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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대 학생 박선욱은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틈에 둘러싸여 즐거워하고, 강의 시간이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면학 분위기를 이끌던 학생이었다. 2016년 여름, 서울아산병원의 합격 통지를 받은 그는 '최고의 병원에서 간호사로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며 행복해했다.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2017년, 그는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가능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선배 간호사는 항상 바쁘고 예민했다. 업무를 가르칠 만한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자신이 간호사 한 명의 몫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사이에 교육 기간은 끝나버렸다.
   
교육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그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주어진 업무를 결점 없이 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입사 2개월 만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그가, 간호사 한 명의 몫을 해내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실수가 반복되었다. 작은 실수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병원에서 말이다.
    
능력보다 과중한 업무 맡으며 고립되는 신규 간호사
    
 고 박선욱 간호사는 2018년 2월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병원 내 집단괴롭힘 문화와 과중한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고 박선욱 간호사는 2018년 2월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병원 내 집단괴롭힘 문화와 과중한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 pixabay
  
대부분의 신규 간호사는 위와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병원은 신규 간호사를 충분히 교육할 만한 체계를 마련하지 못했고, 체계가 있어도 그들을 가르칠 인력이 부족했다.

짧으면 1개월, 길면 3개월의 교육 후 신규 간호사는 독립한다. 의료지식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로, 간호술기를 제대로 훈련하지 않은 상태로 혼자 환자들을 돌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병원의 환자 수보다 간호 인력이 부족해 신규 간호사의 업무 부담감은 더욱 증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전국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 수는 24명이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17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는 4명 정도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는 대개 1명이며,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일 때만 2명까지 허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간호사의 근무 환경이 열악함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신규 간호사와 경력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는 대체로 동일하다.
   
신규 간호사가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환자를 맡아 일하면 간호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는 신규 간호사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규 간호사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퇴사를 생각하게 된다. 신규 간호사의 사직률은 2018년을 기준으로 42%에 달한다(보건의료노조, 2019).
 
고 박선욱 간호사의 산업재해 인정, 그 후 1년

  
 2018년 3월 2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 성내천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18년 3월 2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 성내천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고 박선욱 간호사는 업무가 미숙한 탓에 환자의 배액관이 찢어지는 사고를 겪었고, 의료소송 가능성을 생각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서울아산병원의 도움을 받지 못했으며 결국 교육이 끝난 지 3개월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9년 3월 고인의 사망은 불충분한 교육과 과중한 업무량, 직장 내 괴롭힘 등 병원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서울아산병원은 사과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공간인 병원에서 간호사가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보건복지부는 2019년에 신규 간호사 교육제도를 개편하기 위하여 예산 77억 원을 확보하고 교육전담간호사 배치 시범사업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신규 간호사가 첫 독립 직후에 담당하는 환자 수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상급종합병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다. 또 정부는 병원 내의 태움을 줄이기 위하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도입하였고 각 병원도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 등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현장의 간호사들은 아직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비록 서울아산병원의 신규 간호사 박선욱은 그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병원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박선욱들이 남아있다. 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변화의 물결을 지속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서울아산병원이 사과할 때까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정부와 병원들이 신규 간호사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를 개발하도록 지켜보며 모두가 함께 침묵을 깨뜨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을 작성한 김민정 기자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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