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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고 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기자말]
   
 경기도 시흥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옛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 정문.
경기도 시흥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옛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 정문. ⓒ 권우성
 
"아무도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독방에 감금되어 조사받지만 당신에게는 어떠한 절차적 권리도 없다.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범죄혐의에 대해서 조사를 받기도 하지만 진술거부권, 변호인 조력권 등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당신은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도 알 길이 없다. 조사 중 외국으로 추방될 수도 있지만 당신은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없다.

아무도 당신의 이러한 처지를 알지 못한다. 당신은 길게는 반년, 아니 그 이상까지 이러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조사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이가 누구인지,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전쟁포로에 대한 취급도 비상계엄하의 체포․구금에 대한 특별 조치도 이럴 수는 없다. 관타나모인가. 아니다. 적어도 관타나모에는 누가 있는지가 알려져 있고 변호인의 접근이 가능하다. 이곳은 '법치국가' 대한민국 내에 있는 '중앙합동신문센터'다."
(필자가 2013년 5월 <시사IN> 296호에 쓴 <어떤 정당성도 없는 6개월 강제구금>에서 인용)


북한이탈주민은 입국 후에 비밀구금시설인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중앙합동신문센터)에 구금된 채 국정원 주도의 합동신문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하나원에 가기 전 단계다. 기간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대개 1주일 정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지속적으로 며칠간 조사를 받는다. 조사를 마친 뒤에는 퇴소할 때까지 다른 입국자들과 함께 대기실에서 외부와 격리된 채 약 2개월간 지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 한국 정착의 관문, '중앙합동신문센터'를 아시나요

한국정부의 보호를 요청하는 의사 확인이 진행되고, 북한이탈주민인지 아닌지, 한국에 온 목적은 무엇인지, 북한주민으로서 어디에서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북한이탈주민법')에 의하면 보호 및 정착지원을 결정하기 위한 행정절차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구금상태를 이용해 간첩수사가 이루어지고, 자유로울 수 없는 '동의'를 전제로 개인의 공적, 사적 정보가 수집된다. 모든 북한이탈주민을 사실상 잠재적 간첩과 정보원으로 규정하는 초법적인 수사와 정보 수집이 수십 년간 계속되어 왔다.

합동신문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북한이탈주민이 나타나 국가배상 소송을 대리했다. 2010년 8월 시작된 이 소송은 2013년 1월 대법원 판결로 전부 패소가 확정됐다. 소송에서 독방에서의 불법 수사와 감금, 모욕적 언사와 강압적 신문의 위법성이 주장됐다. 그러나 판결은 합동신문이 법령에 근거한 합법적인 수용이고, 범죄 수사는 없었으며, 나머지 주장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로 났다. 판결은 절차적 보장이 없는 감금 조사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불가피한 조치'임을 강조했다.

 
 2013년 2월 27일 자 <동아일보>
2013년 2월 27일 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인신구제청구로 거대한 권력의 음모에 맞서다

2013년 초,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있는 여동생 유가려씨의 진술에 근거해 오빠 유우성씨가 간첩으로 몰려 체포, 구속기소 되었는데 간첩 조작의 의심이 들어 유가려씨와 접촉하려 했지만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정원의 유가려씨에 대한 회유, 협박 여부, 유가려씨의 진의 등을 확인할 방법에 대한 자문 요청이 들어와, 필자는 인신구제청구를 제안했다. 인신구제청구제도는 인신보호법에 의한 제도로 행정처분 또는 사인에 의한 시설에의 수용으로 인해 부당하게 인신의 자유를 제한 당하고 있는 개인이 법원에 그 수용상태의 해소, 수용해제결정을 청구하는 것이다.

두 달 후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유가려씨의 인신구제청구사건을 대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합
동신문의 문제점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왔고, 외국인보호소 등 다양한 구금시설의 인권침해적 요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던 상황이라 흔쾌히 요청에 응했다.

