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슬기를 품고, 새 길을 걷는다! 마을이 배움 숲이다!"
서석 인문예술 한마당 잔치 〈서석 고운울림〉 이튿날인 10월 18일, 삼일학림에서 조현 기자님을 모셔 '동서양 종교 철학의 만남과 문명교류사'에 대해 이야기 들었다. 조현 기자님은 〈한겨레〉의 종교 전문 기자이자 논설위원으로서 20여 년 전부터 영성과 치유, 공동체와 대안적 삶에 관한 글을 써오셨다. 작년에는 국내외를 오가며 만난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조현 기자님이 공동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오래 전 아팠던 몸 때문이었다. 눈에 이상이 생겨 내로라하는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마주한 건 전체가 아닌 단면만 보는 현대의학의 한계였다. 사실 눈이 아픈 건 몸의 다른 부분에 생긴 이상이 해결되지 않아서였는데, 몸을 하나로 보지 않고 부분만 보는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길이 없었다. 기자님은 이 일을 겪으며 요양차 소개 받은 아속 공동체를 시작으로, 옛 슬기를 받들어 살고 있는 여러 공동체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인도와 티베트, 일본, 히말라야 등 동양의 여러 공동체를 순례하던 기자님은 고대 서양문명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스의 아토스 산을 찾았다고 한다. 아토스 산은 남자 수도사들만 모여 사는 이른바 '수도원 공화국'인데, 동양에서 보았던 순례지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더란다. '서양 문명의 발원지라 불리는 그리스가 어떻게 동양과 이렇게 닮아 있는 것일까?' 궁금한 건 못 참고, 두 눈으로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자 본능 덕에 또 다시 순례가 시작됐다.
순례여정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태어나 활동했던 사모스 섬을 시작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의 발자취를 좇아 이어졌다. 여러 군데 둘러보고 문헌들도 찾아보고 도달한 결론은 인도, 중국이 그리스, 이집트와 지리적으로 멀지 않고 사상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구나,란 깨달음이었다. 피타고라스의 윤회설은 고대 인도의 전통과 닿아있고,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그리스 신상은 인도 간다라 미술과 신라의 석굴암 불상과 닮아 있다는 사실 등등, 동서양문명은 극과 극인 것 같지만 오래 전부터 서로 영향을 활발히 주고받았다.
동서양 문명의 회통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곳곳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구한말 조선은 옛 전통과 근대 문물, 사상들이 유례없이 경합하고 섞이며 여러 창조성을 발휘한 땅이었다. 당시 북간도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린 명동마을의 김약연 목사는 《맹자》를 만독이나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런 바탕에서 윤동주와 문익환, 안병무, 김재준 등 우리 문학과 사상사에서 창조성을 발휘한 인물들이 자라났다. 오산학교의 유영모, 함석헌 선생도 그런 예다.
다양한 종교와 사상들의 각축전이 벌어진 곳이라 그런지 창조성 못지않게 갈등도 적지 않았다. 조현 기자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다종교 국가이면서 근본주의적인 열성이 특징이고, 그에 따른 갈등이 많다. 또 남북 분단의 현실 아래 이데올로기 갈등도 여전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위기의 때에 여러 종교와 단체들이 힘과 지혜를 모았던 3.1운동 같은 역사 또한 있다. 기자님이 갈무리하며 강조하신 것처럼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는 법"이다.
종교와 철학은 인류가 만들어낸 것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깊다. 괜히 '으뜸의 가르침(종교)'이 아니고 '밝은 가르침(철학)'이 아닐 게다. 진리를 향한 갈구에 어디 끝이 있으랴. '나는 누구인가', '세계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새롭다. 옛 슬기는 언제부터 옛 것이었을까.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질문들이 여전히 새로운 것처럼 옛 슬기 또한 언제나 새롭고 밝게 빛난다. 문제가 있는 곳에 으레 답이 있듯 어둠이 있는 곳엔 빛이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