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니메이션 <원더키디>를 보고 자란 세대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형 우주선들이 날아다니고, 우주복을 입고 있던 주인공들, 외계인들과 외계 애완 동물들이 등장했던 것 같다. 하필, 그 원더키디는 2020년을 상상한 공상만화였는데, 실제로 2020년이 된 지금 코로나19를 피해 집에 꼭꼭 숨어 있게 될 줄이야.
진력이 나도록 집에만 있던 기간
내가 사는 스페인은 그 상황이, 한국은 물론,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도 심해서 3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두 달여간을 봉쇄 상태로 있다. 다만, 5월로 넘어오면서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모두 눈에 띄게 줄어서, 점차 제약들이 풀려 두 주쯤 전부터는 연령에 따라 시간대를 나눠 산책도 할 수 있다.
스페인 내 심각도가 지역별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상황을 가장 심각한 단계 0에서 시작해 마지막 단계 3까지 총 4개의 단계로 분류하고 봉쇄 해제 절차를 밟아가기로 결정했다. 제일 심각했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아직 단계 0으로 분류되어 산책이나 운동 외에는 최대한 집에서 머무는 수준이다.
경제 문제를 고려해 며칠 전부터 중간 단계인 0.5로 수정해 특정 사업체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는데, 시민의 일상은 단계 0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점차 단계 1로 진입을 하게 되면 호텔이나, 공연 등의 문화 시설들이 조금씩 더 문을 열고, 모임을 포함해 전반적인 제한들이 더 완화되어 갈 것이다.
돌아보니 벌써 두 달이 넘도록 진력이 나게 집에만 있었는데 '그 새 두 달이 훌쩍 넘은 거야'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지내 그런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 동료들과도 그렇다. 일 때문에 거의 매일 같이 화상 회의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다들 집에 있으니 서로 언제든 메일이나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다.
3월 13일 산체스 총리가 갑작스런 국가 위기 상태 선포를 하고 나서는 갑자기 정전이 되었을 때와 같은 적막함과 단절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한동안 뉴스를 찾아보느라 바빴지만, 그때도 친구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달랬다.
현대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문명의 이기(利器) 에 두려움을 느껴왔다. 최근까지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인간관계를 저해한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가 들이닥친 지금은 어떤가. 그러한 기술들이 '비대면 처방'을 받은 우리 각자를 이어주는 요체가 되고 있지 않나.
현대의 기술이 좋기만 하다거나, 그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유배지 생활 같았던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에서 문명의 이기(利器)는 내 생활에 해방감을 주었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다른 이들과 엮어 놓은 건 사실이다. 이를테면, 연락이 뜸하던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거의 매일이다시피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게 된 거다.
결혼을 한 친구, 안 한 친구, 아이가 있는 친구, 없는 친구, 각자 서울에 울산에 도쿄에 바르셀로나에, 생활 반경과 활동 패턴이 워낙 다른지라 단체톡 방이 일년이면 몇 번이나 알람이 울릴까 말까 했는데... 코로나19로 달라졌다.
지난 두 달 우리는 다시 중학교 때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서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친구가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얼려두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던 날은, 나는 그 친구 집에 냉동고가 두 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며칠 전에는 그 집에 근사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번개를 하듯 갑자기 단체 영상 통화를 했는데, 오래 전에 봤던 친구의 아이가 말을 걸었다. "이모, 거기는 왜 밤이 아니에요?" 스페인은 한국보다 시간이 늦기 때문이라니까, 자기는 스페인이 좋다며 계속 낮인 스페인에 와서 살겠단다. 마지막으로 봤던 때 아직 걸음이 서툴던 아이였는데, 벌써 이렇게 컸다니... 서로 이렇게 채팅도 하지 못했던 우리였구나, 싶었던 날.
초등학교때부터 자매처럼 자랐던 다른 친구와도 요즘 부쩍 더 연락을 한다. 오랜 친구들이 으레 그렇듯이, 어려서 함께 제인 오스틴을 읽었던 이야기, 친구가 한창 비주얼락에 빠져 있었을 때 내게도 강권해 몇몇 밴드의 음악을 들어야 했던 이야기들을 하며 함께 웃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연구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에게 "그래 잘하고 있어. 힘내" 한마디씩 하고 난 뒤에는 그대로 위로가 되고, 다 괜찮다 싶은 마음이 된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함께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해주면서 삶을 살아낸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꽁꽁 봉쇄해 놓은 지금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도구를 총 동원해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거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일주일쯤 전인가. 한창 자연의 싱그러움이 그리워서 그랬는지 동료와의 대화에서 내가 말했다.
"나는 요즘 자연이 너무 그리워. 정말 그리워서 그런 건지, 못가니까 괜히 그러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야."
스크린 속 동료가 깔깔거리며 답을 했다.
"맞아. 금기는 왜 늘 욕망이 되는지도 좋은 연구 주제지."
"그런데 우리 사실 봉쇄치고 너무 잘 지내는 거 같지 않아?"
"맞아. 지낼 만하지.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처음에 너무 이상할 거야. 이대로가 더 좋으면 어쩌지."
이대로가 더 좋을 리가 있나. 그런데도 우리의 대화는 종종 저렇게 깔깔 거리면서 마무리 된다. 스몰 토크. 사소한 이야기. 진지한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도 좋다. 오늘은 그냥 햇살이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마냥 행복했다는 그런 이야기에 서로, 정말 그래, 맞아, 하는 동안, 우리는 다시 싱그러워진다. 비 온 뒤의 나뭇잎들 풀잎들처럼.
더 엄격할 수 없었을 것 같던 스페인의 봉쇄가 어느새 막바지로 들어서 조금씩 제한이 풀려가고 있다. 제 2의 파도가 올 거라는 예상은 여전히 있지만, 예전으로 조금 가까워진다는 말이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다시 파도가 온다고 해도 우리는 결국 지금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견뎌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