다년간 이른바 '복지'시설의 문제점 개선에 애쓰고,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과 관련해 실제로 인신구제청구의 경험이 있는 같은 사무실 구성원과 함께 대리하기로 했다. 2013년 4월 12일 오빠 유우성씨는 국정원을 상대로 유가려씨에 대한 인신구제청구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유가려씨는 북한이탈주민임을 주장하며 합동신문센터에 들어갔지만 조사 과정에서 화교임이 드러났다. 중앙합동신문센터는 그 위법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북한이탈주민만을 수용하는 비밀구금시설이다. 피수용자가 중국 국적자임이 밝혀졌다면 즉시 퇴소시키고 출입국관리법상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유가려씨를 이 비밀구금시설에 6개월간 감금했다. 국정원은 유가려씨를 그 어떠한 형사범죄로도 수사하거나 내사한 적이 없고, 오빠 유우성씨의 간첩혐의에 대해 참고인조사만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참고인조사의 내용에는 유가려씨가 오빠 유우성씨 간첩행위의 공범으로 등장했고 유우성씨의 직업은 "보위부 공작원"으로 적시되어 있었다. 유가려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권 등 형사절차적 보장을 배제하고 오빠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한 너무도 노골적인 행태가 문서로 확인되고 있었다.

인신구제청구 심문기일에 있었던 일: 진실은 밝혀진다
 
 간첩 혐의를 받았던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간첩 혐의를 받았던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 (주)시네마달
 
심문기일 전 대리인들은 유가려씨와의 면회를 시도했다. 국정원 팩스로 면회신청서를 보내고,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주소를 알아내어 직접 방문을 했다. 센터 정문에서는 외부용역경비이기 때문에 출입은 물론 담당 직원과의 연결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국정원과 관련성이 있는 전화인 간첩 신고전화로 연락했다. 면회 요청이 접수됐고, 당사자가 만남을 원치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중에 이는 제대로 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유가려씨의 진의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야 했던 이 사건에서 그의 심문기일 출석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사전에 별도의 의견서를 제출해 피수용자의 심문기일 출석 필요성에 대해 재판부를 설득했다.

대리인들은 인신구제청구서 및 변론요지서 등을 통해 1) 중국화교로 밝혀진 후에도 유가려씨를 중앙합동신문센터에 감금하는 것의 위법성, 2) 변호인 접견 및 서신 교환 거부의 위법성, 3) 감금상태를 이용한 형사수사의 위법성, 4) 합동신문의 목적 달성 후 장기구금의 위법성 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국정원은 답변서를 통해 합동신문은 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이루어지는 보호이기 때문에 인신보호법상의 '수용'이 아니며, 보호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출국명령을 받았으니 구제 청구의 이익도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심문은 비공개가 예상되어 오빠 유우성씨의 형사사건 변호인들 4명도 이 사건 대리인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2013년 4월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피수용자 유가려씨와 청구인 유우성씨도 모두 출석한 가운데 심문기일이 비공개로 열렸다. 처음에는 중앙합동신문센터도 본인의 의사로 계속 있는 것이고, 조사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유가려씨의 기계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대리인들은 국정원의 회유, 협박에 의한 허위진술 가능성에 대한 의심에 기초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던 와중에 유가려씨가 오빠 유우성씨를 바라보며 "오빠는 내가 지켜줄게"라는 발언을 했다.

"이 짧은 한마디의 말은 너무나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세히 물어봐주십시오."

대리인이 재판장에게 호소했다. 이어진 재판장의 질문과 유가려씨의 답변에서 총 구금기간은 180일에 달했지만 중국화교인 것이 밝혀진 것은 구금 보름도 채 안 된 때였다는 사실, 나중에 오빠와 같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재판장이 법정을 나가자마자 대리인들 중 일부가 유가려씨를 가족친지들과 통화할 수 있도록 연결시켰다. 밖에서 대기하던 국정원 직원들이 법정 안으로 들이닥쳤다. 대리인들은 모두 남성이었는데 국정원의 여성 직원들이 유가려씨를 여자화장실로 데려가 버렸다. 한 국정원 직원은 출국명령서 비고란에 중앙합동신문센터 주소가 적혀 있으니 유가려씨가 그 센터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고 출국명령이 내려진 이상 이제 국정원은 유가려씨의 신변을 확보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고 지적하자 그 국정원 직원은 나를 째려보며 "XX" 욕을 했다. 화장실 안쪽에서 보거나 듣고 있을 유가려씨에게 국정원이 결코 무서워만 할 대상이 아님을 알려줄 필요를 느꼈고 나도 똑같이 "XX" 욕을 해줬다. "안 들려." "누가 너한테 얘기 했어 네 양심한테 얘기했지." 유치한 대화를 내뱉으며 몸싸움도 좀 하고.

