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안민석씨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경기 오산시)이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입니다.[편집자말] |
일본의 도발로 '한일 경제전쟁'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에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의 애국심과 양심을 기대하며 공개서한을 드립니다.
최근 배익기씨는 훈민정음 상주본 반환 협의를 위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저를 만나고 싶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저는 수락했고, 오늘(6일) 상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어제(5일) 약속을 취소하자는 통보를 받았고 이에 공개서한을 드리게 됐습니다.
'훈민정음 상주본'을 둘러싼 일들
먼저 지난 몇 년간 있었던 과정을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해외약탈문화재환수운동을 해온 정치인으로 국내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조차 잘 보존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고 2016년부터 배익기씨와 접촉했습니다.
평소 문화재 환수운동을 함께한 김준혁 한신대 교수가 2016년 겨울 상주로 내려가 배익기씨를 만났습니다.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배익기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였습니다. 명예회복? 금전적 보상? 돈이라면 얼마를 원할까?
지난해 10월 29일, 저의 증인 신청으로 국정감사장에 나온 배익기씨의 답변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1000억 원을 주어도 내놓지 않겠다"라는 답변은 역설적이게도 배익기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돈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습니다. 본인의 억울한 심경을 국민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자 했던 저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국정감사 이후에도 배익기씨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상주에 사는 지인을 보냈고, 서지연구를 하시는 스님께도 부탁드려 만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배익기씨는 결코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10년 째 해오던 말만 습관적으로, 전략적으로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11일 대법원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상주본이 국가 소유이므로 배익기씨가 국가에 반환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씨가 여전히 '상주본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면 원칙에 의거한 법 집행 말고는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국가 소유인 상주본을 이런 사람이 숨겨놨다면 정부는 지체 없이 압수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상주본 실물을 공개하십시오
'훈민정음'은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우리 민족의 긍지입니다.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을 알았던 일제는 한글을 말살해 민족정신을 뿌리째 뽑으려 했습니다. '한일 경제전쟁'으로 민족의 자존감을 높여야 할 이때, 상주본이 세상 밖으로 나와 국가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배익기씨는 존경받는 인물이 될 것이고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끝까지 상주본을 자신 소유라고 주장하며 꽁꽁 숨겨 놓는다면 불행한 길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민족정신을 팔아먹으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웅이 될 것인가 역적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시점입니다. 지난 10년처럼 또다시 10년을 허비해 상주본이 곰팡이로 썩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방치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배익기씨에게 상주본의 무사귀환을 갈망하는 국민을 대신해 공개 제안 한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상주본의 실물을 공개하십시오. 사진으로도 좋습니다. 혹자는 상주본이 심각히 훼손됐거나, 분실됐거나, 아니면 해외로 밀반출됐을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서지를 연구하시는 어느 스님은 '상주본이 인위적으로 태워져 훼손됐다'는 주장도 합니다.
진실이 무엇입니까? 우려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상주본의 공개를 엄중히 요구합니다. 시한은 광복절까지로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훈민정음 상주본'이 훼손 없이 보관되고 있길 바라며, 한글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9. 8. 6.
배익기씨를 만나기로 했던 날 새벽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안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