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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즈음, 외국에서 근무하는 남편만큼 걱정스러웠던 것은 친정엄마였다. 호흡기가 약해 매 환절기면 기침을 달고 사는 엄마는 내가 출근하면 아이를 봐 주러 매일 아침 집으로 출근하신다. 버스로 오가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됐다. 

어린 아이를 봐 주는 부모님이 계신 경우, 함께 생활하거나 근처에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분명히 선을 그으셨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상 친정에 자주 드나들며 밥 얻어먹고 살림 부탁하지 말고 제대로 독립하라고.

아이를 봐 주시게 되면서, 또 남편이 해외파견을 나갈 때, 이른 아침 나와 저녁 늦게 돌아가는 엄마의 고생을 고려해 함께 살았으면 하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여전히 확고하셨다. 회식으로 늦어지면 버스가 끊겨 집에서 주무실 때가 가끔 있지만 매일 친정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7년째 하고 계신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였을 때, 당분간 이동을 자제하고 우리 집에 머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엄마도 어린 손자에게 전염병의 영향이 있을까 염려되었는지 아빠와 상의 끝에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그렇게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동안 엄마는 우리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왜 나는 엄마의 삶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을까
 
 매일밤 "오늘은 할머니 옆에서 잘 거야!"를 외치며 베개를 들고 침대 밑, 할머니 곁에 누웠다가 불을 끄면 다시 내 옆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아이는 일주일째쯤 되자 자연스레 할머니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매일밤 "오늘은 할머니 옆에서 잘 거야!"를 외치며 베개를 들고 침대 밑, 할머니 곁에 누웠다가 불을 끄면 다시 내 옆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아이는 일주일째쯤 되자 자연스레 할머니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 unsplash
 
엄마의 합류로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사람 하나가 늘었을 뿐인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대화가 풍성해졌고, 게임은 흥미진진해졌다.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공포 앞에 모든 것이 막연하고 두려운 와중에도 엄마가 계신 집은 따스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다.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피곤한 엄마는 눈이 감긴다며 일찍 잠자리에 드셨지만 아이는 평소보다 훨씬 즐겁고 안정되어 보였다. 

매일밤 "오늘은 할머니 옆에서 잘 거야!"를 외치며 베개를 들고 침대 밑, 할머니 곁에 누웠다가 불을 끄면 다시 내 옆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아이는 일주일째쯤 되자 자연스레 할머니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어느 새벽, 두사람이 꼭 붙어 잠든 모습을 보다가 사느라 잊고 지냈던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아이가 자라난 만큼 엄마도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스름한 새벽 빛에 보이는 엄마의 잠든 얼굴. 어린 시절 나를 기쁨과 좌절에 빠트리며 좌지우지했던 기억 속의 사람과 너무나도 달라보였다.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살짝 찡그린 듯 표정으로 눈을 감고 피곤함에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엄한 말에 상처받고 때로 더한 가시를 내 보였던 철없던 자식을 위해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는 손자까지 돌보느라 남은 노년의 젊음까지 소진하고 있는 엄마의 삶을 나는 왜 늘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문득 엄마라는 납작한 역할 속에 눌려있는 그녀의 삶을 떠올려 봤다. 나의 엄마가 아닌 다른 꿈을 가진 존재로서의 엄마, 시대와 환경으로 인해서 그것을 자식을 먹이고 입히며 돌보는 것으로 치환했을 한 여인.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잘하는 공부를 지속할 수 없었기에, 누군가의 아내와 부모가 되어야 했던 당신이 지나쳐 왔어야 할 삶의 고비와 눈물, 기쁨들을 상상했다. 

자신이 너무나도 무겁고 급급했던 나는 그 삶을 답습하지 않겠다며 단정하고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인의 삶과 희생을 자양분 삼아 꿈을 꾸었고 지금도 미완성인 그 꿈을 위해 또 남은 그녀의 시간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안팍으로 사회적 거리를 두느라 온 세상이 단절되었던 시간 동안 결혼 후 처음으로 엄마와 일상을 함께 보내며 그녀를 생각하며 애달팠고 가슴이 아팠다. 줄곧 역할에 매몰된 고정된 존재로 엄마를 바라보던 나의 관념이 조금씩 흔들렸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밥을 먹은 후 나는 출근하고 저녁에야 엄마와 아이를 만나 시시한 농담과 놀이를 하고 잠이 드는 중간 중간, 늘 거기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만 간주했던 엄마의 하루, 수많은 시간과 앞으로의 나날들이 사무치게 궁금했고 그리움으로 가득찼다.

앞으로 남은 삶에서 이런 시간을 또 가질 수 있을까? 충만감 가득한 엄마의 온기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그녀를 다시 보고 내 삶의 기준을 세우고 균형을 잡았다.

바뀌는 세상,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것

세상이 온통 코로나19가 가져온 세상의 변화에 맞춰 발빠르게 움직이고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뉴노멀(New normal)이며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의 도전에 맞추어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위기감만큼이나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런 변화 속에서도 유한한 삶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모두가 단절되는 순간, 만날 수밖에 없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더이상 미루지도 허투루 쓰고 싶지도 않다는 간절한 마음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꿈을 이룬 후, 여유가 생긴 다음으로 늘 연기하고 적립해 두었던 감사와 사랑의 표현들이 내 안에 가득하다. 너무 오래되어 때로는 식상하고 오글거리며 그렇게 모른척 외면해 온 감정들이었다. 함께 시간이 허락될 때 이제 그 감정들을 충분히 꺼내어 나누고 싶어졌다. 엄마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평생 내게 나누어주었던 엄마의 삶이 곧 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하루하루 확인하며 보내고 싶어졌다.

너무나도 진부한 클리셰들이 결국 삶을 만들고 지탱해준 나의 모든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제는 늘 나중으로 미뤘던 것들부터 지금 바로 조금씩 하고 싶다. 엄마에게 받았던 것들을 꺼내어 나의 삶에 옮겨심어 보려 한다. 아이에게 그것을 전해주고 싶고 엄마에게도 돌려드리고 싶다.

사회와의 단절로 인해 무기력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굳건하고 따스한 지지와 사랑으로 이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주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 엄마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코로나가내게준깨달음#코로나이후의삶#가장근본적인가치를중시하는삶#진부한삶의방식이결국나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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