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오전 11시. 서울에는 폭우가 왔다. 위로 올라가려한 밑의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상층을 만나자 비가 돼 쏟아졌다. 마포에서 강남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누가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강변북로 위에 떠 있는 교량에서는 물이 폭포가 돼 떨어졌다. 도로에 닿은 물은 두어 번 뛰어오르더니 가장 낮은 맨 왼쪽 차선으로 흘러 강을 이뤘다. 차선이 하나 줄자 차량은 더욱 느려졌다. '오르려 하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가장 낮은 곳에 모이는 것이' 순리라고 말해주는 것인지…
이날은 100여명의 조합원 전부가 비정규직인 사무금융노조 메이슨에프앤아이대부 지부의 길거리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다. 이들은 채권추심 업무를 한다. 채권추심 업무는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다.
회사는 비정규직 직원과 협의는 물론 사전 통보도 없이 이들이 관리하는 채권 전량 매각을 진행했다. 비정규직들은 하루아침에 업무가 사라졌다. 사측은 비정규직을 직접 해고하지는 않았지만 내보낼 수는 있는, 그들은 억울하고 숨통이 조이는, 그런 비오는 날이었다.
걱정이 앞섰던 건 기자회견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메이슨에프앤아이대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월 19일 사무금융노조와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상담을 했다. 노동조합은 그로부터 이틀 뒤인 8월 21일 만들어졌다. 여기서 여덟 밤낮이 지나자 이들은 언론과 사측에 우리 얘기를 하겠다고 나섰다. 언론과 대중이 회사 이름을 잘 모를뿐더러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이뤄졌다. 더욱이 날씨는 회견 취소를 고려할 정도였다.
우려는 과했다. 기자 2명이 와줬다. 특히 30명 정도 되는 사무금융노조 다른 지부의 조합원들이 연대했다. 굵은 빗속에서 우비를 입고 촘촘히 모였을 때 느낀 묘한 동질감, 소중했다. 절정은 메이슨에프앤아이대부 비정규직 노동자가 읽어 내린 발언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채권만이 자산이겠습니까? 십수 년 동안 수익을 내고 함께 회사를 위해서 땀 흘려 헌신한 직원은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 아닙니까? (…) 저희는 그동안 회사에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일하고 싶습니다. 예전처럼 메이슨이라는 지붕 속에서 사원들 간에 형 동생 하면서 그렇게 일하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 사회 이슈화되는 비정규직 고용에 대해 우리가 쓰고 버리는 하찮은 존재인지 회사는 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에 기르던 가축도 잡아먹기 전에는 충분히 먹이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물며 십수 년 동안 회사를 위해 일해 온 직원의 미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억울하고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기자회견에 참여해 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굴뚝에 올라가는지 이제야 알겠다"는 그는 생애 첫 발언문을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읽어 내려갔다. 악랄한 자본, 탐욕, 분쇄, 투쟁 같은 감정을 분출하는 단어들은 없었지만 정돈되지 않은 곧은 감정이었다. 노동조합 조합원이 된 지 9일 만에,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안 지 20일 만에 나온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메이슨에프앤아이대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진행 중이다. 쉽지는 않다. 아무런 토대 없이 내몰리듯 시작한 싸움이니 쉬울 리가 있겠는가. 이미 몇몇 조합원들이 "네가 무슨 노동조합을 하느냐"는 가족의 걱정 어린 조언이자 핀잔을 듣고 회사를 사직했으며, 지금도 떠나는 중이다. 회사는 '신생 노동조합, 상대하지 않으면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말의 결을 바꾸면 사무금융권 비정규직 실태를 조사하면서 이들의 노동환경을 간접 공유하고 있다. 3개월 단위 쪼개기 근로계약. 일한 지 10년이 넘어도 오르지 않는 기본급. 10분 자리를 비우면 사유서를 써야하고, 출근 시간 10분 전에 오지 않으면 벌금 2만 원을 내야하는 환경. 콜센터 노동자들은 고도의 감정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동료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누가 더 험한 욕을 들었는지 배틀을 뜬다고 했다.
일에는 계급이 있다.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거나 감정받이 노릇을 해야 하는 업무들, 누군가는 하찮고 격에 맞지 않다고 여긴 일은 꼭 비정규직이 담당하는 일들이다. 한 회사는 사무보조를 해고하면서 '단순 알바 수준이 무슨 상시직이냐'고 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일을 맡은 사람은 도구로 인식했다.
8월 29일의 폭우는 길거리 기자회견이 끝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그쳤다. 식사 자리에 앉으니 구호의 합이 잘 맞지 않았던 방금의 경험을 얘기하며 우린 웃었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네가 더 팔뚝질이 어색했다"며 생글생글 웃었다. 반찬은 돈까스와 고등어구이였지만 밑반찬인 계란말이의 인기가 더 좋았다. 한 비정규직 조합원은 직접 계란말이를 가득 담은 통을 들고 돌아다니며 빈 접시를 채워줬다. 생애 첫 외침 뒤 가지는 평범한 밥상. 그 자체가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