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빌미로 한 원격의료 도입 시도가 노골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을 전면화하며 "비대면 진료가 포스트 코로나 중점 육성 사업"이라고 운을 떼자, 각 정부 부처에서 말을 보탰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5월 14일 제3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기획재정부도 비대면 의료 도입에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앞으로 원격의료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일 대통령 주재 6차 비상경제회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원격의료 추진을 향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담았다. 웨어러블 기기 등을 보급해 원격 건강관리 사업을 벌이고, IoT·AI기반 통합돌봄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일 발표된 3차 추경안에는 IT기술 활용 건강관리 사업 확대와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대상 확대 등 비대면 진료 활성화 방안에 130여억 원이 투입됐다.
현 정부·여당이 야당 시절 반대했던 '원격의료'를 언급하기는 못내 찜찜했는지, 원격의료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 의료법 체계 내에서 가능한 사업을 최대한 확대하고 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후 의료법 개정 등을 통해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8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도입한 전화상담·처방의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맡겼다. 원격의료는 지금까지 수차례 시도에도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추진되지 못했다. 한시적·한정적으로 진행한 사업에 대한 효과 분석은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비대면 진료 확대, 곧 원격의료 도입 주장은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과 의료 격오지에서 의료 접근성 제고를 근거로 댄다. 하지만 원격의료가 등장한 배경을 조금만 살펴보면 진짜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원격의료는 지난 5월 7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운운하며 등장했다.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는 코로나19 여파로 닥쳐온 경제 위기 극복을 목적으로 한다. 즉 원격의료는 보건의료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 진료라는 이름이 붙었어도 원격의료와 비대면 진료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보건의료정책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정책이다. 우리는 이를 '의료 영리화'라 부른다. 국민 건강을 빌미로 돈을 벌겠다는 이야기다.
'원격의료=이윤 추구'가 성립되는 이유
정부의 의료영리화 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정부는 2018년 '선(善)한 원격의료'라는 형용모순적 표현을 쓰며 원격의료 도입을 시도했으며, 동시에 의료기기와 바이오의약품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더불어 민감한 의료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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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제 중대본은 지난 5월 29일, '의료정보 상품화'를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방안'으로 꼽았다. 보건의료를 이윤 목적의 산업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경제 성장과 산업 육성 그리고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면 국민의 건강, 안전, 생명은 뒷전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2014년 보건복지부는 만성질환자 585만 명에게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20조 이상이 지출된다고 예상했다. 원격의료는 IT·통신업계와 의료기기업체 그리고 대형 재벌병원에 엄청난 이윤 창출 기회다. 이들이 돈을 버는 만큼 늘어갈 의료비용은 환자와 건강보험 가입자, 즉 전 국민의 몫이다. 기업들의 배를 채우는 대신, 국민들은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제도로 부담만 늘게 된다. 원격의료를 향한 시선에는 이윤 추구만이 존재한다.
경제적 부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원격의료의 안전성은 누구도 담보하지 않는다. 의료지식이 없는 환자가 원격 진료기기를 작동하거나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원격으로 처방을 받았을 때, 오진과 의료사고 위험성은 전문 의료진이 직접 진료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은 6일 자신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감기 증상 환자 진료를 예로 들어 '원격의료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백재중 과장은 "가장 흔하고 쉬울 것 같은 감기 증상 환자도 입 안을 들여다보고 편도가 부어있으면 항생제를 처방해야 한다. 부비동염이 있으면 엑스레이 촬영을 해야 하고 청진으로 수포음, 천명음이 들리는지도 확인해봐야 한다"면서 원격의료가 가진 한계를 설명했다.
백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단순한 감기 증상처럼 보여도 폐렴이나 천식, 결핵 심지어 폐암 등 심각한 질환일 수 있기에 비대면 진료가 아닌 대면 진료가 필요하다. 비교적 경증인 감기 증상 환자의 경우도 이런데 더 심각한 증상의 경우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원격의료로 오진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모호한 책임 소재 문제 역시 심각한 문제다.
원격의료는 환자 진찰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이 와중에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가 지난 4일 원격의료에 조건부 찬성한다고 밝혔다. 병협은 초진환자 대면진료 원칙, 환자 쏠림 현상 방지와 의료기관 종별 역할에서 차별 금지, 환자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병협이 내건 조건은 체계가 잡히지 않은 현 의료전달체계에서 성립하기 어렵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가 불가능한 지금도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환자들이 모두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린다. 원격의료가 본격화될 경우 환자 쏠림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원격의료 경쟁이 심각해지면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병·의원은 살아남기 어렵다. 지역에서 응급치료를 담당해야 할 지역의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들의 생존도 어려워질 수 있다. 원격의료 도입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원격의료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의료전달체계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 이후 산발적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신규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가을-겨울 대유행 경고에 이어 이제는 수도권 대유행이 경고되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그 끝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확인했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공공병원과 보건의료인력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전체 병상 수 대비 10%밖에 되지 않는 공공병원이 방역의 주춧돌이었고 보건의료 인력의 헌신 덕분에 'K-방역'이 가능했다.
OECD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할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열악한 보건의료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보건의료 인력을 확충해 의료기관 현장의 인력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원격의료를 통해서는 코로나19 환자를 진찰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빌미 삼은 원격의료 도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홍보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