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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오래된 익숙함이 편한 세대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는 내 친구가 됐다. 둘째딸이 19년 전에 사준 컴퓨터다. 누군가와 만나 필요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번거로워진 반면, 컴퓨터를 할 때는 내가 원하는 많은 걸 얻는 기쁨이 더 크다.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컴퓨터로 강의를 듣고 시험도 보고 리포트도 쓰고 자수를 위한 자료를 찾으며 이 네모난 기계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궁금한 걸 찾아주었고 때론 울적하면 음악을 틀어줘 나를 위로해 줬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삶의 시야를 넓혀 주는 많은 정보들은 살아가는 목표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 컴퓨터가 아프다고 칭얼댔다. 동네 서점 글쓰기 수업 숙제를 하는 도중인데 모니터가 꺼지고 쓰던 글이 날아갔다. 당황스럽고 답답했다. 다시 켜 봤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서비스센터 기사에게 진단을 요청했다.

"마우스를 바꿔보고 안 되면 본체를 갈아야 합니다."  

일단 마우스를 바꾸니 모니터가 켜진다. "오, 되네!" 아직은 나와 이별할 때가 아니지? 안도해 본다.

오래된 물건과 이별한다는 것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이 가득한 밤. 당연히 오랜 시간 함께하리라는 허상에서 깨어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이 가득한 밤. 당연히 오랜 시간 함께하리라는 허상에서 깨어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 pxhere
 
며칠을 조심스럽게 쓰고 있는데 모니터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꺼진다. "또 안 되나?" 혼잣말을 하면서 기다렸다, 켜 보았다 해도 반응이 없다. 잠시 쉬자.

배우고 있던 다도도, 성당에서 해오던 성서 공부도 종강을 했다. 이제 소일거리는 책 보고 컴퓨터하고 노는 일인데 난감하다. 쓰고 있을 땐 못 느꼈던 아쉬움이 밀려왔다.

둘째 딸에게 "컴퓨터가 안 돼 불편하다"고 말했더니 곧바로 새로운 컴퓨터를 보내왔다.

컴퓨터는 도착했지만 설치는 개인이 해야 한다니 난감하다. 설명서 그림을 보고 어찌해서 선은 연결했다. 전기는 들어왔는데 모니터가 캄캄하다. 프로그램 설정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에 살고 있는 셋째딸 아들인 손자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메신저로 사진을 찍어 보내고 화상통화까지 연결해 몇 시간을 끙끙대다가 원격조정으로 설치를 완료했다. "야호!" 탄성이 절로 나온다.

21세기는 정보화 시대라고 하더니, 자고 일어나면 현실이 빛의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점차 늘어간다. 캄캄한 세상 속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고장난 것도 고치면 오래 쓸 줄 알았던 당연한 믿음도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밤에 자다가 깨어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은 많은 생각으로 뒤척인다.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이 가득한 밤. 당연히 오랜 시간 함께하리라는 허상에서 깨어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헤어진다는 것. 그게 삶의 진리이다.

고장 난 컴퓨터와 이별하며 추억도 묻어둔다. 새 컴퓨터와 새로운 도전을 할까 한다. 이 순간이 남은 생의 시작이다. 매 순간은 새로운 시작이다. 인생의 끝자락, 후회 없기를 소망한다.

#선물 받는 새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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