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소득 하위 70% 가구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의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 앞서 경기도는 소득·연령 무관'모든 경기도민'에 재난기본소득 10만원씩 지급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역시 재난기본소득 성격의 긴급지원금을 중위소득 이하 경제 취약 계층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에 대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31일 성명서에서 재난기본소득을 환영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배제와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며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그밖의 이주인권단체들도 코로나19로 침체에 빠진 경제에 시한을 정한 지역화폐 사용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저소득 취약계층에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자는 뜻에서 도입되는 제도인 만큼 지역사회에서 배제되는 구성원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도산하는 사업장이 없도록 하겠다며 지난 3월25일 모든 업종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최대 90%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휴업, 휴직수당을 지급한 사업주에게 지급한 수당의 최대 90%까지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선지원대상기업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지원대상 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E-9)는 고용보험 임의가입대상자로 실제 가입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영세한 사업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무급휴직 및 휴업을 강요하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3월30일 추가적으로 사각지대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지원 대책이 마련되어 무급휴업 및 휴직자에게 긴급 생활안정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이주노동자가 아예 지급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나 우선순위에 밀려 실제 지급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고용보험 임의가입대상으로 휴직, 휴업수당지원도 받기 어려워 무급휴업, 휴직을 강요받지만 정작 무급휴업, 휴직자를 위한 추가적인 대책에도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선제적으로 재난기본소득 논의를 이끌고 있는 지자체들은 이주노동자는 물론이고 모든 이주민들을 배제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은 인종 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는 '재난상황에서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으나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중하위 소득층에 대해 직접적이고 적시성 있는 지원'을 표방했지만, 국적자와 혼인관계에 있거나, 국적자인 미성년자녀를 양육하는 경우만 지원하고, 그밖의 이주민은 배제하고 있다.
경기도는 '모든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밝히면서 '외국인은 지원하지 않음'이라고 명시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됨에 따라 사회재난 등으로 인하여 도민 생활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에서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의 조치를 필두로 정부와 각 지자체가 재난기본소득을 분배함에 있어서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당연시한다면 그동안 진보를 자처했던 정치인들이 말하던 인권은 대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이에 '이주민은 시민이 아니며, 도민이 아닌지, 지역사회 주민이 아니다'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인지, 현실 정치인이라 어쩔 수 없다 하는 것인지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인권 기본 조례 제2조(정의) 2항에 따르면, "시민이라 함은 서울특별시에 주소 또는 거소를 둔 사람, 체류하고 있는 사람, 시에 소재하는 사업장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나와 있다. 국적이나 체류자격에 따른 구별을 하지 않고 있는 조례에 따라 서울시민인권배심회의는 2014년 말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 대한 보육 미지원은 차별이니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합의 평결을 내기도 했었다. 아무리 인권센터를 만들고 시민인권배심회의를 한다 해도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긴급지원금 외국인 배제를 당연시하는 서울시정은 인권이란 단어를 쓸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경기도 외국인주민 지원 조례는 제2조에서 외국인 주민을 "경기도내에 90일을 초과하여 거주하며 생계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과 그 자녀 및 한국어 등 한국문화와 생활에 익숙하지 아니하는 사람 등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어 외국인주민 가정이란 "도내에 주소나 거소를 두고 있는 외국인주민과 혼인·입양·혈연관계 등으로 이루어져 생계나 주거를 함께하는 공동체를 말한다."고 적시하여 국적이나 체류 자격을 따지지 않고 있다.
민선 7기 경기도정은 '누구나 차별 없는 인권 경기 구현'을 도정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도 재난기본소득에서 '외국인은 지원하지 않음'을 명시한 경기도는 '경기도 도민헌장 조례'와 '경기도 외국인 인권지원에 관한 조례'와 '경기도 외국인주민지원조례' 등을 살펴봐야 한다. 경기도 도민헌장 조례는 '인간은 존엄하다'는 문구를 시작으로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존중한다'고 적시하고 있음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 인권지원에 관한 조례 제2조 1항은 "경기도내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은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한 인격체로 국적과 피부색, 인종과 종교,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3항은 "외국인 관련 모든 시책은 인권이 다르게 적용될 수 없다는 보편적 평등사상을 기조로 하여 수립되어야 한다. 유형의 장벽뿐 아니라 관습, 제도 등 무형의 차별까지 해소하고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데 그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어 4조는 도지사의 책무로 "도지사는 외국인을 위한 인권 증진 시책을 개발하고 외국인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함"과 "외국인이 경기도내에서 교육, 문화, 의료 등 기본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공공시설을 이용하거나 시책에 참여함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같은 조례 제5조 1항은 "외국인은 자신의 법적인 지위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인권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권리의 주체임을 또한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서울시나 경기도 조례 등은 국적이나 체류자격을 따지지 않고 시민 혹은 도민으로서의 외국인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기본소득에서 이러한 조례와 인권을 빙자한 구호들은 현실정치와 거리가 먼 허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며 250만 국내 체류 외국인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19년말 기준으로 서울시 거주 등록 외국인은 28만, 경기도는 41만 명이 넘는다. 절반이 넘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서울 경기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도 이주민은 재난기본소득 논의에서 외국인 배제는 당연시되고 있다. 미등록자는 물론이고, 합법체류자도 안 된다. 심지어 결혼비자를 갖고 있거나 영주권자라도 안 된다 한다.
그렇다면 '외국인 주민'은 과연 누구인가? 전체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안산과 같은 기초자치단체는 내국인이 꺼리는 중소업체를 떠받치는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이후 일손이 아우성치는 농어촌은 물론이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업종, 식당과 간병 등 등 서비스업종 곳곳에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고, 문을 닫을 업체가 한둘이 아닌데도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당연한지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4대 보험과 세금을 원천 징수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재난기본소득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게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주노동자도 납세자요, 우리 사회 권리의 주체이다. 코로나19 이후 경영 악화를 핑계로 가장 손쉽게 해고되고, 임금체불을 경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야말로 재난기본소득 최우선 순위여야 마땅함에도 사회안전망 논의에서 차별은 여전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분노를 느끼며, 보편타당성을 지난 재난기본소득 운영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은 포르투갈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대응하며 했던 말이 한국사회에서도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예외적인 시기에는 이주민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In these exceptional times, the rights of migrants must be guarant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