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성 영입에 그친다."
"얼굴로 내세울 외부 인사 영입만 신경 쓰고, 당내 인재들은 소홀히 한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 안팎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이다. 총선을 앞두고, 매번 전쟁처럼 되풀이 되는 당 외부인사 영입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은 선거마다 새로운 인물을 찾아 영입에 나서지만, 이런 외부 수혈이 유권자의 눈을 속이는 '이벤트성 영입', 여성·청년 등을 내세우지만 실속은 없는 '전시용 인재 영입'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은 첫 공식 영입 인사로 '공관병 갑질' 논란의 당사자인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을 거론했다가 보류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정의당은 새누리당 출신 이자스민 전 의원과 민주당 출신 이병록 해군 제독 등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면서 호평을 얻었지만, 영입 소식이 알려진 뒤 "내부에서는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지도부는 당내 인사들도 특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고 반박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인재영입의 명암'을 짚어봤다.
"각계 전문가 영입 필요" vs. "언제까지 외부수혈만?"
외부 인재영입에 긍정적인 측은 "전문가 영입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일례로 각 정당은 20대 총선 직전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각계에서 알려진 전문가들을 영입했고, 일부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세월호 변호사'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재벌 저격수'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한국당의 유일한 30대' 신보라 의원이 바로 그들이다.
채이배 의원은 지난 11월 2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당과의 가치·지향이 같다는 전제 아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국회에 와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내 인재육성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당이 외부 영입에만 치우쳐선 안 된다, 당원·당직자·보좌진 등 정당 안에서 사람을 키우는 걸 체계화 해야 한다"라는 게 채 의원의 이야기다.
"언제까지 외부수혈로만 버틸 수는 없다"라는 것이 대표적 '당내 인재양성론'의 요지다. 서복경 서강대 연구교수(현대정치연구소)는 "정치는 매우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를 교육해야 한다"라면서 정당이 인재영입에 치중하는 상황을 꼬집었다.
그는 "지난 30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기간 동안 시민들은 정치인을 보는 기준이 높아진데 비해 정당은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라며 "수혈에만 치중하다 보니 스타를 키워내는 정당이 아니라 스타를 데리고 오는 정당들이 돼버렸다"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고 노회찬 의원도 내부에서 키운 인재 아닌가"라면서 내부 인재 양성은 정당의 기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수능(선거)은 다가왔는데 국·영·수 공부(당내 인재양성)를 안 해둔 거예요. 그럼 시험에서 찍기(외부 인재영입)라도 해야지, 어쩌겠어요?"
"18세 이하 청소년의 정당 가입 허용돼야"... "당내 제도적 청년 육성도 필수"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영입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지난 11월 1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 2030 의원이 20명 있으면 국회가 바뀐다, 내년 각 당이 비례대표의 절반씩만 2030 세대에 주자"라며 '청년 비례대표 50% 할당'을 주장했다. 우리 주변의 '82년생 김지영', 또 다른 '고 김용균 노동자' 등 젊은 인물을 영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30대인 국회의원은 전체 295명 중 3명에 불과하다.
2030의 출마를 위해 그간 진입장벽으로 지적돼온 '총선기탁금' 지원 방안도 마련되고 있다. 현행법상 총선 출마자가 선관위에 내야 하는 1500만 원을 낮추자는 방안이다. 지난 11월 28일 민주당 총선기획단은 "20, 30대의 경선 선거 운동비를 각각 100%, 50% 지원하겠다"라며 "39세 이하 청년 후보자의 총선 출마시, 유효득표별 비용 보전 기준을 낮추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했다"라고 알렸다. 정의당 또한 청년 출마자의 기탁금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 정치' 실현에는 늘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여기에는 '2030이 국회에 들어온다고 해서 바뀔 게 없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를 해결할 현실적인 대안은 없을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청소년 정치 참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18세 이하 선거권 부여'가 정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이라는 것. 현재 공직선거법 60조에 따르면, 미성년자(19세 미만)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선거권이 없는 탓에 18세 이하인 초·중·고교생은 정당 가입도 불가능하다(정당법 22조). 당원 활동이 불가능하니 자연스레 정당·정치 관심도 낮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실제 2019년 현재, 제도적으로 '19세 이상만 선거 가능'한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대부분 가입국의 선거가능 나이는 16~18세로, 이를 낮추는 게 세계적 추세인 탓이다(관련 기사:
OECD 국가중 왜 우리만 없을까? '18세 선거권' http://omn.kr/mgno).
37세 장관·30세 의원이 나오려면?
서복경 교수는 "유럽 정당들은 주일학교를 하듯 청소년 대상 '유스(youth) 정치캠프'를 열고, 모의선거도 활발히 해 자연스럽게 정치를 알게 만든다"라며 "학교와 정부, 정당 등 온 사회가 각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에선 이런 식으로 성인이 되기 전 이미 정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기회를 준다"라며 "일상에서 숨 쉬듯 정치를 접하게 하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미성년자에게 정당 가입 기회조차 막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6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37세 프랑스 세드리크 오 디지털경제부 장관, 30세 미국 여성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를 언급하는 등 젊은 후배 정치인들을 키우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라면 이런 정치인의 등장은 어렵다는 게 서 교수 지적이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2003년생), 오카시오 코르테즈(1989년생) 같은 인물이 나오려면 어려서부터 정치에 대해 고민해보고 참여하는 게 필요한데, 한국은 이게 제도적·법적으로 봉쇄돼 있다"는 것.
민주당 총선기획단 소속 장경태 청년위원장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는 "현재 입당을 시작하는 연령을 보면 보통 30대 초중반이다, 남성들은 군대에 다녀오니 여성보다 더 늦은 편"이라며 "당원 가입 가능한 나이를 낮추고, 초·중·고교에서부터 '민주주의' 과목을 신설해 교양과목으로 필수화하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민주주의 과목 필수화'를 통해 청소년 정치 교육을 제도화하고, 나아가 정책 제안·정당 활동 등이 가능하게 열어주자는 얘기다.
채이배 의원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독일 같은 경우 어려서부터 당원 가입을 가능하게 해 정치를 가까이서 배울 수 있게 했다"라며 "지금보다 더 많은 청소년이 일찍부터 정치참여 활동을 경험해보게 해야 한다, 이 또한 정당에서 인재를 키우는 과정 중 하나일 것"라고 말했다. 그는 "'10대 당원'이 가능해진다면, 나아가 2030 젊은이들을 정당이 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0대부터 정치참여가 활발한 유럽 사회는 '30대 총리'가 가능하다. 2017년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1986년생, 당시 한국나이 32세였던 쿠르츠를 총리로 뽑았고, 아일랜드에서도 1979년생 버라드커 총리가 탄생했다. 이게 가능한 배경에는 '10대부터의 정치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쿠르츠 총리는 17세에 국민당 청년당원 활동을 시작했고, 버라드커 총리 또한 청소년 때부터 정당 활동 및 당내 조직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현재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있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는 "선거권 및 선거운동 가능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함"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50만 명에 달하는 고3 학생들이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직접 선출할 수 있으며 정당 활동도 가능해진다.
['인재영입을 말하다' 이전 기사]
① "심상정과 싸워도 돼요?"... 정의당 인재영입 뒷얘기 http://omn.kr/1ln4e
② 4년마다 태어나는 여의도 키즈... 정치 좀 나아졌습니까? http://omn.kr/1lo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