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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
ⓒ 공군교육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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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거든 수의 대신 공군복을 입혀 달라."

일제강점기 때는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장을 지내고 해방 이후 공군 창군에 참여했던 최용덕(1898~1969) 장군이 남긴 유언이다.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 최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다.

4일 공군교육사령부는 창군 7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공군 창군의 주역 최용덕 장군의 정신을 계승할 정예공군인 양성을 다짐하기 위한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제막식은 3일 열렸다.

최근영 교육사령관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제막식에는 경남지역 정책발전자문위원, 교육사 지휘관‧참모 등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최용덕 장군 공적 소개, 동상 제막, 교육사령관 기념사, 공군가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제막된 높이 3.2m 동상은 최용덕 장군이 손을 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으로, 동상 좌대와 뒤편 부속조형물에 장군의 일대기가 서술돼 있다.

이미 교육사는 지난 2018년 12월, 입영식과 각종 교육훈련을 위해 개관한 다목적강당을 '최용덕관'으로 명명한 바 있다. '최용덕관' 입구에 최용덕 장군 동상이 세워졌다.

최근영 교육사령관은 기념사에서 "우리 공군이 강한 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하며 창군 100주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사령부 전 장병 및 군무원은'하늘에 살면서 하늘에 목숨 바친다'는 최용덕 장군의 정신을 계승하여 정예 공군인 양성에 최선을 다할 것을 엄숙히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최용덕 장군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1919년 대한독립청년단과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최 장군은 중화민국 공군의 고급장교로서 중화민국 공군 건설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1940년 광복군 창설 후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등을 거쳐 1944년 참모처장을 역임했다.

최 장군은 광복 후 1946년에는 공군을 창군하기 위해 국내 항공단체들을 통합하여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최용덕 장군은 초대 국방부차관에 임명되었으며, 국군조직법 제정에 관여하며 공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최용덕 장군의 일생 숙원이었던 대한민국 공군 창군이 이뤄졌다.

최용덕 장군은 1960년 체신부장관, 1961년 주 중화민국 대사에 임명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최용덕 장군은 "내가 죽거든 수의 대신 공군복을 입혀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최용덕 장군 동상 건립.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최용덕 장군 동상 건립.
ⓒ 공군교육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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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최윤덕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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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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