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 CJENM PD(2016.10.26),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 김동준군(2014.1.20), 인터넷 강의업체 웹디자이너 장민순씨(2018.01.03),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2018.02.15), 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2019.01.05) 그리고 강남우체국 김OO집배원(2019.05.01)을 비롯한 36명의 집배원들.
직장 내 문제로 자살을 택한 사망자들이다.
4일 오후 고인들의 유가족,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 모두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삶의 변곡점을 맞았다. 고인의 죽음이 '산재'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또 다른 유사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줄곧 싸워온 것.
이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과로사·과로자살 문제 대응의 경험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각자의 속내를 꺼내 놨다.
동료의 죽음을 증언하지 못하는, 꿀 먹은 '을'들
"제 아이는 부당노동과 작업장 내 폭력으로 투신 자살을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근도 하지 못하고... 제 아이가 폭력을 당했던 현장에는 같이 일해 온 직원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사고가 난 후 사망 원인을 찾으려고 물으니 한 사람도 증언하지 않아요. 다 꿀 먹은 벙어리야. '모르겠다', '애가 우울했다'는 식으로만 대답하고... 저는 법 문제보다도, 압력 때문에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런 구조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요."
토론회에 참석한 강석경씨의 증언이다. 그의 아들 고 김동준씨는 CJ제일제당 진천 육가공 공장의 현장 실습생이었다. 김씨는 과로와 잇따른 폭언, 폭력에 시달렸다. 회식 자리에서 2차를 가기 싫다고 했다가 여덟 살 위의 선임에게 폭언을 듣고 뺨 맞은 일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공포감을 느낀 열아홉 김동준씨는 결국 이른 아침에 투신했다.
강석경씨는 "그 동료들의 입을 닫게 한 회사가 문제인 것을 안다. 회사가 그렇게 (증언하지 말라고) 지시했을 거다"라며 "증언자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 가족들이 산재를 입증하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탄했다. 증언을 하는 강씨도, 강씨 주변의 유가족들도 모두 눈물을 훔쳤다. 강씨는 "우리가 백날 이렇게 얘기해도, 결국 예방을 위해서는 우리가 다 같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 박선욱 간호사의 이모 A씨가 말을 받았다. 앞서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했던 박 간호사는 병원 내 괴롭힘인 '태움'과 업무상 스트레스로 압박을 호소하다가 지난해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간호사의 경우 지난 3월 6일 산재로 인정받게 됐다.
"저희도 같았어요. 사건 후 아이 동료들을 만나러 병원에 갔어요. 왜 우리 아이가 이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려고. 그랬더니 간호사 팀장들이랑 같이 나오더라고요. 팀장이 보고 있으니까 제대로 말도 못하죠. 그냥 '아이(박선욱 간호사)가 내성적이었다는 말밖에 못하는 거예요.
너무 서운하지만, 또 왜 얘기를 안 해주냐며 따지지도 못했어요.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아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당한 고통을, 같은 현장에서 당하고 있겠다 싶으니까... 정말 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이어 A씨는 "우리 아이가 간호사들 가운데 처음으로 산재처리가 됐다. 이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하지만 솔직한 심경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공허함, 결핍감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A씨는 "유가족들은 가족의 죽음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는 계속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 정말 힘들다"고 덧붙였다.
토론자였던 이민화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 활동가는 "고 박선욱 간호사 산재 인정 직후, 어떤 신규 간호사의 어머니에게 연락이 받았다"며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공대위측에 상담을 요청한 그 어머니는 '본인의 딸도 간호사인데 박선욱 간호사와 같은 상황이다. 간호사 일을 그만두게 해야 할지, 내버려둬야 할지, 너무 두렵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이민화 활동가는 "박선욱 간호사가 산재인정을 받게 된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현장의 변화는 아직 미비하다"라며 "변화가 없다면 간호사들의 죽음은 또다시 반복되고 너무나 쉽게 잊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수성 결여된 경찰 수사... 유족들에겐 2차 피해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 모두 과로사·과로자살 문제에 대응할 때 '경찰조사' 과정을 첫 번째 문제로 꼽았다. 먼저 장향미씨가 발언했다. 장씨의 동생 고 장민순씨는 인터넷 강의업체 ST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로 지난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직장 내 업무 과중과 가혹한 업무규칙으로 인한 압박 때문이다.
장씨는 "이런 사건에서 유가족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게 경찰이다"며 "보통 과로사·과로자살은 오랜 기간 누적된 문제 탓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경찰 조사는 사건 당일이나 사망 전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게 전부다. 길어야 일주일 정도"라고 비판했다. 경찰 수사만으로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
이어 "심지어 경찰을 만날 때는 가족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상태다"라며 "그때 경찰이 물어보는 말에 제대로 답할 수도 없다. 경황이 없는 상태라 제대로 답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장씨는 "경찰의 질문도 대부분 초점이 맞지 않거나 (피해자를 고려하는) 감수성이 결여된 질문이 많다. 이런 질문들로는 죽음의 진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들(담당 경찰)의 질문이 정말 황당했다"며 본인의 경험을 꺼내놨다. 그는 "아들 시신을 수습해서 병원으로 옮긴 후 바로 경찰서에 갔다. 그때 경찰이 제 가슴을 뚫는 이야기를 했다"며 "'그동안 아드님이 정신병을 앓은 적이 있느냐'는... 이런 질문을 하더라.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경찰 수사를 중지시켰다"고 말하며 격분했다.
강민정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운영자는 "유가족 모임을 한달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이때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었다"며 "유가족들은 경찰이 무의미하게 던지는 질문에 굉장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고인의 죽음 방치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
한인임 '과로사OUT 공대위' 정책팀장은 매해 발생하는 과로사·과로자살의 대안으로 먼저 '과로사 예방법 제정'을 제안했다. 한 팀장은 "과로는 노동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업무에 대한 성과압박, 직장 내 괴롭힘이 모두 포함된다"며 "노동시간 규제(주 52시간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예단하면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장을 정기적으로 감독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한 팀장은 "일본의 경우 2014년부터 과로사 방지법이 제정되면서 기관을 대상으로 정기 감독과 불시 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며 앞서 고 장민순(유니타스 웹디자이너)씨의 사례를 언급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과로 실태를 감독해달라'는 고 장민순씨의 요청에 '2017년에 목표로 한 감독이 모두 진행됐으니 2018년에 감독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한 팀장은 "2017년 12월에만 감독했더라도 장씨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장민순씨의 언니 장향미씨는 "제 동생이 바랐던 것은 신입들이 야근하지 않는 회사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 "여기 저와 같은 아픔을 갖는 유가족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이 사회 잘못된 점을 바꿔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