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내 소외계층과 해외 빈곤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세상과함께' 이사장 유연스님이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세상과함께'가 만난 미얀마 아이들
'세상과함께'가 만난 미얀마 아이들 ⓒ 세상과함께

나는 작년과 재작년 두 해에 젊고 예쁜 두 스님과 이생에서 이별을 했다. 그 중 한 스님의 병명은 직장암이고 세상을 버린 절기(節氣)도 무더운 여름 검붉은 장미들이 철망을 의지해 피고 지고 할 무렵이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직감한 상좌 스님은 주변 도반들이 보내준 돈을 장례비로 조금 남기고 직접 농협에 가서 '세상과함께'에 전액을 기부하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갔다.

떨리는 손으로 직접 출금 내역서에 쓴 돈의 액수는 2000만 원이었다. 그날 농협 밖 주차장 모서리에 핀 6월 장미가 뜨거운 볕 속에 힘겹게 버티고 있었고, 몇 송이는 이미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사람도, 풀도, 꽃도 시름시름 아파보일 때가 있다.

"스님! 제 옷은 스님께서 입으시고 남은 돈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초코파이, 우유를 사주셔요! 저는 다음 생엔 꼭 보살의 길을 가렵니다."

비가 갠 오후, 노을은 병실까지 물들일 듯 유난히 아름다워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상좌스님은 영원히 눈을 감았다. 오호! 서하(瑞霞)로구나! 옛 스님들은 열반, 죽음을 상서로운 구름 즉, 노을에 비유하셨다. 그가 떠날 때 그랬다.

힘들고 복잡하고 기막힐 때에 나만의 피난처가 있는데 그것은 '불교적으로 생각하자!'는 구호다. 내 마음속의 비밀스러운 주문이기도 하다.

'그래! 다음 생에 만나서 보살도를 닦자꾸나! 건강한 몸 받아와라!'

부끄러운 고백
 
 미얀마 아이들.
미얀마 아이들. ⓒ 세상과함께

15년 전,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미얀마에 가서 초심으로 돌아가 수행하자는 것이다. 20여 년 간 운수(선방 수행)의 길을 걷던 나는 노곤했고, 더 나아가기 싫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 수행법으로는 나를 추스르기에 실패했다고 단정하고 황금의 땅 위빠사나 수행처로 떠났다.

책으로 본 간디의 감옥 같던 내 독방은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방이며 특혜라는 것을 알고 감사하면서 수행했다. 1년이 후딱 지났고, 2층에서 본 마을이 궁금해서 양곤으로 비행기표를 리컨펌(재확인)하러 가면서 잠시 들른 곳이다.

그때 대문이 없어서 불쑥 들어간 집은 여성 수행자가 사는 사원이었다. 20여 명의 여아들이 허름한 오두막에 모여 지내는 듯 보였고 삭발한 아이들의 머리는 온통 부스럼 투성이었다. 비바람, 햇빛도 피할 수 없는 원두막 마루는 삐걱대고 나무들이 빠져 위험하기까지 했다.

아아... 이럴 수가.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이들과 주변을 볼 때 그들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정적의 충격이 지났을 때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오직 내 공부만 한다고 1년을 지낸 시간들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화장실이 딸린 방과 모기장, 침대, 책상에 앉아 내 수행만 한다고 고집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불과 100m 밖에 사는 아이들은 비를 맞고 지내고 배를 곯고 있었다니. 오두막 문을 달아주고 모기장, 밥그릇, 분유, 과자를 사주라고 말하면서 200달러를 주고 도망치듯 나왔다.

'세상과함께'에 보시의 손길... 방송인 김제동씨도 쾌척
 
 유연 스님(세상과함께 이사장)과 함께 하는 아이들
유연 스님(세상과함께 이사장)과 함께 하는 아이들 ⓒ 세상과함께

늘 겨울이면 6개월간 미얀마에서 수행을 했다. 그리고 돈이 생기면 그곳에 보시를 하고 물건이 생기면 무게 초과를 해서라도 보따리 장사처럼 가지고 가서 나눠주곤 했다.

그럭저럭 10년이 지날 때 천일기도 회향을 하시는 한 어른 스님이 누군가 매달 50만 원을 보시하신 돈 1500만 원을 고스란히 모아주셔서 1600명의 동자승 학교에 정수기 시설과 화장실 18칸, 임시 가건물 교실 6칸을 지을 수가 있었다.

그동안 아름다운 여정을 함께한 마음씨 고운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걸어보자며 4년 전 사단법인 '세상과함께'를 창립하고 열정을 갖고 일을 했다. 지금은 미얀마 젊은 승가단체 YGW(Yellow Generation Wave)를 만나서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미얀마 전역 15개의 학교 중 8개의 학교를 돕고 있다. 국내 사업은 군산 산돌발달장애아 학교, 십시일반을 통해서 생리대 전달, 체험학습을 못한 친구들에게도 후원금을 나눠주고 있다.
 
 불에 탄 따웅지 동자승 학교.
불에 탄 따웅지 동자승 학교. ⓒ 세상과함께

지난해 미얀마 북쪽 따웅지 동자승 학교에서 정신 나간 마을청년이 불을 지르는 일이 발생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 숙소가 전소됐다. 북쪽은 소나무가 있는 기후라서 조석이면 싸늘하고 밤이면 몹시 춥다.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난간으로 몰려서 긴급구호로 후원금을 모을 때 방송인 김제동씨가 5000만 원을 후원했다. 세상을 떠난 상좌 제우스님의 2000만 원과 장례식 때 들어온 보시금 1000만 원으로 따웅지 학교에 기숙사를 짓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회원 분들의 사랑이 전해지고 있어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김제동씨는 1억 원을 추가로 내주셨다. 한 비구니 선객스님은 모친이 주신 1억5000만 원을 모친 팔순 때 이름도 밝히지 않고 기부해왔다. 이 보시금으로 스와라는 지역에 학교를 지어서 400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초코파이와 우유 그리고 6월의 장미
 
 따웅지 동자승 학교가 불에 타서 아이들이 허름한 난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따웅지 동자승 학교가 불에 타서 아이들이 허름한 난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 세상과함께

7월 3일은 제우스님 1주년 기제다. 7월 미얀마 봉사 때에는 초코파이와 우유를 아이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세상은 더 갖겠다고 아우성이지만 다른 한편 조용히 결핍이 있는 곳에 아낌없이 보시하고 자기 이름이 날까봐 조심스러워 하는 분들이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암자는 농가 앞을 차가 지나가도록 돼 있다. 몇십 년 다니던 그 길은 주변 땅값이 올라간 뒤 영감님이 변심해 인사도 안 받고 인상이 험악해졌다. 급기야는 법적 조치를 취한다면서 차가 다니는 길 가에 큰 돌과 망을 세워 겨우 차가 지나간다.

그래도 그 길에 붉은 6월 장미와 작약이 진 자리에는 접시꽃이 기다리고 있다. 인색함도, 자애로운 나눔도 생사의 길도 '세상과함께' 하고 있다. 6월 장미도.

#세상과함께#미얀마#보시#김제동
댓글1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