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를 고발하며 '개싸움을 대신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이 같은 움직임이 중도층 이탈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왔다. 강성 지지층의 구애를 업고 있는 친문 의원들조차 "지지자들의 소위 '개싸움'은 전체 선거에 썩 좋은 요인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중도층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친문 A 의원은 17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열성 지지자들의 정서도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로 굳이 이렇게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나 싶다"라며 "당의 고발 취하로 잊혀질 수 있는 상황이 오히려 길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이어 "중도층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을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됐는지 짚어봐야 한다. 자칫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에서 여당 심판론이 50%로 집계돼 39%의 야당 심판론을 크게 앞질렀다. 전월(여당 심판론 37%·야당 심판론 52%)에 비하면 크게 역전된 수치다(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응답률 14%)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인터뷰로 진행,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혹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서울 지역 민주당 B 의원도 통화에서 "중도 보수나 중도 진보, 혹은 문재인 대통령 '소극 긍정', '소극 부정' 같은 스윙 보터(swing voter)들이 조국 사태와 개혁 정치 실종을 보며 민주당에 실망한 것 같다"라며 "(강성 지지층의 임 교수 고발 등 '개싸움'이) 흔들리는 중도층 이탈의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수도권 중진 C 의원은 "임 교수 칼럼 관련 고발 논란은 오피니언 리더나 언론에선 관심이 많지만, 일반 시민들 민생과는 거리가 먼 문제다. 여진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지자들의 '개싸움'에 대해선 "전체 선거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민주당 D 의원도 "지역을 돌다 보면 일부 열성 지지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유권자들을 만나게 된다"라며 "당이 직접 지지자들에게 개싸움을 해달라고 맡긴 것도 아닌데 피해는 고스란히 당의 몫"이라고 답답해했다.
당 차원 대응 계획 없어... "금태섭 지역구에 추가 공모, 지지자 눈치 본 결과"
이 같은 기류에도 불구하고 당에선 지지자들의 '개싸움'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모양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 E 의원은 "당 차원에서 지지자들의 자발적 행위까지 통제할 방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E 의원은 "당이 겸손하게 선거를 준비하는 것과 열혈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고발 등 '개싸움'을 대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떨어져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당에서 (지지자들의 자제를 촉구하는 등의)특별한 입장을 낼 계획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이에 민주당이 지나치게 극렬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지역 민주당 F 의원은 "최근 금태섭 의원(서울 강서갑·초선) 지역구에 추가 후보자 공모를 받겠다고 한 것은 (친문)당원들의 강력한 의견을 당에서 수용한 것"이라며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의사 결정이 총선에서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금 의원은 조국 사태와 공수처법 처리 국면에서 소신 발언을 이어가다 친문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서울 강서갑엔 '조국 백서' 추진위원회 필진인 김남국 변호사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조 전 장관을 비판한 금 의원을 저격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다만 당 지도부는 이날 "(김 변호사 출마는)개인적 판단"이라며 선을 그었다.
앞서 민주당은 '민주당만 빼고'란 제목의 칼럼을 쓴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고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지난 14일 고발을 취하했다. 하지만 이후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이들은 SNS에서 '우리가 고발해줄게'란 해시태그를 붙이며 확산을 유도하기도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중도층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지지층은 보다 냉정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라며 "임 교수와 <경향신문>은 물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정의당 등은 크게 보면 범진보 진영이다. 민주당이 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큰 형'의 모습을 보여줘야 무당층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