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글로벌 비영리조직 ‘아쇼카’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체인지메이커)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관행과 시스템을 바꾼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체인지메이커들의 도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스타트업, 비영리 단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학원이 있다. 선생님의 자질은 자체 검증 시스템으로 보장한다. 그런데도 당장 수업료는 받지 않는다. 취준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다. 수업료는 취직 후 월급을 받는 시점부터 갚아 나가면 된다. 즉 후불제다.
영영 취직을 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모든 수업비는 '공짜'다. 비현실적인 교육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 사업 모델이다. 소셜벤처 '학생독립만세(아래 학독만)가 고안해낸 방식이다. 장윤석 학독만 대표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사기라는 의심을 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처음엔 진짜 사기 아니냐며 의심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학독만을 나중에 엄청난 돈을 갚아야 하는 대부업체쯤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었고요."
학독만은 이용자들의 의심을 줄이기 위해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투자를 받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실제로 학독만은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받은 기관명, 지원 금액 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수업이 먼저, 돈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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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윤석 학생독립만세 대표 “취직할 때까지 수업료 공짜” 장윤석 학생독립만세 대표는 “입시, 취업, 이직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선(先)과외, 후(後) 지불’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이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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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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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독만은 '선(先)과외, 후(後) 지불'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이다. 현재는 주로 취준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그 시작은 고등학생 3학년을 대상으로 한 과외였다. 고등학생들은 과외비 부담 없이, 회사가 검증한 과외 선생님에게 먼저 수업을 받았다. 수업료는 학생이 대학에 입학한 후 내고, 과외 선생님에게도 이때부터 과외비를 지급했다. 비용은 시간당 1만5000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2017년 회사를 세운 후 1000명이 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학독만을 거쳐갔다. 장 대표는 학독만의 사업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봉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유료 과외라고 할 수도 없다. 학독만의 독특한 수업료 지불 방식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육 시장에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어요. 봉사 혹은 유료 과외. 그 중간은 없었거든요. 이 두 가지 모두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이 학독만 선생님으로 지원하는 것 같았어요. 사교육이 가진 허점 때문에 봉사는 하고 싶은데, 막상 무료 봉사는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요."
선생님 100명을 모집하는 데 2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린 것도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서다. 사업 설명만 들으면 학독만은 학생에게는 유리하지만 선생님에게는 위험부담이 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독만을 통해 과외를 할 경우 수업료를 최소 몇 개월 후에나 받는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선생님으로 지원하는 이들의 수가 학생 수보다 많다.
교육도 투자, 소득공유후불제 도입한 이유
장 대표는 학독만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교육 투자' 개념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학독만은 사업 영역을 취준생 교육 분야로 확대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소득공유후불제'라는 개념을 들여 왔다.
"최근 미국 교육계에서는 소득공유후불제가 대세예요. 미국은 학자금이 굉장히 많이 들잖아요. 즉 대출을 받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막상 졸업해도 취직을 못해 돈을 못 갚고 파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소득 공유제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소득공유후불제는 취업준비생이 먼저 강의를 듣고, 취업 후에 정해진 기간 동안 연봉의 일정 비율을 후불로 납부하는 제도다. 수업을 먼저 듣는 대신 학생이 취업한 이후에 소득을 선생님과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 비율은 강의의 난이도, 강의를 듣는 기간에 따라 정해진다.
학독만은 고등학생 과외의 경우 대학에 못가거나 재수를 선택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과외비를 갚도록 했다. 적어도 선생님이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소득공유후불제에서는 다르다. 학독만은 학생이 취직을 하지 못하면, 수업료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 대신 학생이 취업했을 때 돌아오는 혜택도 커진다. 수업료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월급의 일정 비율로 학생마다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연봉 3000만원을 주는 회사에 입사해 연봉의 10%, 즉 300만원을 수업료로 낼 것으로 예상했던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가르쳐서 연봉 5000만원을 주는 회사에 취직했다면, 선생님은 200만원의 추가 수업료를 받게 되는 거예요. 교육 투자의 개념인 거죠. 선생님은 투입한 비용을 보전하면서도 또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자신이 담당하는 학생을 필사적으로 가르치게 되는 거예요."
취준생들이 학독만을 의지하는 이유도 '취직'은 취준생들과 학독만이 공유하는 목표라서다. 장 대표는 "일반적인 사교육과 학독만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보통의 학원은 더 많은 학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교육 콘텐츠 등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취준생의 실제 취업 여부에는 관심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학독만은 취준생이 취직을 해야 수익이 나기 때문에 취업 여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장 대표는 "학생들로부터 '학독만은 우리와 구조적으로 한 배를 타고 있어서 믿음이 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먹튀족 있지만 목표는 소득공유제 정착
소득공유후불제 사업은 확장세다. 학독만은 지난해 9월 항공사 지상직 승무원을 준비하는 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을 사들였고, 취준생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선 투자' 했다. 두 달의 프로그램을 끝낸 이들 중 100여명이 취직에 성공해 현재 월 30만원의 소득을 공유하고 있다. 신규 학생 수도 매달 30명에서 40명가량 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사업에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교육을 먼저 받은 후 취직을 하고도 수강료를 내지 않는, 이른 바 '먹튀족'도 간혹 있다. 장 대표는 "지금까지 학독만을 거쳐 간 학생 중 (돈을 내지 않은 이들은) 4명 정도 있었다"면서도 "이 정도면 투자 대비 상환율은 꽤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학독만은 후불제의 리스크를 줄이고 신뢰를 높이기 위해 검증 시스템을 마련했다.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들은 먼저 자신에게 소득공유 후불제가 필요한 이유를 상세히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또 후불제 모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교육을 받고 심리 테스트도 거친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장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소득공유후불제가 정착될 거라고 믿고 있다.
"학독만은 우리 사회를 바꾸고 싶어요. 미국에 있는 많은 장학재단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의 장학재단들도 조만간 소득공유후불제 개념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학독만이 먼저 시도해 보고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보완해 놓는다면, 그 과정이 훨씬 순조롭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