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수도 네피도에서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미얀마 국가고문을 만나 정상회담을 열었다.
문 대통령과 아웅 산 수 치 고문은 3일 오후(현지 시각) 정상회담을 열고 한국기업 애로사항 전담 처리 창구 '코리아 데스크(Korea Desk)' 설치, 고위급 정례 협의체인 '한-미얀마 통상산업협력 공동위원회' 출범, 현재 조성 중인 '한-미얀마 경제협력 산업단지' 인허가 등의 절차들을 처리하는 원스톱서비스센터 설치 등에 합의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에 관한 기본약정과 코리아 데스크 설치, 통상·산업협력, 항만개발협력, 과학기술협력, 스타트업협력 양해각서에 서명하거나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특히 정상회담과 양해각서 서명식이 끝난 뒤에는 미얀마 수도 네피도 지역 학생들이 통학에 사용할 스쿨버스 60대 기증식이 열렸다.
앞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미얀마 교육부는 지난 7월 미얀마 정부 청사에서 네피도 지역에 스쿨버스 60대를 지원한다는 '미얀마 스쿨버스 지원을 통한 교육환경 개선사업' 협의의사록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오는 2021년까지 300만 달러(약 35억원)를 투입해 네피도 내 6개구에 스쿨버스 60대를 지원하고 운전자 교육 등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웅 산 수 치 고문은 국가고문 외에도 외교부장관과 대통령실장관을 겸직하면서 사실상 미얀마의 국가수반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코리아 데스크' 설치... 최초의 경제협력 산업단지 조성
'코리아 데스크'는 한국기업만을 대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설치하는 창구이고, '한-미얀마 통상산업협력 공동위원회'는 양국 간 산업·기술, 무역·투자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축하는 정례적 고위급 채널이다.
문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문에서 "코리아 데스크는 한국기업의 애로사항을 전담 처리하고, 양국 간 장관급 경제협의체인 한-미얀마 통산산업협력 공동위는 경제협력 사업의 안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LH공사와 미얀마 건설부가 옛 미얀마 수도였던 양곤 부근에 68만 평 규모로 조성하고 있는 '한-미얀마 경제협력 산업단지'는 양국의 대표적 경협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경제협력 단지 안에 인허가 등 절차들을 처리하는 원스톱서비스센터를 설치해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의 편의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경제협력 산업단지 내 원스톱서비스센터 설치와 관련, 문 대통령은 "우리 기업의 진출과 투자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날(4일) 최초의 한-미얀마 경제협력단지 기공식에 참석한다. 그는 언론공동발표문을 통해 "'한-미얀마 경제협력 산업단지'는 양국간 대표적인 경제협력프로젝트로, 한국 기업의 미얀마 투자를 촉진하며, 양국의 동반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합의들은 양국의 경제협력을 효율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두 정상의 인식에 따른 것이다.
한국의 개발경험 살리기 위한 사업들 추진
또한 두 정상은 한국의 한국개발연구원(KDI)와 코트라(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를 각각 모델로 한 '미얀마 개발연구원(MDI)'과 '미얀마 무역투자진흥기구(MYANTRADE)'을 설립해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더욱 활발하게 공유하기로 했다.
이러한 기조 아래에서 한국은 미얀마에 지원할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기본 5억 달러(2014~2017년)에서 10억 달러(2018년~2022년)로 확대하고,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의 새로운 협력 모델인 경제혁신 파트너십 프로그램(EIPP)을 미얀마와 최초로 추진한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한국의 개발경험을 살린 사업들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라고 평가했다.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는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개도국 등에 정책 수립, 제도 개선, 인프라 사업 기획 등을 자문하는 것이고, 경제혁신 파트너십 프로그램(EIPP : Economic Innovation Partnership Program)은 협력국의 경제발전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한 분야에 KSP를 상당기간 집중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더불어 두 정상은 한국 정부가 '미얀마 농촌공동체 개발사업'을 미얀마에서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평가하면서 농촌개발사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얀마 농촌공동체 개발사업은 미얀마 110개 시범마을을 대상으로 농촌공동체 개발 마스터플랜 수립, 새마을지도자 등 관련 인력들에 대한 역량 강화, 농촌진흥연수원 건립 및 운영 등을 실시하는 사업을 가리킨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미얀마 평화 프로세스
특히 두 정상은 한국과 미얀마가 '평화 프로세스'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을 나타내면서 양국이 각자의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미얀마 정부는 지난 2018년 네 차례에 걸쳐 문 대통령이 주도한 한반도 정세 진전을 지지하는 환영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미얀마는 지난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70여 년간 지속되고 있는 민족 간의 오랜 내전을 종식하고, 민주적 연방제(Democratic Federal Union)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미얀마 프로세스'라는 정치적 대화를 진행해오고 있다.
미얀마는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버마족를 비롯해 카렌족, 카친족, 몬족, 샨족, 친족, 라카인족, 카인족 등 135개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다.
미얀마 정부가 정부·군부·소수민족 무장단체간 협의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결과로 지난 2018년 2월에는 몬족 단체(NMSP)와 라후족 단체 (LDU)가 추가로 전국적 휴전협정(NCA, Nationwide Ceasefire Agreement)에 서명했다. 같은 7월에 열린 '3차 21세기 삥롱회의'에서는 '민주적 연방제' 원칙, 정치·경제·사회·토지 분야에서 연합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신뢰 부족, 서로 다른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단기간에 내전종식과 민주적 연방제 등 평화를 위한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인권 수치' 국제적 비판... 라카인 재건 등을 위한 연방기업 설립도
한편 버마 민주화운동 지도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 산 수 치 국가고문은 최근 로힝야족 박해(Rohingya persecution in Myanmar) 사건의 방조와 은닉의 배후자로 지목되면서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다. 그가 미얀마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라카인족) 학살을 방관하거나 두둔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09년 그에게 최고 권위의 인권상인 '양심 대사상(Ambassador of Conscience Award)'을 수여한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2018년 11월 12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오늘날 당신이 더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인권 보호를 상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라고 비판하면서 양심대사상을 철회했다. 한국의 5.18 기념재단도 지난 2018년 12월 그에게 수여한 '광주인권상'을 박탈했다.
다만 미얀마 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로사리오 마날로(Rosario Manalo) 전 필리핀 외교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사실조사위원회(ICoE : Independent Commission of Enquiry)를 구성했고, 미얀마 군부는 지난 2019년 4월 3인의 패널로 구성된 조사법정을 설치했다.
특히 미얀마 정부는 난민 지원과 라카인 지역의 평화, 지속가능한 개발 등을 중장기 과제로 설정하고 라카인 지역 투자와 교역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웅 산 수 치 고문은 지난 2017년 10월 라카인 재건과 지속가능 개발을 위한 연방기업(UEHRD)을 설립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