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화장실, 자서전 강요 등 '인권 사각지대' 군 영창을 없애는 이른바 '김제동법(군인사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당장 부적절한 군 영창 시설과 운영 방식을 개선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 아래 인권위)는 7일 국방부 장관에게 영창 제도 폐지를 위한 군인사법 개정 전이라도 징계 입창 처분을 가급적 지양하고,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과 수용자 접견·전화 내용 기록, 개방형 화장실 등 부적절한 운영 방식과 시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군 영창 없애는 '김제동법' 3년째 국회 계류중
군 영창 제도는 군기 문제를 일으킨 병사를 최장 15일까지 구금할 수 있는 제도로, 영장 없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해 위헌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방부는 지난 2월 발표한 '국방 인권정책 종합계획'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년간 영창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7년 3월 영창 제도를 폐지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같은해 9월 일부 수정한 '국방위원회 대안'으로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아직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이철희 의원 발의 법안은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 2015년 JTBC <톡투유> 프로그램에서 "군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라고 불러 13일 영창을 다녀왔다"고 발언한 뒤 이듬해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게 발단이 돼 '김제동법'이라고도 불린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만4151건에 달하던 영창 처분 건수는 2015년 1만2492건, 2016년 1만778건, 2017년 9246건, 지난해 상반기 3460건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징계 입창 처분은 계속되고 있고,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영창 시설과 운영 방식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체 노출되는 개방형 화장실에 젓가락 사용도 금지
인권위는 군 수용자 인권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5월 8일부터 6월 11일까지 한 달여간 육군 4개, 해군 1개, 공군 1개 등 6개 부대 영창 방문 조사를 진행했다.
인권위에서 꼽은 시급한 개선 사항 가운데 하나는 화장실 문제였다. 인권위는 "육군 두 개 사단 진정보호실의 경우 거실 안에 화장실 변기만 설치돼 있고 차폐시설이 없어 수용자가 용변을 볼 때 신체 부위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수용자에게 지극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태로서 수용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화장실 차폐시설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권위는 과도한 수용자 개인정보 수집과 접견 전화 내용 기록 관행도 문제 삼았다. 인권위는 "해군 한 함대에서는 미결 수용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접견·전화 내용을 일괄 청취‧기록했으며, 녹취록을 작성하듯 민감한 감정 표현, 사생활 등의 내용을 구어체 문답 형식으로 작성했다"면서 "이는 수용자의 접견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한 공군 사령부 지원단 헌병대대에서는 '수용자 신상명세서'에 개인 신체 내용과 이성친구, 민간친구, 민간경력, 학력, 가족사항, 자서전, 면허와 자격, 현재의 심경과 건강 상태 등을 기록하도록 했다. 특히 자서전에는 출생부터 지금까지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을 쓰도록 했다. 인권위는 "이런 과도한 정보 수집은 개인정보 보호원칙에 위배되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인권위는 일부 부대에서 교도관 대신 교도병사가 수용자의 권리와 권리구제, 의무 사항을 고지하는 관행 개선하고 영창 집행기간 계산 잘못으로 신체 자유 침해가 길어지는 일이 재발하지 않게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일반교도소와 국군교도소 등에서도 제공하는 플라스틱 젓가락을, 정작 영창 수용자들에게 허락하지 않는 관행도 개선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