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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고찰이다. 분황사는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사찰은 불타 없어지고 일부는 유실되었다. 현재는 조선시대에 지은 지금의 보광전만 남아 있을 뿐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현재 경내에는 분황사 모전석탑, 화쟁국사비부, 석정이란 우물만 남아있다.

1991년 분황사 터를 발굴한 결과, 고구려 사찰과 같이 품자형 금당 배치를 하고 있었다. 분황사가 한창 번창할 당시 왼쪽 전각 북편에 영험이 있는 천수대비 그림과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벽화가 있었다고 한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기단 위에 있는 사자상 모습(서쪽편은 사자상, 동쪽 편은 물개상)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기단 위에 있는 사자상 모습(서쪽편은 사자상, 동쪽 편은 물개상) ⓒ 한정환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모전석탑은 임진왜란 때 반쯤 파괴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선시대 분황사 스님이 수리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대로 방치하던 중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다시 일본인 기술자들에 의해 해체 수리되었다. 타국의 문화재이지만 그때 당시에도 국보급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수리에 참여한 일본인이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안산암을 벽돌처럼 깎아서 차곡차곡 쌓아 만든 모전석탑은 높이가 9.3m이다. 국보 제30호로 관리되고 있다. 현재는 3층만 남아있다. 일부 학자와 학계에서는 9층으로 추측하고 있다. 7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히 몇 층인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 궁금증만 더한다.

모전석탑 기단 네 모서리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네 마리의 사자상이 앉아있다. 공식적으로는 네 마리 모두 사자상으로 표기하고 있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물은 누가 보아도 사자가 맞다. 그러나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것는 자세히 살펴보면 물개 형상이다. 동해 쪽으로 쳐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막으려는 선덕여왕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자는 수호의 기능과 함께, 부처님의 계율을 상징한다.

현재 탑신부 1층 네 면에 감실이 있는데 입구 양쪽에 인왕상을 세웠다. 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는 인왕상은 한쪽은 입을 벌리고 있는 상이고, 또 다른 한쪽은 입을 다물고 있다. 현존하는 인왕상 중 가장 이른 것이다. 최고 절정의 인왕상은 석굴암 내부의 인왕상이다.

모전석탑의 3층 지붕돌만은 윗면이 네 모서리에서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모양이다. 그 위로 화강암으로 만든 활짝 핀 연꽃 장식이 놓여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출토된 사리함 및 사리장엄구 모습.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출토된 사리함 및 사리장엄구 모습.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한정환
 
1915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해체 수리할 때 2층과 3층 사이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때 발견된 병 모양의 그릇, 은합, 실패와 바늘, 침통, 금 은제 가위 등은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이라 여성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는 물품들이 발견되었다.

모전석탑 안에는 큰 돌과 모래자갈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강력한 지진에도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래와 자갈 등을 채워 놓은 것이다. 몇 해 전 경주 지진 때 첨성대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분황사 석탑은 신라 시대의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이다. 분황사 한편에는 벽돌 같은 돌들이 많이 쌓여 있는데, 이 돌들은 석탑을 쌓았을 때 사용된 돌들이다.
 
 경주 분황사 보광전  뒤편에 시대를 알 수 없는  손과 얼굴이 함몰된 불상 모습
경주 분황사 보광전 뒤편에 시대를 알 수 없는 손과 얼굴이 함몰된 불상 모습 ⓒ 한정환
   
분황사약사여래입상(芬皇寺藥師如來立像)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9호

분황사 보광전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구제해 준다는 의미의 약사여래불이다. 원래 분황사에는 신라 35대 경덕왕 때 주조한 무게 30만 6700근의 동(銅)으로 만든 신라 최대의 불상인 약사여래좌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1998년에 불상이 있는 보광전을 고쳐 짓기 위해 해체하던 중 발견된 기록을 통해 분황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현재의 불상은 조선시대 1609년에 동 5360근으로 만들었고 보광전은 1680년 5월에 다시 지은 것으로 밝혀졌다.

불상의 왼손 위에 놓인 약그릇 뚜껑 안쪽에 '건륭(乾隆) 39년 을미(乙未) 4월 25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건륭 39년은 을미년이 아니라 갑오년이기 때문에 이 기록을 사실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입상이 조선 영조 50년(1774년)에 제작된 것만은 여기서 알 수 있다.
 
 경주 분황사  석정 모습
경주 분황사 석정 모습 ⓒ 한정환
   
분황사 석정(芬皇寺 石井)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

분황사 사찰 내에 있는 돌우물이다. 바위틈 사이로 솟아 오르거나 흘러내리는 물이 잘 고이도록 바위를 움푹하게 팠다. 그 위에 다시 돌을 쌓아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겉면은 8각을 이루고, 안쪽의 벽은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다.

경주에는 이런 형태의 석정이 3곳 있다. 분황사 석정과 재매정에 있는 김유신 생가터 우물 그리고 경주향교 우물이다. 이 중에서 분황사 석정은 우물과 관련하여 사연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불리는 이 우물은 삼국유사 원성왕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기슭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는 각각 통일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호국룡이 살고 있었다. 원성왕 11년(795년) 중국 당나라 사신이 이 용들을 주문을 외워 물고기로 변신시켜 잡아가 버린다.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이 사실을 아뢰며 남편을 찾아줄 것을 아뢰었다. 두 여인의 말을 들은 왕은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을 쫓아가, 물고기를 다시 빼앗은 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어 살게 하였다"라고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분황사 석정은 통일신라시대에 설치된 우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사찰 내의 모든 돌부처의 목을 잘라 우물에 넣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14년 분황사 뒤뜰의 우물 속에서 목이 잘려나간 석불 여럿이 발견되어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뒤뜰(관련기사 : http://omn.kr/s5we)에 진열되어 있다.
  
 경주 분황사 경내에 있는 화쟁국사비부 모습
경주 분황사 경내에 있는 화쟁국사비부 모습 ⓒ 한정환
 
분황사화쟁국사비부(芬皇寺和諍國師碑趺)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고려 시대에 세워진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의 받침돌이다. 분황사 내의 우물 옆에 놓여 있다. 고려 숙종은 동방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원효대사에 대한 비석이나 죽은 이의 덕을 기리어 붙여주는 시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다. 이에 왕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현재 비는 없어지고 받침돌만 남아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희가 절 근처에서 발견하여 이를 확인하는 글귀를 받침돌에 새겨두었다. "차신라화쟁국사지비적(此新羅和諍國師之碑蹟)"이라 쓰여진 김정희의 친필이 어렴풋이 보인다. 비는 임진왜란 후까지도 보존되었으나, 지금은 이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직육면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네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 많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이다. 윗면에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 옆면에는 옅은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김정희의 친필이 음각되어 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이라도 보호 덮게를 세워 그나마 조금 보이는 글자만이라도 보호해야겠다. 이대로 방치하면 나중에는 받침돌이 퇴적을 거듭하여 완전히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때는 한낱 바위돌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될까 두렵다.

* 찾아가는 길
주소 :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주차료 : 무료
입장료 : 어른 1,3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800원

* 참고 자료
- 경주 문화재 길잡이 <경주시>
- 문화재 정보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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