화장실에서 나온 유가려씨는 지혜로운 판단을 했다. "오늘은 이 변호사님들 쫓아가고 내일 센터로 돌아갈게요." 국정원의 공작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간첩 조작을 위해 국정원이 어떠한 회유와 협박을 하였는지에 대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정말 섬뜩했던 사실은, 이 사건을 준비하면서 동료에게 "내가 국정원이라면 A씨를 예로 들며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여 놓고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냐, 우릴 믿으라'고 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도 국정원 직원이 유가려씨에게 위와 같은 취지로 A씨를 언급했었다는 사실이다.

항상 끝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전진이 있을 뿐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 이종호
심문기일 한 달이 지나고 담당 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가려씨가 출국을 했는지, 출국을 하지 않았다면 주소지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왔다. 출국 명령의 내용이 한 달 안에 출국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유우성씨의 형사사건에서 증인으로 출석해야 해서 출국이 늦춰졌다. 주소를 가르쳐줬다.

판사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이미 수용상태에서 벗어났으니 청구를 취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질문 아닌 질문이었다. 심문기일에 이미 감금의 위법성이 충분히 드러났으니 빨리 수용해제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도 한 달 반이 지나고 나서 심문기일 이후 수용되지 않았고, 화교라서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재수용될 가능성이 없어 인신구제청구를 각하한다는 결정이 2013년 7월 10일에 이루어졌다.

이미 심문기일에 이 사건 감금의 위법성이 충분히 확인되었지만 법원은 '수용해제 전에 구제청구의 당부에 관한 심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과도하게 늦어진 인신구금 적부에 대한 결정을 정당화했다.

그 후 오빠 유우성씨에 대한 간첩 혐의는 조작된 것임이 드러났다. 유가려씨도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단순한 조사가 아니라 형사수사를 받은 점이 인정되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침해된 사실이 재판을 통해 인정됐다. 그리고 합동신문 시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국내 재판뿐만 아니라 유엔자유권위원회, 유엔고문방지위원회 등의 한국에 대한 권고에서도 구체적으로 지적되었다.

"위원회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 제2항 및 제15조 제2항이 북한이탈주민을 6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주목하는 한편, 이들이 국가정보원에 의해 무기한 구금될 수 있다는 보고에 특히 우려한다. 위원회는 또한 이들이 독방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포함한 적법절차 없이 구금되는 점을 우려한다. 위원회는 또한 이들이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결정되면 고문의 위험이 있는 제3국으로 강제 퇴거될 수 있고, 독립된 심사에 대한 권리나 강제퇴거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향유할 수 없음을 우려한다." (유엔고문방지위원회의 한국에 대한 최종견해, 2017년)

그러나 이름만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바뀌었을 뿐 중앙합동신문센터는 여전히 존재하고 북한이탈주민법도 일부 개정이 있기는 했지만 합동신문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전혀 달리진 것이 없다. 국정원이 위 인신구제청구사건에서 제대로 배운 것 하나는 심문기일에 피수용자를 출석시키면 위험하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사건에서 제기된 인신구제청구사건 심문기일에 합동신문을 받고 있던 종업원들은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도 정치적 낙인찍기와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신구제청구에서 북한이탈주민은 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위헌적 법률이 발의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최악의 구금시설, 간첩의 조작과 죽음의 은폐가 가능한 공간, 한국이 법치국가로 존속한다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되기 전에 그 시설의 철폐를 하루라도 앞당겨야 한다.

[기획 /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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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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