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침략으로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편으로는 친일·반일 논쟁이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주광역시가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8일 오전 11시, 광주공원 앞에서 친일 잔재물에 '단죄문'을 설치하고 이를 기념하는 제막식을 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이용섭 시장과 김동찬 광주시의회 의장,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광복회원, 시민단체, 학생들이 참석했다. 단죄문은 친일 인사의 친일 행적과 범죄 사실을 검증된 기록으로 적시하고, 일제 잔재 시설물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친일 잔재물로 분류한 이유 등을 적어놓은 글이다. 후대에 널리 알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단죄문 설치에 앞서 광주광역시는 2017년 3월부터 운영한 '친일 잔재 조사 태스크포스팀'의 조사 내용과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한 용역 결과를 토대로 비석, 누정 현판, 교가, 군사시설 등 65건의 친일 잔재물을 파악했다.
이 가운데 대표적 친일 잔재물로는 일제 때 '광주신사'가 있었던 광주광역시 제1호 공원인 광주공원과 공원 내 사적비군에 있는 윤웅렬, 이근호, 홍난유의 선정비가 있다.
광주공원의 계단에는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인 광주신사 계단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었고, 윤웅렬, 이근호, 홍난유의 선정비는 뽑혀 한 곳으로 모여 그 앞에 단죄문이 설치됐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수록된 윤웅렬(1840~1911)과 이근호(1861~1923)는 구한말 전라남도 관찰사 재직 시절에 선정을 베풀었다는 이유로 선정비가 세워졌다. 홍난유는 1905년부터 1913년까지 광주 군수로 재임하면서 의병 진압과 강제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은 친일 인사다.
그동안 윤웅렬과 이근호의 선정비는 임진왜란 당시 광주 목사로 재직 중 참전하여 '이치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후, 조선 최고사령관이 된 '도원수 권율 장군의 창의비'를 포위하듯 에워싸고 있었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오마이뉴스>를 포함한 여러 언론사에서도 두 사람의 단죄비 설치를 촉구한 바 있다.
이 외에도 화순 너릿재 공원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시비와 사직공원 인근 양파정에 걸린 정봉현·여규형·남기윤·정윤수의 현판, 서구 세하동 만귀정 습향각에 설치된 신철균·남계룡 현판도 친일인사 잔재물로 확인됐다.
무형의 잔재물로 친일 작곡가 현제명, 김동진, 김성태,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18개는 광주지역 대학과 중·고교에서 여전히 불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군사시설로 활용된 지하동굴, 신사 참배를 위한 광주공원 계단, 송정공원 옆 송정 신사의 참계, 신목, 석등룡기단 등도 그대로 남아있다.
광주광역시는 이 가운데 국·공유지에 위치한 25개 일제 잔재물에 단죄문을 우선 설치하고 사유지에 위치한 잔재물은 소유자와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윤목현 시 민주인권평화 국장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물에 대한 단죄문 설치는 식민통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친일을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민주 인권 평화 도시 광주는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