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YES 성평등 NO' 보수개신교 등이 지난 9월 제정된 경기도 성평등 조례안에 반대하며 외친 구호이다. 이러한 구호는 2015년부터 나왔던 이야기이다.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성평등과 양성평등의 대립구도에 묵인하고 동조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평등과 양성평등은 정말 대립되는 것일까. 둘 사이를 가르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구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평등'의 가치는 무엇일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11월 평등UP은 양/성평등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말
조례의 수난 시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몇 년째 보수기독교·혐오선동세력의 전방위적인 조례 개정·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 지자체에 제정된 인권, 양/성평등, 민주주의, 노동, 문화 다양성 관련 조례들이 그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양/성평등 조례는 평등을 둘러싼 전장의 한 가운데 있다. 지난 9월에 "동성애와 제3의 성을 인정한다"는 주장에 부딪힌 경기도 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조례상의 성평등은 양성평등이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다수의 성을 포괄하는 성평등이 아니다."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를 외치며 대립 구도를 만들어온 혐오선동세력의 등장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성평등은 양성평등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 왜곡을 중단하라는 경기도의회의 대응 또한 낯설지 않아서 문제다. 이는 현재 성평등이 정책에 어떤 의미로 기재되어 있는지 '성평등=동성애' 구도가 어떤 정치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지자체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배제하고 이성애 정상가족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혐오선동세력의 압력에만 속수무책인 것이 아니다. 성별 권력 관계로 인한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고자 하는 성(gender) 평등한 정책 실현에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물론 이는 경기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양/성평등 조례의 토대, 기본법은 어떻게 변화해왔나
현재 광역·기초자치단체에서 제정한 양/성평등 기본 조례들은 <양성평등기본법>의 위임을 받아서 제정된 '위임기본조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기본법은 "국민적 합의를 의제적으로 구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문제에 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그러나 정책으로서의 체계성을 유지하면서 해결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기본법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제도·정책을 체계화하면서 정책이 지속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
양/성평등 정책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공간은 지방자치의 영역이다. 하지만 양/성평등 조례가 국가의 구체적인 양/성평등 정책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에 대해 지자체의 구체적인 정책 내용과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만큼, 지자체는 관련 기본법과 중앙정부의 정책 연계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현재 전국의 조례들이 맞이한 수난 시대는 국가의 성평등 정책에 담긴 관점과 그 변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양/성평등과 관련한 기본법은 1995년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출발한다. 기본법-조례의 관계 속에서 1999년부터 '여성발전 기본 조례' 역시 본격적으로 지자체에서 제정되기 시작한다. '성평등'을 내건 조례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그 해 '경기도여성발전기본조례'가 '경기도 성평등 기본 조례'로 개정되었고 이후 2012년에는 21개, 2013년에는 29개의 지자체에서 성평등 조례가 제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의 여성발전 조례들도 성평등 조례로 개정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2011년 <성별영향평가법> 제정과 맞닿아 있다. 성별영향평가는 정부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성차별적 요인들을 분석·평가함으로써 정부 정책이 성평등 실현에 기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에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의제가 채택한 이후 한국에서도 여성과 여성정책을 국가나 사회발전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가부장적 제도와 규범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 전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성 주류화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정책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성별영향평가이다. 여성발전기본법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2006년에는 기초자치단체까지 시행이 확대되었고, 2011년 정책의 목적이 '성평등' 개념으로 담긴 <성별영향평가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성평등 조례의 가시적인 등장은 정확하게 이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지자체들은 주로 성차별 금지와 성평등 촉진,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참여 보장을 중심으로 통합적인 성평등 정책의 근거로서 조례를 제정해 나갔다. 적어도 제도라는 형식적인 틀에서 성 주류화와 성평등은 '여성발전' 프레임의 도구적 성격과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관점으로 등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성평등은 조례 명칭과 구체적인 조항들에서 눈에 띄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양성평등'은 어떤 순간에 호출되는가
2015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부 개정된 것은 여성정책의 역사에서 큰 변화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여성의 위치가 '가정'을 중심으로 국가 경제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 저출산 문제 해결이라는 '국가'의 목적에 의해 다루어졌다면, 당시 개정은 큰 틀에서 '개인'과 '인권'의 중요성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양성평등기본법 명칭을 포함한 전면개정은 '성평등의 제도화 과정'으로서 크게 두 가지 방향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자체의 양/성평등 조례와 여성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바로 차별의 구조로서 젠더 권력 관계는 희미해진 반면, 협소하고 왜곡된 의미의 평등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성(gender) 주류화가 채택된 이후 젠더(gender) 이슈를 설득하기 위한 주요 전략은 젠더 개념을 남성과 여성의 관계 중심으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여성발전기본법에는 없었던 '성차별 금지' 조항이 양성평등기본법에 포함되었음에도 정부 정책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균형' '조화' '개성' '행복' 등의 수사가 지배하고 '차별'이나 '평등'이라는 단어들이 사라졌다.
