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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기자말]
날이 추워진다 싶으면 엄마의 식탁엔 어김없이 굴이 올라왔다. 굴이 올라오면 겨울이 왔다는 증거이고, 굴이 사라지면 겨울이 갔다는 얘기다.

우리 가족 중에서도 아빠와 나는 굴을 좋아했는데, 특히 생굴을 좋아했다. 나는 익힌 굴은 왠지 퍽퍽한 듯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엄마의 굴전만은 예외였다. 모든 음식이 그렇긴 하지만, 막 만들어서 그 자리에서 집어먹는 '굴전'의 물컹한 한 점에는 뭉클한 감동이 있었다.

엄마의 굴전 레시피를 관찰해본 결과, 관건은 밀가루 반죽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나는 굴에 밀가루 옷을 입히고 그 위에 계란 옷을 두툼히 입혔는데 엄마의 굴전은 조금 달랐다. 역시 같은 재료라 해도, 순서와 차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준비할 재료는 굴과 밀가루, 달걀 그리고 당근이나 피망 또는 붉은 고추. 즉 붉은 색깔을 낼 수 있는 채소와 쪽파나 부추, 대파처럼 초록 빛깔을 낼 수 있는 채소를 준비하면 된다. 홍팀 대 청팀이다. 흰색과 회색, 검은색의 무책색 굴 위에 빨갛고 홍팀 대 청팀 운동회라도 벌이려는 걸까. 아니면 꽃밭이라도 꾸미려는 걸까.

"이렇게 해야 모양이 예쁘지. 색깔도 내고 맛도 내고."

엄마는 음식할 때 유난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배고플 때에는 엄마의 긴 요리 시간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그냥 대충 만들어먹어도 될 것 같은데, 손님 상에 놓는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 꼼꼼이 만드실까 싶었다.

가족들 먹는 음식도 손님들 상에 하듯 똑같이 하셨던 엄마였다. 직접 요리를 해보니 알겠다. 일상의 밥상에서 매번 디테일을 고수하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물론 자잘한 디테일은 건너뛰어도 표는 안 나고, 음식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음식을 만드는 엄마의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굴은 채반에 받쳐서 흐르는 물에 살살 씻는다. 굴전은 자잘한 굴로 해야 맛있다(예전에는 자잘한 굴들이 많이 났다, 젓가락으로 집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 굴들은 예전 굴의 세 배쯤 되는 것 같다, 시어머니는 자잘한 굴에 무넣고 고춧가루 넣어 무쳐서 푹 익혀 굴젓으로도 많이 담가먹었다). 큰 굴은 자잘한 굴만큼 맛있지 않다.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주변 어른들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컹한 굴 한 점 베어무니 뭉클
 
 겨울이면 항상 밥상에 올라왔던 엄마의 굴전
겨울이면 항상 밥상에 올라왔던 엄마의 굴전 ⓒ 안소민
  
"굴은 너무 바락바락 깨끗이 씻으면 안된다. 그러면 굴에 있는 소금 간이 다 빠져나가서 맛이 없다."
"굴에도 간이 있어?"
"그럼."


생굴을 하나 집어 맨입으로 먹어보니 살짝 짭짤하다. 습관적으로 생굴을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 버릇해서 그런지, 굴 자체의 간에 대해서 느끼지 못했나 보다. 뭐든 깨끗이 씻는게 능사만은 아닌 것 같다. 굴도 너무 깨끗이 씻으면 굴이 지닌 향기와 염분을 다 빼앗기 때문에 흐르는 물에 살살 흔들어주는 정도로 한다.

모든 식재료에는 많은 적든 그 자체의 간이 있다. 흔히 '간을 본다'는 말을 하는데, 그 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 그 사람만의 '간'이 있다. 무슨 일이든 간만 보고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간 보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어설프게 간만 보고 다니면, 다 지은 밥상도 망치기 십상이다.

간을 잘 봐야 한다

요리를 하다보면, 식재료 자체가 지닌 간을 무시할 때가 종종 있다. 본의 아니게. 그러고보면 요리는 얼마나 섬세한 노동인가. 엄마 요리에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엄마는 달걀 반죽에 따로 간을 하지 않는다. 굴에 있는 간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호에 따라 싱겁다고 생각하면 소금 간을 조금 더해도 되고, 나중에 굴전에 간장을 찍어 먹어도 된다.

큰 굴은 2등분해서 굴 전에 쓸 재료로 준비한다. 그냥 부쳐도 상관없지만, 굳이 이등분하는 이유는 잘라서 부치면 반죽이 굴에 서로 스며들어 더 맛있기 때문이란다.

"왜 굴을 굳이 반으로 잘라서 부쳐?"
"굴을 반으로 자르면 반죽이 굴에 스며들어 더 맛있기 때문이지."


씻은 굴에 밀가루 옷을 입히는데, 일단 볼에 굴을 넣고 그 위로 밀가루를 뿌린다. 밀가루를 그냥 뿌리는 게 아니라 채반에 걸러서 탈탈 털어서 뿌린다. 파우더 가루를 살짝 흩뿌리는 느낌이다. 밀가루 범벅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밀가루가 지나치면 굴의 식감이 둔해진다. 옷을 너무 껴입으면 움직임이 둔해지듯, 밀가루 옷이 너무 두터우면 굴전의 맛도 너무 무거워진다.

밀가루를 뿌린 후, 준비한 홍팀·청팀 대표선수 채소도 넣는다. 그 위에 달걀을 넣고 젓는다. 숟갈로 굴 하나씩을 건져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린다. 청팀·홍팀 대표선수도 함께 올린다.

막 구워진 굴전을 냉큼 입에 넣는다. 달걀이나 밀가루는 조연 역할만 하고 굴의 식감이 주연처럼 살아 움직인다. 방금 구워서 그런지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이상하게 봄의 식감이 느껴진다. 올 겨울, 봄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가는 겨울이 아쉬워서인지 입춘 지나고 맹추위가 돌연 몰아친다. 겨울이 완전히 가버리기 전, 다시 굴전을 만들어봐야겠다.

  
▲ 엄마요리탐구생활 영상으로 만들어본 엄마의 굴전 레시피
ⓒ 안소민

관련영상보기


[정선환 여사의 굴전 레시피]

1. 당근을 채썬다(피망이나 붉은 고추도 좋다).
2. 쪽파를 썬다(부추나 대파도 좋다).
3. 굴을 체에 밭쳐서 흐르는 물에 살살 씻는다(굴이 크다면, 체에 건진 뒤 2등분이나 3등분 한다).
4. 볼에 굴과 채소를 넣는다
5. 굴 위에 밀가루를 뿌리는데, 밀가루는 채반으로 한 번 거른 것이어야 한다
6. 달걀을 넣고 젓는다(굴 120g 기준에 달걀 2개).
7. 후추, 통깨를 넣는다.
8. 굴을 한 숟갈씩 떠서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부친다.

##엄마요리탐구생활##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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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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