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막말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설화에 비판 여론이 솟구치자 당 대표가 직접 나서 발언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당부할 정도다. 그러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당 대표의 발언이 나온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막말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쯤되면 '막말방지법'이라도 발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황교안 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 회의에서 "우리 당이 소위 거친 말 논란에 시달리는 것과 관련해서 안타까움과 우려가 있다"며 "항상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해 심사일언(深思一言), 즉 깊이 생각하고 말하라는 사자성어처럼 발언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국민이 듣기 거북하거나 국민의 마음에서 멀어지는 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곧 말실수가 되고, 막말 논란으로 비화된다"라며 "문재인 정권과 여당, 여당을 추종하는 정당·단체의 비상식적이고 무례한 언행에 대해 우리 당이 똑같이 응수하면 안된다"라고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의 당부는 도루묵이 됐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선교 사무총장이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위해 바닥에 앉아있던 기자들을 향해 "아주 걸레질을 하는구먼. 걸레질을 해"라고 막말을 내뱉은 것. 한선교 총장은 이후 입장문을 통해 "기자들의 취재환경이 열악해 고생한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라 해명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그에 앞서 지난달 31일에는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6월 1일에는 민경욱 대변인이 구설에 올랐다. 정용기 의장은 충남 천안에서 열린 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지도자는 신상필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야만성을 뺀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지도부로서 더 낫다"고 말해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민경욱 대변인 역시 지난 1일 페이스북에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에 문재인 대통령이 구조대를 급파하며 신속한 대응을 주문한 것과 관련 "안타깝다. 일반인들이 차가운 강물 속에 빠졌을 때 이른바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라고 적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민경욱 대변인은 "안타깝다"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구조대를 지구 반바퀴 떨어진 헝가리로 보내면서 '중요한 건 속도'라고 했다"라는 문구을 덧붙여 유람선 침몰을 정쟁에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갑작스런 비보에 망연자실해 있을 가족들의 심경을 헤아리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황교안 대표가 집안 단속에 나선 것은 이같은 잇따른 막말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실시한 5월 5주차 주간집계(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1.9%p가 하락해 30.0%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눈여겨볼 대목은 지지율 하락의 실질적인 배경이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과 황교안 대표의 GP(전방 감시초소)발언 논란, 김현아 원내대변인의 문 대통령 '한센병' 발언 등의 막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당의 잇단 막말이 상승세를 타고 있던 당 지지율에 악재로 작용한 셈이다.
최근 한국당은 막말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만 해도 7일 한선교 총장이 당직자 실무 회의에서 사무처 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어 노동조합으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를 받았고, 11일에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 지지자를 향해 일베 등 극우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달창'(달빛 창녀단)이란 단어를 사용해 여성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16일에는 김현아 원내대변인이 한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빗대 물의를 빚기도 했다.
4월에는 세월호 관련 망언도 터져나왔다. 참사 5주기였던 16일 "세월호 그만 좀 우려 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되는 거죠..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글을 옮겨 적고(정진석 한국당 의원),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는 막말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그보다 앞서 2월에는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이른바 '5·18 망언'과 전당대회 도중 논란이 된 김진교 당시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막말이 뜨거운 이슈가 되기도 했다 .
한국당 내부에서 막말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관련해 역사학자인 전우용씨는 지난달 11일 트위터를 통해 "'천박한 언어'를 써야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다고 보는 건, 자기 지지층이 '천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꼬집은 바 있다.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에 비유했던 김순례 의원이 논란 이후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에서 보듯 개인의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회나 당 내부의 징계가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막말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치권은 부적절한 언행을 한 인사에 대해 국회 윤리위에 회부하고 있지만 실제 징계가 이루어진 경우(18대·19대 각각 1회)는 거의 없다.
당 차원의 징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당은 5·18 망언 3인방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처분을 내린 데 이어, 세월호 망언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정진석 의원과 차명진 전 의원에 대해서도 '당원권 정지 3개월 및 경고'의 형식적 징계에 그쳤다. 이처럼 두루뭉술 넘어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보니 막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장관·국무총리 재임 시절 황교안 대표는 정제된 언변으로 주목을 끌었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던 한국당이 야인이던 그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졌던 배경이었다. 풍부한 국정경험과 품위있는 언행을 갖춘 그가 무너진 보수진영을 일으켜 세울 적임자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대표가 된 이후에도 한국당의 막말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외려 이전보다 더 빈번하고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품격있는 언행과 건설적인 비판으로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을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막말 논란이 거듭되자 황교안 대표는 수습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4일 대전 유성구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참배한 후 "제가 당대표로서 당을 적절하게 지휘하고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라며 "국민들에게 정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거듭 드리고, 이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나라가 엄중하고 할 일이 많은 이런 상황에서 논란이 돼서는 안 된다"라며 "모든 지적과 또 국민들께서 우리 당에 하고 싶은 말씀, 돌이라도 던지겠다면 그것까지 제가 감당하겠다"라고도 했다.
발화자의 고뇌가 묻어나지만, 그러나 반쪽짜리 '고백'이다. 황교안 대표 역시 막말 논란에서 비켜나 있지는 못한 처지다. 19일 간 이어진 '민생투쟁' 과정에서 잇따른 강성 발언으로 대정부 투쟁을 주도한 당사자가 바로 그다. 그 기간 "독재", "좌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문 대통령을 향해선 김정은 위원장의 "대변인 짓"을 하고 있다(논란이 커지자 '대변인'이라 말한 것이라고 해명)며 맹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지난달 23일에는 강원 철원 3사단 전방초소를 방문해 "군은 정부, 국방부의 입장과 달라야 한다"라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발언은 군이 정부의 지침이나 통제를 어겨도 된다는 것으로 비춰지며 정치권 안팎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2일에도 "국민의 분노가 청와대 담장을 무너뜨릴 것"이라 말하는 등 수위를 넘나드는 강성 발언으로 대여투쟁을 이끌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사과와 함께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황교안 대표의 '영'(令)은 과연 설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이나 선거연령 인하 등을 한사코 반대하는 것에서 드러나듯 투쟁 일변도의 적대정치, 대중의 정치혐오와 불신에 기반하는 반정치에 익숙한 정당이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대화와 타협보다 극단의 갈등과 대립의 정치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실제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한국당의 대정부 투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당은 국회 파행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여당에게 있다며 장외투쟁을 고수하고 있다. 전면적 대여 투쟁을 천명한 당의 방침은 지도부를 비롯해 소속 의원들의 강경 발언을 부추기는 불씨로 작동한다.
더욱이 의원들 입단속에 나선 황교안 대표부터가 막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다. 그때그때 조치를 취했다는 황교안 대표의 해명과 달리 막말에 대한 당 차원의 징계 역시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이다. 여기에 선명성 경쟁하듯 정부·여당을 향한 이념 공세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황교안 대표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에게서 막말이 사라지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