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부터,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나는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결혼한 뒤에 남편과 딩크(자녀를 두지 않은 맞벌이 부부)로 살기로 합의했고 나의 결심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했다. 그럼에도 때로는 궁금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이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데,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된다는데, 내가 지금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보다 결혼한 지 오래된,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을 더 오랫동안 영위하고 있는 다른 부부들의 삶은 어떨까? 사회가 경고했듯, 나는 노후에 정말 부속품 하나가 빠진 것처럼 불완전한 삶을 살게 되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답이 궁금했다. 다만 이미 딩크를 선언한 내가 그런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당장 하나 낳아'라는 답이 돌아올 게 뻔했다. 굳이 이 불안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은 이유다.
그래서 저자 최지은과 17명의 무자녀 여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책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펼치기 전부터,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또 반가웠다. 이 책은 무자녀 여성들에게 가장 쟁점이 되는 32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그들의 다양한 상황과 고민, 결정을 담아냈다.
나는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질문을 듣고 내 속에서 대답을 정리하는 인터뷰이의 한 명인 것처럼 때로는 성급하게, 또 때로는 아껴가며 책장을 넘겼다.
흔들림과 결심에 대한 이야기
이 책에서 저자가 인터뷰한 17명의 여성 중에선 나처럼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케이스도 있었고, 혹은 결혼 후에 남편과의 합의를 통해 결정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딱 한 번만 사는 인생에 있어 '낳는다' 혹은 '낳지 않는다'라는, 두 갈래의 타협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문제는 마감에 쫓기듯, 제한된 시간 내에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나이는 들어가고, 내 몸은 임신할 수 없는 시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체크한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 대체 누가 채점해주는 걸까! 그런 고민에 대해 이 책의 '도윤'은 이렇게 말한다.
"20대에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지만 절대로 낳지 말자는 생각까지는 하지 말자,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라는 태도로 살았어요. 그 후로도 저는 계속 '낳음'에 대해 두리번거렸어요. 정말 괜찮은 건가, 저게 내 것이 되었을 땐 어떨까. 하지만 점점 드는 확신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이를 낳음으로써 불행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고, 저기에 행복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행복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죠." (27p)
생각해보면 나 역시 마음속에 결론은 내려져 있는데도 여전히 '낳음에 대한 두리번거림'이 존재했던 것 같다. 아이를 낳는 쪽이든, 낳지 않는 쪽이든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시선과 고민까지 포함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 당연하니까.
선택하지 않은 길은 내가 걸어갈 수 없다. 아이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갈림길에서 마찬가지고, 나는 매번 내가 조금 더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해 걸어왔다. 누군가는 내가 가지 않은 길에서 놀라운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르나, 나는 또 내가 선택한 길에만 존재하는 다른 종류의 행복에 만족한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뭐가 있었을까, 하는 미련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아이에 대한 흔들림을 포함해 낳지 않겠다는 최종 결정은 늘 나의 내면에서 나왔다. 나는 한 생명을 낳고 길러 한 사람의 몫을 해낼 때까지 기르고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그 아이를 사랑하고 견뎌낼 자신, 나의 장점과 단점의 일부를 닮고 혹은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어떤 성향을 드러내는 아이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이 책의 '정원'의 생각도 나와 비슷했다.
"아이라는 그 거대한 불확실성을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아이가 태어난 뒤에 재편될 제 인생에 대한 것 외에도, 일단 그 애가 어떤 애일지 모른다는 게 저한테는 너무 미지의 공포예요." (67p)
반면 아기를 낳으라는 권고(때론 압박)는 항상 외부에서 왔다. 나뿐만 아니라 이들의 무자녀 결정에 대해 주변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아이를 싫어해도 본인 아이를 낳아보면 다르다', '지금이야 젊어서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외로워서 어쩌려고 그러느냐' 등.
