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정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 중 하나가 '재난지원금'이다. 태풍, 폭염, 폭설, 지진 등의 천재지변으로 인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재난인 줄 알았다. 처음으로 인간의 몸에 발병한 질병도 재난으로 불러야 하는 때를 맞았다.
코로나19는 사시사철 중에 한 철도 모자라 두 철이 지나도록 우리 인간을 비웃으며 기생하고 있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신기하게도 전 세계, 그것도 복지사회를 이루었다는 나라에서 더 기승이다. 더욱더 큰 문제는 이 재난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생물'이란 점이다. 그러니 분명 '재난'이라 불릴 수 있다.
재난이 있을 때마다 국가는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위해서 위로금, '재난지원금'을 주었다. 각 지역 자치별로, 또는 국가가 특별지역으로 선포하여 지원금을 받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코로나 이후 국가의 정책에 설왕설래하는 말들도 많았지만, 이번 '국가 재난지원금 100% 지급'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나도 역시 좋았다. 언젠가 일년에 한번 있는 생일에 국가가 그 개인의 존엄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생일복지금'을 주면 좋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왠지 우리 가족 생일을 한 날에 맞은 것처럼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국가재난지원금 신청 1일 차, 학원선생님들의 화두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원금을 신청하는 방법, 또 하나는 지원금 신청시 하단에 명기된 '기부'라는 용어에 대한 얘기였다.
은행에서 지원금 신청할 때 개인정보열람 전체 동의를 구하는 약관이 있었다. 끝까지 읽어보지 않고 동의란에 클릭을 누르면 신청한 지원금이 전체 기부금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많은 민원으로 지금은 취소할 수 있도록 시정이 되었지만 이 일로 나는 '기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재난지원금 기부 소동으로 돌아본 '나의 기부'
8년차 자원봉사활동으로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기에 1회 이상 학생들에게 자원봉사소양교육을 하면서 봉사의 참뜻과 봉사의 특성들을 퀴즈나 게임으로 설명한다.
'자발성', '이타성', '무보수성', '자아실현성', '지속성', '공공성' 등 봉사활동에서 기억하면 좋은 특성들을 말한다. 활동현장에 온 학생들이 몸으로 그 이론들을 느낄 때까지 제법 많은 시간과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교육하고 학생들은 배운다. 그러면서 함께 실천한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봉사활동들이 멈춰 있지만 '중고책 북비지장터'는 여전히 개장이다. 작년 5월 군산의 문화거점, 한길문고 대표님(문지영)이 제안한 봉사활동이다.
"선생님, 올해 연말까지, 시민들이 주는 중고책을 기부받아, 서점에서 다시 판매하여 미혼모가정이나 지역아동센터 등에 그 수익금을 기부할까 해요. 혹시 책을 판매하는데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즐겁게 시작했다. 한길문고에서는 이 기부활동내용을 사비로 홍보해주었고 나와 학생들은 모아진 책을 판매했다. 성인책은 한 권 당 2000원, 아동책은 1000원씩 팔았다.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총 79만 원이 모아졌다.
올 1월 초에 군산의 신광모자원에 기부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수혜자들은 기부금으로 다시 신간 책과 다른 것들을 살 수 있었다. 코로나가 핵심으로 떠오르기 전, 1월 3주차, 새해의 '북비지 중고장터'가 열렸다.
북비지 중고장터(Book Busy Flea Market)는 말 그대로 책들이 바쁘게 선순환되는 마음을 담아 이름 지었다. 기부하는 사람도 바쁘게, 다시 책을 사가는 사람도 바쁘게, 돌고 도는 모든 책들이 정말 바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사실, 이윤을 무시할 수 없는 서점에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한 중앙에 이 장터를 세우고 기부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길문고는 지역사회의 책 문화뿐만이 아니라, 개인들이 주관하는 다양한 모임까지도 자리를 내어준다. 서점 대표의 넉넉하고 공유하는 마음이 없다면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5월 3주차 토요일, 중고장터가 열렸다. 봉사학생과 함께 나가서 매대에 책을 전시했다. 이왕이면,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책과 대중성 있는 작가들의 책을 중심으로 진열한다.
"여기 코너는 시민들이 기부해 주신 중고책을 다시 팔아서 기부금을 모으는 곳이에요. 한 권 당 2000원이에요. 정말 좋은 책들이 많아요. 한번 살펴보세요"라고 호객 행위를 했다. 봉사자들은 부끄러운지, "선생님이 해주세요. 저희는 책 드리고 돈만 받을게요"라고 했다. 그렇지. 부끄러울 수 있지. 하물며, 서점 안이니, 시끄럽게 할 수도 없을 터였다.
지난 2월에는 지역의 어느 분께서 무려 300여 권의 책을 기부해 주어서 중고장터가 최대의 성황을 이뤘다. 2월 수익금이 무려 35만 원이었다. 이번 달은 총 17권의 책이 판매되어 2만7000원의 기부금이 적립되었다. "얘들아, 최소 오늘 밥값은 했다"라고 좋아했다.
요즘은 기부자도 구매자도 줄어든 상황이다. 코로나의 여파도 그렇고, 책을 읽지 않는 영향도 있다. 매회 그랬지만, 어제도 나의 지인들 카톡들은 불이 났을 거다. 책들의 사진을 찍어서, 일일이 멋진 멘트를 달아서 단체 톡으로 날렸다.
자원봉사는 인생 반 백이 넘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적, 정신적 기부이다. 다시 생각해본다. 나에게 기부란 무엇인가? 왜 기부를 하는가?
첫째, 내 삶의 발전 도구이다.
둘째, 내 아들 딸이 살아갈 미래세대에 대한 책무를 대신하는 위로제이다.
셋째, 내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와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다.
이제 6월 장터가 열리기 전에, 내 책꽂이부터 살펴 기부할 책을 골라야겠다. 책 소장 욕심으로 사기만 하지 기부를 많이 못했다. 하지만 군산시에게 받은 재난지원금 중 내 몫 전액을 기부했다. 다시 또 홍보 문자를 보내야겠다.
"여러분의 서가를 봐주세요. 너무 재밌어서 다른 분들도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들이 있는지, 그런 책들은 북비지 중고장터에 기부해 주세요. 책을 사실 때 재난지원금 카드도 사용할 수 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