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부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한-메콩 특별정상회의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세안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3P 원칙을 표방하는 신남방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이러한 원칙에 따라 잘 관계 맺고 있을까? 몇 가지 이슈를 통해 살펴본다. - 기자 말
"로힝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Don't use the word Rohingya.)"
미얀마에 엄연히 함께 살고 있는 소수 종족인 '로힝야'를 두고 '로힝야'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라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게다가 이 말을 한 사람이 미얀마의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라면?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자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는 그동안 로힝야 문제를 방관하고 미얀마군을 두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군부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한 후 2011년 풀려나기까지 석방과 재구금을 반복하며 비폭력 평화투쟁을 고수했던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 학살을 묵인하고 방조했기 때문이다.
로힝야 학살 사건을 취재하다 체포됐던 2명의 로이터 통신 소속 기자들의 석방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것은 군부가 아닌 수치였다는 증언들도 공개됐다. 국제사회는 그동안의 이력과 정반대되는 아웅산 수치의 행보에 분노했고, 그에게 수여된 인권상을 철회하고 명예시민증을 잇따라 박탈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밝혔듯이 "비판 여론에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로힝야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박해
아웅산 수치가 존재 자체를 부정한 로힝야는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 소수종족이다. 불교도가 주류인 미얀마 구성원 대부분은 로힝야를 벵골 지방에서 온 '벵갈리'라고 부르며 불법이주민으로 간주한다. '이슬람 침략자' '바이러스' '칼라(Kalar, 검둥이)' 등 차별과 혐오의 말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박해는 지난 40여 년간 지속되고 있다.
로힝야는 인근 지역을 방문하려면 허가를 받거나 통행료 등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결혼도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이도 마음대로 낳을 수 없다. 산아제한 조치의 대상이다.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문맹율은 80%에 달한다. 생업의 기회도 박탈당했다. 공직에 진출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시민권은 박탈되거나 부여되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 무슬림들의 성지 모스크를 파괴하기도 하고, 이들의 거주지를 초소로 둘러쌓아 '열린 감옥' 또는 '수용소'를 방불케 한다.
2016년에는 경찰 초소를 공격한 로힝야 무장 세력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에 대한 구타, 살인, 고문, 자의적 구금과 처벌, 집단 강간, 방화, 재산약탈 등을 자행했다. 2017년에는 대규모 인종 청소 작전으로 수만 명을 살해했다. 마을은 불에 탔고, 로힝야 난민들은 집단 강간과 폭행의 피해자가 돼 피난길에 올랐다.
2018년 유엔은 미얀마 군부에 의한 로힝야 학살에 대해 '제노사이드' '반인도주의적 범죄' '전쟁범죄'라고 결론내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로힝야의 시민권 회복 및 안전하고 존엄한 귀환을 촉구했다. 올해 9월에도 유엔은 "미얀마에 남아있는 60만 명의 로힝야가 여전히 집단학살의 위협 속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삶은 개탄스러울 정도"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전히 진행중인 제노사이드, 그리고 아웅산 수치의 부정
미얀마 정부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유엔의 입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진행 중인 제노사이드(대량학살)'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잔혹 행위는 계속되고 있고, 로힝야에 대한 혐오와 차별, 탄압은 사회구조적으로 고착화돼 미얀마를 떠나는 난민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끊임없이 촉구하고 있다. 최근 서아프리카의 무슬림 국가인 감비아는 로힝야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됐다면서 이슬람협력기구(OIC)를 대신해 미얀마를 집단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고발했다.
영국버마로힝야협회(BROUK)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보편적 재판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에 따라 로힝야 집단학살과 관련해 수치 국가고문과 미얀마 고위 지도자들을 상대로 아르헨티나 법원에 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로힝야에 대한 미얀마군의 반인도적 범죄 의혹 등에 대한 수사 개시를 허가했다.
국제사회는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미얀마군과 정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특히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가 받고 있는 로힝야 집단 학살의 혐의를 반박하기 위해 ICJ에 파견될 법률팀을 직접 이끌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미얀마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로힝야 박해에 대한 외면과 침묵, 더 나아가 국익을 위해서 로힝야 학살을 부정하고 있는 아웅산 수치의 방한 소식을 접하며 우리는 이 문제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묻게 된다.
지금이 투자의 기회?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은 지금, 로힝야 사태로 다른 나라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지금이 한국에 기회이다."
얼마전 이상화 주미얀마 대사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이 같은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올해 2월, 이 대사는 라카인주 투자박람회에 참석하여 "라카인주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직접 와서 볼 수 있도록 잠재적인 투자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이 얼마나 자국 중심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발언이다. 다른 이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채 이 틈을 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심보에 한숨이 나온다.
오늘(26일)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연계사업의 일환으로 미얀마 현지진출 설명회가 열리는데 이 설명회에도 라카인 주정부와 투자기업 관리국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로힝야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졌던 바로 그곳, 라카인주의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부산을 방문해 투자 기회 및 진출전략을 설명한다고 하니 정부의 대 라카인 투자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 학살 책임을 부정하고, 라카인주 학살 현장의 방문조차 불허하면서,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라카인 지역에 대한 투자만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의 입국조차 거부하고 있고, 언론과 인권단체들의 로힝야 학살 방문조사도 불허하고 있다.
대신 학살 현장을 지우기 위해 로힝야들이 거주했던 마을들을 밀어버리고, 그곳에 보안군과 타 지역 불교도들의 거주를 위해 수백 채의 새로운 주택들을 짓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조사와 증거 보전 등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채 국가 주도로 증거인멸을 진행 중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 역시 '투자'만을 독려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정부가 말하는 사람, 평화, 상생번영의 신남방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극명하게 다르다. 로힝야 학살에 책임이 있는 개인들과 무역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었거나 논의 중이고, '보이콧 미얀마' 캠페인이 확산되어 실제 미얀마에 대한 해외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미얀마에 대한 투자 독려가 아니라, 미얀마 정부에 학살의 책임을 묻고, 유엔 등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로힝야 난민사태 해결을 위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쓴 전은경씨는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블로그에도 중복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