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이 많은 여자예요. 그 남자는 못 살아요. 돈도 없고 경제력도 없어요. 그런데 똑똑하고 또 뭐 갖출 거 갖췄어요. 그러면 (여자가) 그런 사람을 요구해요. 데려다가 공부시키고 내세워줘요. 토대(출신성분)만 좋으면, 똑똑하고 잘났으면."
북한 양강도 혜산시 출신 30대 탈북 여성의 말이다. 이 여성은 지난 2016년 탈북해 남한에 입국했으며, 혜산에 거주할 때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다. 그는 "10년 전부터는 여자들이 경제력이 있으면 못사는 남자라도 똑똑하고 잘생긴 남자를 끌어온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혜산 출신 50대 탈북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여성 역시 2016년 탈북했으며, 탈북 전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다.
"시집 정말 잘 가는 게 평양 가는 거거든요. 그리고 돈 있는 여자들이 결국은 그 가시집(신부집)에서 집을 사주기로 하고 평양을 가고, 평양에 거주 붙이고 이렇게 하고. 그러니까 아들을 가진 분들은 또 아들을 공부시켜서 평양에서 살게끔 하고, 그 다음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 집까지 다 사주겠어요? 그래 이 혜산에서 아들을 공부시켜서 평양에 배치받게 한 부모들은 다 혜산 여자를 얻으려고 해요. 평양 여자를 얻으려고 아니해요. 그래서 혜산에서리 여자를 얻는 게 조건부를 그렇게 걸거든요. 집을 사줄 수 있는 사람."
이러한 진술들은 달라진 북한의 결혼 세태를 보여준다. 조정아·최은영 박사의 <평양과 혜산, 두 도시 이야기: 북한 주민의 삶의 공간>(통일연구원, 2017)은 복수의 탈북민 진술을 인용해 북한의 변화하는 결혼 문화를 소개했다.
해당 연구보고서는 "최근엔 혜산이나 청진과 같은 지방도시에서도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계층이 형성되면서 재력이 있는 신붓감이 그 지역 출신 남성 중 평양의 대학을 졸업하여 평양에 거주할 가능성이 있는 신랑감을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그러한 결혼의 대가로 대학 공부 뒷바라지와 평양의 주택이 오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평양에 사는 것 대단한 영광으로 여겨
해당 보고서는 이런 결혼 문화가 생기는 원인에 대해 주택 공급 부족과 주민들의 평양 쏠림 혹은 동경 현상을 들었다. 최근 북한은 주택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결혼으로 새로운 세대를 구성해도 더 이상 국가에서 주택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일반화됐다. 정창현 머니투데이 부설 평화경제연구소장의 <변화하는 북한, 변화하지 않는 북한>(선인, 2005)에 따르면, 북한의 주택보급률은 1990년대 중반 70%에서 경제난 이후 50~60%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북한 주민들에게 평양은 혁명의 수도이자 조선의 심장, 최고 지도자를 모시고 사는 도시, 최종방어지로 인식된다. 평양시민들은 평양에 사는 것을 대단한 영광과 특혜로 여기며 큰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지방 거주자는 평생에 한 번 평양을 구경하기도 힘들고, 함부로 평양 안에 들어갈 수도 없다. 평양시민에겐 타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풍요와 물질문명의 혜택이 주어진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평양시 이외 지역의 거주자들이 평양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평양에 있는 직장에 배치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의 경우 평양에 적을 둔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다. 지방 거주자가 평양에 있는 직장에 배치를 받기 위해선 사람들이 기피하는 높은 노동강도와 엄격한 규율이 있는 공장의 근무를 자원하거나, 평양시 소재 대학을 졸업한 뒤 평양에 있는 직장에 배치를 받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평양 소재 대학을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남성을 사위로 삼으려 하는 풍속이 생겼다. 후자의 경우 종종 평양 출신 남성이 지방에서 군복무를 하면 해당 지역 여성과의 연애와 결혼을 통해 여성이 평양에 거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재력이 있는 지방 거주 여성이 경제력이 낮은 집안의 똑똑한 남성과 결혼하는 세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태는 북한의 시장화 및 여성 지위 향상과도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중반 닥친 대기근(일명 고난의 행군) 시기, 남성들이 가동을 멈춘 공장에 출근할 때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 달리 대부분 주부였던 북한 여성들이 전국을 돌며 장사를 해서 가족을 부양했다. 장사 수완이 좋은 일부는 큰 부를 축적했다. 일부 남편들은 직장에 뇌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출근하지 않고 아내의 장사를 도왔다. 북한의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성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배경으로 경제력을 갖춘 여성의 경우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변화하고, 직접 고른 배우자의 장래를 지원하는 경향이 관찰되는 것이다. 앞서 보고서는 혜산 출신 40대 탈북 여성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인용·소개했다.
"남자 쪽에서 집을 사 주는 부모도 있는데, 여자 쪽도 집을 많이 사 줘요. 지금은 옛날하고 달라서 딸을 더 중시하는 거 같아요. 지금 사람들이 보면 부모들은 딸한테 더 의지하려고 하고. 며느리를 들여 봤자 딸보다 못하다고."
이 여성에 따르면, 신부 측이 경제력이 있으면, 친정 근처에 집을 마련해주고 결혼한 딸을 가까이 두고 살기도 한다. 주택 부족과 이에 따른 주택 매매 확대가 주민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력이 가부장적 사고를 압도하는 예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혼전 동거하는 사람은 '깬 사람'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변했을 뿐 아니라,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고 있다. 젊은 여성 탈북민들은 주위에서 일반적으로 '정상적' 결혼관계가 아닌 형태로 남녀가 가정을 이뤄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한다. 특히 20~30대 젊은이들 속에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선 혼인신고를 하면 이혼하는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배우자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엔 먼저 동거를 하고, 동거를 하다가 결혼하거나 헤어지기도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결혼 전에 동거하는 것은 손가락질 받을 행동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 나가는 '깬 사람'의 행동이라고 인식되기도 한다고.
"이혼하기가 엄청 힘들거든요. 그 서류로 이혼하기가. 그런데 대부분 보게 되면 저 언니 오빠들 결혼 제대로 하고 이혼 제대로 하고 사는 거 못 봤어요. 주위에 사람들, 저 오빠들도 결혼 안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살았고, 그 다음에 이혼 안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하고 살았고. 그런 게 불가피한 거 같아요." (20대 탈북 여성 진술, <평양과 혜산, 두 도시 이야기> 인용)
앞서 보고서는 "결혼은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에 기반한 가족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경제공동체를 선택하는 일이 돼가고 있다"면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경제적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결혼의 조건이 되면서, 여성의 많은 나이나 재혼 사실은 더 이상 결혼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경제난 시기부터 시작된 가족관계의 변화는 시장화 확산과 물신주의, 중국의 영향으로 인한 이성관계에서의 개방성 등의 요소와 결합되면서 생활공동체로서의 집의 의미와 결혼제도와 관련된 주민들의 행위 양상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