기본법 개정에 따라 정부가 <제4차 여성정책 기본계획>(2013-2017)을 수정·보완하여 발표한 <제1차 양성평등 기본계획>(2015-2017)을 살펴보면 변화가 여실히 드러난다. '여성'과 '성평등'이라는 글자가 삭제된 자리는 '남성'과 '양성평등'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경향은 2015년 일제히 양성평등 명칭으로 개정되기 시작한 조례들에서도 나타난다. 정의 조항이 성평등에서 양성평등으로 바뀌면서 '성차별' 정의 조항이 함께 삭제되거나(광주광역시 남구, 목포시, 강진군, 화성시, 장수군, 나주시 등) '성차별의 개선 등'에 관한 조항이 사라지고(군포시, 밀양시, 부산광역시 연제구, 동래구, 여주시 등) 성희롱 관련 조항만이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양성평등이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이 정책의 동등한 혜택을 받는 것, 공적 영역에서 가시적인 차별이 없는 상태가 평등이라는 인식에 기여했다. 이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성별 불평등을 간과하거나 부정하면서 차별 해소를 목표로 하는 양/성평등 정책 실현을 더욱더 어렵게 할 뿐이다. 매해 경남여성단체연합의 주도로 진행한 '여성주간' 행사에 대해 "양성평등 행사를 여성단체에만 맡길 수 없다"며 2015년 예산을 절반으로 축소한 경상남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상남도는 결국 그 해 양성평등 기금까지 폐지하게 된다. '양성평등'은 개념 자체로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역사를 문제제기하고 변화시키는 전략의 가능성을 가질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차별이고 평등인지에 대한 여성주의적 정치성이 희석된 관점은 그 가능성을 앗아갈 뿐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실시된 양성평등정책의 결과는 '여성 상위 시대'와 '남성 역차별' 담론이 지배하는 현실이다.
두 번째 문제는 2010년대부터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기본법 명칭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성평등기본법 vs. 양성평등기본법 vs. 여성정책기본법)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바로 다른 무엇도 아닌 '평등'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를 배제하기 위한 의도에서 여성정책으로서의 '성평등'이 거부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위계화 된 성역할, 성별 지위, 성정체성, 성별 규범 등을 포괄하는 성차별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성평등 정책의 미래를 더욱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차별과 불평등을 발생·유지하는 구조에 대한 인식과 원인에 대한 규명 없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상향시킨다고 해서 차별이 사라지거나 평등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별, 성정체성과 성적지향뿐만 아니라 계급, 출신 국가 및 인종, 장애 여부, 가족 형태 등 여성들의 삶에서 중첩·교차하는 속성을 중요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관점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양성평등 개념이 채택되는 과정은 성별 불평등의 규명(누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형태의 성별 불평등을 경험하는지 등)을 사실상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을 문제시하는 이유는 단순히 법의 명칭이 양성평등으로 관철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별 불평등의 해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가부장제와 이성애중심주의의 핵심 기반은 이분법적 젠더 규범이라는 점에서, 이를 수호하기 위해 채택된 양성평등 개념이 누구에게 어떤 평등을 실현해줄 것인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혐오선동세력이 '양성평등 YES'를 외치지만 사실상 그 양성평등은 이성애 제도에서 각자의 성별 규범을 시행하는 남녀와 이들이 구성하는 정상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사실상 반 양성평등 입장임에도 국가의 양성평등 정책은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추진되었고, 지자체 성평등 조례의 기반을 흔들었다. 2015년 6월 당시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는 성평등 정책으로서 성소수자 지원 조항을 포함하며 제정되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이러한 성평등 조례가 기본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면서 개정을 요청했고, 결국 3개월여 만에 성소수자가 삭제된 양성평등 조례로 개정되었다. 2015년 '사회적 성' 개념이 논란이 되면서 삭제된 채로 제정된 구로구부터 2019년 젠더자문관 설치가 조직적 반대에 부딪쳐 부결된 부산광역시 조례까지, 성평등 정책이 '양성평등 YES'의 자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페미니스트 대통령만으로는 성평등 비전을 그릴 수 없다
2019년 10월, 현재 전국에는 13개의 성평등 기본 조례가 있다. 이제는 13개 성평등 조례마저 양성평등 조례로 개정되지 않도록 지켜내거나, 양성평등기본법과 나머지 조례들을 다시 '성평등' 명칭으로 개정하라고 외치면 되는 것일까? 어떤 성평등 조례는 내용상 양성평등 조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가 차원의 성평등 정책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에 대한 관점과 지향은 지자체의 성평등 정책 수립과 실현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반차별과 평등이 아니라 이분법적 성별 개념을 전제하는 양/성평등 관점의 국가정책이 혐오 선동 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과 장을 스스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각각 주장하는 집단 사이의 갈등, 사회적 혼란으로 비춰지는 현실은 문제다. 2017년 개헌 정국에서도 헌법 제36조의 '양성평등' 규정을 '성평등'으로 개정할 것인지를 두고 다시 논란이 붙었다. 하지만 "생물학적 성을 해체하고 가정을 해체하는 급진적인 성평등의 개념은 양성평등과 분명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혐오 선동 세력뿐만 아니라 국가, 정부 부처, 국회를 통해 더욱 공고해져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당시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기본법-조례의 변천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정책의 목표로서 성평등은 정책의 이름을 성평등으로 칭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지자체 성평등 조례를 개정하라고 권고한 박근혜 정부의 여성가족부 그리고 2017년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 당시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혼용해서 쓰고 있다. 성소수자나 동성애자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한 문재인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이제 더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면서 동시에 보수 세력의 비판을 비껴갈 의도로 양성평등 개념을 활용하는 전략은 무의미하다.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에 '오해'라고 응답하는 정부가 성평등한 여성정책의 비전을 그릴 수는 없다. 또한 국가의 정책이 기존의 관점을 유지하는 한, 지자체가 구체적인 지역민의 현실을 반영하고 의미 있는 성평등 정책을 실현하는 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다. 여성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은 더 명칭이나 수사의 문제에 멈춰있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그리는 성평등한 사회는 대통령이 페미니스트가 되거나 공약이었던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고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전환으로부터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몽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