다들 어디서 그렇게 똑같은 멘트를 배웠나 싶어 나는 무심코 픽 웃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어떻게 그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수많은 지레짐작을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결정
얼마 전에는 시가에 갔다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는 얘기를 하자 시아버지가 때를 놓치지 않고 '내가 그동안 잔소리 별로 안 했지?'라며 시동을 거셨다. 결혼한 직후에 이미 아이는 갖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기회만 있으면 우리에게 아이를 권하시곤 한다.
시어머니가 말려주시는 덕에 시아버지의 아기 잔소리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아기 소식을 기다리고 계신 만큼 한 번씩 뼈 있는 멘트가 꽂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벌써 1년 전에 새로 입양한 대형견 소식을 전했더니, 시아버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개도 키운다고?"
작년에 '개를 키우면 아기는 언제 낳으려고 그러느냐'며 남편의 등짝을 후려치셨던 시아버지지만, 이미 키우고 있다고 하니 더 이상 별말씀은 없으셨다. 하지만 현재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대형견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도 어른들에게는 아이에 대한 장애물 중 하나로 보이는 모양이다.
"어떤 시가 친척분이 "애 낳으면 고양이는 버릴 거지?" 그러시더라고요. 아니, 부모가 되면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생겨야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죠." (155p)
어찌 보면 그저 별 뜻 없이 버릇처럼 지나가는 말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언제까지 이런 메시지를 못 들은 척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 문득 생각했다. 내 주변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도 많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아직 높은 벽 너머의 이해할 수 없는 세대, '이기적이고 별난 젊은 세대'의 이야기인 듯하다.
특히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건 나와 남편의 공동 결정인데도, 그에 대한 압박은 나를 더 향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어른들도 원하시는데…'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어쩌다 보니' 나의 선택보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우선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눈 딱 감고 나 하나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그 결정, 아... 왠지 이 의식의 흐름이 무척 익숙하다. 결혼한 여성이라면 명절에, 제사 때,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온 가족의 바람과 심지어 사회적 관습에 등 떠밀리는 그 모든 순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당사자 부부, 무엇보다 자신의 삶 전반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여성 본인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걸.
나와 다른 삶에 대한 존중
아이를 낳는 선택과 낳지 않는 선택은 모두 공정하게 존중받아야 할 일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한 경우 '순리를 거스른다'는 곳곳의 오지랖에 대처해야 할 때가 많다. 삶에 대한 선택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나도 주변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데, 사는 모양이 달라지면서 확실히 공통분모가 줄어드는 느낌도 든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혹은 바쁠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선뜻 먼저 연락을 취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갈래 길 앞에서 우리가 의도치 않게 서로를 상처 입히면 어쩌나 불안할 때도 있었다.
각자의 기준대로 서로의 선택에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이 아닐까.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가 그렇게 힘든 거라면 난 못 하겠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이들이 기꺼이 감내하는 축복을 단순한 노동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렇다. 반대로 나 역시 내 삶에 대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다.
가끔 우리는 무심코 서로의 삶을 단정지어 버린다. 아이가 있어서 자유가 사라졌을 거라고, 혹은 아이가 없어서 외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 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도 서로 마음과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일 것이다.
"집 안에 북적이는 손님들을 보며 코넬리아는 어이없어 하지만, 그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아이 없는 사람이 외로울 때가 있듯, 사람은 아이가 있어서 외로울 때도 있다는 것을. 각자의 삶에는 각기 다른 무게와 괴로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관계를 이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우리는 성숙이라 부른다." (80p)
이 책을 읽으며 딩크 여성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내 얘기처럼 와닿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내 마음에 대해, 혹은 그 이후의 내면적 혹은 외부적인 갈등에 대해 누군가와 요목조목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책장 너머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혼자서 반가움을 느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이 쉽지 않은 요즘, 이 책을 통해 비슷하고 또 다른 여성들과 도란도란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듯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대화의 장에 합류해 다양한 고민을 나누고 싶은 또 다른 초대 손님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