은 듯 진풍경이 벌어진다.
요즘에는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고향 섬마을로 귀어한 청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추세다. 4년 전 서울에서 인쇄업에 종사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온 박진우(48, 진도군 조도면 명지마을)씨는 "직장생활의 압박감에서 해방되어 너무 좋고, 무엇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또한, 20년째 톳 양식을 하고 있는 한영수(57, 진도군 조도면 신전마을)씨는 "비록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톳 양식으로 자녀들을 키우고 시집ㆍ장가를 모두 보냈다"면서 "섬 생활에서 톳은 어민들에게는 자식보다 더 귀한 효자다"라고 덧붙였다.
톳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조리 된다. 가장 흔하게 할 수 있는 '톳 초무침'을 시작으로 두부를 첨가해 만든 '톳 무침 톳밥', '톳 죽', '톳 비빔밥', '톳 된장찌개', '톳 장아찌'까지 있다.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觀梅島, 매화마을)에 유일한 짜장면 집 메뉴 중 '톳 짜장면'이 그 중 별미로 손꼽힌다.
한국 톳,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다
진도군 수협 조도 지점은 "지난해 조도 해역(조도면 가사군도 톳 생산자 제외)의 톳 연간 생산량은 1250t(52억 상당)으로 전국 톳 생산량의 50%를 육박한 수치"라고 밝혔다. 조도 해역에서 생산되는 톳은 100% 일본 수출 길에 오른다.
일본에서는 매년 9월 15일을 '톳의 날'로 제정되어 있다.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이 날 행사에서는 모든 국민들에게 톳 섭취를 권장하는 캠페인까지 벌어진다. 학교에서는 톳을 의무급식으로 학생들의 건강과 성장발육에 힘을 쓰는데 앞장서고 있다. 일본인들은 진도 조도해역에서 생산되는 톳을 최고품으로 알아준다고 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다른 지역에 비해 커 '톳의 영양을 풍부하게 해 준다'는 것이 이유다. 앞으로도 며칠간 진도 조도에서는 '톳의 전쟁'이 계속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신문 '광주in'의 섬 이야기 칼럼연재 글이 있으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