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날 행사와 문중원 열사 추모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해 행사는 온라인 홍보활동 중심으로 변경되었다. 이 날 대통령과 여러 지자체장들은 말의 상찬을 펼쳤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와 배제를 극복하자"며 말이다.
허나 이들이 이끌고 있는 이 나라의 성 평등지수는 매우 낮다. 과거에 비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임금차별·고용불안정·승진차별·언어폭력과 성폭력·갑질·경력단절 등 한국사회는 대단한 성불평등 국가이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
3월 8일에는 한국마사회에 맞서 싸운 고 문중원 열사 추모제도 있었다. 열사를 떠나보내는 발인이 있었던 3월 9일, 마지막까지 한국마사회는 열사를 모욕하고 우리를 분노케했다. 9일 저녁늦게 부슬거리는 비를 맞으며 양산 솥발산에 열사를 안치했지만 우리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활용한 마사회의 갑질과 횡포에 맞서는 더 큰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2017년 박경근·이현준 열사 투쟁이 있었음에도 기수와 말관리사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못했던 한계도 극복하려 한다. 일하면서 차별받지 않고 죽지않게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코로나19 재난공포정치를 통한 비정규직 차별과 위험 강요
곳곳에 걸림돌이 있을 것이다. 당장에는 코로나19 재난공포정치를 펼치는 거악에 맞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사태가 커지자 코로나19 확산과는 아무 상관없는 문중원 열사 빈소를 폭력적으로 강제철거했다. 코로나19 핑계를 대며 야만의 정치를 한 것이다. 결국 유족과 연대자들이 단식투쟁까지 했다. (경마장은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전염병이 확산될 수 있으니 폐쇄하는 건 당연하지만 열사에 대한 작은 추모공간까지 침탈한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 정권 출범 후 일어난 일을 보면 노동존중, 안전사회구현, 비정규직철폐, 차별해소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얼마 전 2019년 톨게이트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하고 대법원 판결도 무시해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발시킨 한국도로공사의 전 사장 이강래씨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망연자실하게 한 대목이다.
정치권은 여성들이 육아, 돌봄, 의료, 교육, 복지 부문에서 일하면서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말하며 겉으론 치켜세우지만, 정작 그 일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에는 인색하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강제 무급휴직을 당하거나 당분간 출근하지 말라며 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돌봄과 교육·행정지원·급식과 청소 등을 담당하는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 특수고용노동자들, 학원강사, 학습지교사, 대학강사 등이 주요 피해자로 되고 있다. 오죽하면 '병들어 죽으나, 굶어죽으나'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을까. 미용사와 식당과 전통시장과 각종 상가에서 장사하는 소상공인들의 어려움도 상당하다.
병원 상담 담당자나 간호사들은 그야말로 업무 폭주상황인데 인력과 물품 지원이 부족하다. 자원봉사자들이 온다고는 하지만 전국의 많은 의료 인력과 물자가 필요한 곳에 제 때 투입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구·경북의 여러 병원들에서는 과연 노동안전권이 제대로 보장되는지 염려되는 상황이다. 포항의료원, 경북대의료원 등에서 간호사들의 눈물겨운 악전고투 상황이 매일 들려온다. 의료노동자의 노동안전권은 환자의 건강에도 중요하다. 의료 인력이 지치고 병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며칠 전 경북도지사는 경북의 570여 집단복지시설을 모두 코호트 격리하겠다고 일방 발표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오던 이 곳 노동자들에게 수용자들과 함께 2주간 코호트 격리한다고 일방통보 해 놓고 '나중에 돈 좀 더 주겠다', '이건 권고가 아니라 강제다'라고 하는 것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철저한 준비와 구체적 인력과 제도 지원에 대한 얘기를 현장의 노동자들을 통해 듣고 현장에 맞는 대책을 먼저 내 놓았어야 했다.
이렇게 도처에서 코로나19갑질이나 준비 부족과 우려들이 넘쳐나는데 우리 노동계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정권이 특별연장근로시행규칙을 개악했을 때, 코로나19사태 초기에 여러 사업장에서 특별연장근로가 시행되었는데도 거세게 투쟁하지 못했다. 국가 위기상황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인식하고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걸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응은 사회의 문제해결 능력을 떨어뜨리고 정권과 자본의 일방적 폭주를 막을 수 없다.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해야 할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더 나빠지지 않는다.
코로나19 시기의 안전 확보 노동정치를 위하여
널리 알려져 있듯 국제전염병은 몇 년마다 한 번씩 반복된다. 코로나19는 강력한 전염력과 낮은 사망률로 인해 잠복과 확산을 막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지구적 유행이 되고 있어 국내에서 어느 정도 방어해도 또 다른 데서 다시 재발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는 좋을 리 없고 사회분위기는 혐오와 희생양 만들기로 험악해지기 쉽다.
그 피해는 대부분 비정규노동자·여성·저임금노동자·가난한 사람들·이주노동자·장애인·노약자 등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지진이든 거대한 오염이든 기후변화든 뭐든 대규모 재난의 최대 취약층은 그 사회의 약자들이다.
노동운동진영은 코로나19재난에 대응해 '가칭)코로나19재난노동특별대책단'을 구성하여 다음 4가지 요구를 내 걸고 싸울 필요가 있다는 개인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공공병원 증대와 의료민영화 저지 등 의료공공성 확대와 돌봄과 육아 및 시설관리지원 등 복지체계 강화.
둘째, 사업장 규모와 고용형태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질병유급휴가제 도입과 휴업수당 지급.
셋째,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제(일정금액 현금으로 일괄지급 후 2020년 연말정산 시 상위소득층은 환수) 또는 비정규·저소득층·소규모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재난긴급생활자금현금지원제' 도입.
넷째, 특별연장근로 확대와 탄력근로제 확대 등 코로나19를 빌미로 한 정권과 자본의 노동개악과 갑질 분쇄.
이 4가지는 모두 여성의 노동부담을 줄이고 비정규직의 노동안전권과 임금 등 노동조건 하락을 저지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진영은 코로나19라는 위협요인을 사회적 변화의 계기로 만들어내야 한다.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 특히 비정규노동자와 여성노동자를 위한 긴급 대책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이를 실현할 정치세력을 키워야 한다.
코로나19사태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이후에도 다른 유형의 국제전염병이나 기후변화위기나 각종 대규모 국가재난이 생길 수 있다. 1997~1998년의 IMF 구제금융과 2008년 리먼브러더스사태(세계금융위기) 때 노동자들이 겪은 정리해고의 아픔을 기억하자. 재난시기 노동억압의 흑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잘 준비하여 대응하였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상진(민주노총 부위원장, 김용균재단 이사)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