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 스님,
10년 전 묵은 편지를 꺼내들었습니다.
[관련글] "황금빛 탐욕, 오만의 바벨탑 허물며 수경 스님 '빈자리'에 머물겠습니다" http://omn.kr/1oqu9
4대강사업이 한창이던 2010년 6월 30일에 <오마이뉴스>에 올린 공개편지입니다. 우선 부끄러운 고백부터 하자면 치기 어린 제목이었고, 편지에서 제가 다짐한 내용도 감당치 못했습니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하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신 스님의 빈자리를 함께 채우자고 시작한 '4대강에 띄우는 편지' 연재기획이었는데, 4대강 16개 보는 지금도 건재합니다.
스님께서 떠나시면서 남기신 글에는 '더 이상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밝히셨지만, 저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스님이 절방에 앉아 대접을 받고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새만금 삼보일배, 한반도 대운하 생명의 강 순례, 그리고 4대강 사업 오체투지 등 생명을 파괴하는 대형 국책사업에 맞서서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혹한과 혹서가 교차했던 그 길은 편한 절방이 아니라 풍찬노숙 하는 거리의 선방이었고, 스님은 불교의 계율인 '불살생'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거리의 수행자였습니다. ('4대강에 띄우는 편지'에서 발췌)
수경 스님,
사단법인 <세상과함께>(이사장 유연 스님)가 스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이하 오체투지상)을 제정했습니다. 지난 2015년에 창립해서 그동안 국내 소외계층과 해외 빈곤층의 삶의 질 향상과 자립기반을 마련해온 단체입니다. 특히 미얀마 학교 건립 및 어린이 돕기, 국내 장애인 돕기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모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왔습니다.
제가 최근 묵은 편지를 들춰본 것은 이 단체의 환경상 제정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삼보일배-오체투지] 생명, 평화, 사람의 길을 한 뼘이라도 넓히는데...
삼보일배(三步一拜).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을 하는 불교의 수행법입니다.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은 2003년 3월 28일부터 65일 동안 삼보일배하면서 새만금의 해창 갯벌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약 305㎞ 구간을 걸었습니다. 개발로 인해 죽어갈 새만금 갯벌의 뭇생명을 살리기 위한 고행의 길이었습니다.
오체투지(五體投地).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불교 수행법입니다. 스님은 4대강사업이 추진될 때인 2008년 9월 4일부터 지리산에서 출발해 계룡산까지 200여㎞를 59일 동안, 이듬해 3월28일부터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서울까지 하루 4km씩 49일 동안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자벌레처럼 온몸으로 기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체투지를 떠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 땅의 품에 안기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온 숨을 땅에 바치고, 땅이 베풀어 주는 기운으로만 기어서 가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오체투지가 온전히 생명과 평화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중략) 이리하여 나의 오체투지는 참회와 기도입니다. (중략) 나의 오체투지가 생명의 실상을 바로 보고 만물동체라는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의 길을 한 뼘이라도 넓히는 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온몸으로 생명과 평화, 사람의 길을 찾아 나섰던 고행이었습니다.
[관련 글] 수경스님의 '오체투지를 떠나며' 글 전문 http://omn.kr/1oquf
[(사)세상과함께] 세상의 위기와 고통 함께한 참 환경인 찾아 나선다
수경 스님,
'세상과함께'가 오체투지 환경상을 제정한 이유도 스님의 오체투지 기도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이 단체의 이사장인 유연 스님은 상의 제정 취지에 대해 "모든 생명의 존엄과 안락한 행복을 위해 가장 낮은 자세로 새만금 삼보일배, 사대강을 위하여 오체투지했던 헌신을 되살리고자 세상과함께(사)에서 주는 환경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연 스님은 탐욕과 오만으로 파헤친 국토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참게'에 비유했습니다.
참게는 군산 앞바다에서 거슬러 올라와 칠갑산 아래서 알을 낳고 옥천까지 간다고 합니다. 그 작은 몸으로 몇 개의 보와 콘크리트 벽을 기어오르다 죽기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기도 한다지요? 국토의 살과 뼈와 핏줄인 산과 강을 파헤쳐 놓은 우리는 녹조와 환경 재앙을 만나 힘겹습니다. 지금은 역병과도 씨름하고 있습니다. 처지가 참게와 다르지 않습니다. 참게가 살 수 있는 환경이라야 인간도 살 수 있으며 두려움 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유연 스님은 "오체투지 환경상은 자연과 생명을 보살피는 사람들의 실천적 노고를 응원하려고 한다"면서 "낮은 자리에서 기는 참게의 인내를 배우며 세상의 위기와 고통에 함께 해 온 참 환경인을 찾아가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세상과함께' 송옥규 환경위원장은 "오체투지 환경상은 환경운동 분야에서의 일등을 뽑는 상이라기보다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교육하고, 조사연구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제정된 상"이라면서 "자천 타천으로 누구나 응모가 가능하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10년 전과 10년 뒤] 4대강은 그대로... 오체투지 정신이 절실한 까닭
사실 저는 오체투지 환경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지난 13년간 4대강사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고, 지난해 <오마이뉴스>가 만든 4대강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을 연출했다는 점 등이 심사위원 선정 이유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게는 분에 넘치는 일이지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10년 전 '4대강에 띄우는 편지'에서의 다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입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삼보일배, 오체투지 하면서 수경 스님의 빈자리를 채우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면피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따라나선 길입니다.
수경 스님,
정권은 바뀌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10여 년 전 스님과 함께 4대강 싸움을 하면서 함께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지금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장관이 되고, 청와대에도 입성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인사도 있고, 기관장도 됐습니다. 지난 2017년 촛불 대선 정국에서 4대강 적폐청산 구호를 외쳤던 사람들이고, 4대강재자연화를 약속한 인사들입니다. 이들은 집권 4년차에 들어섰는데도, 4대강 보 처리 문제에 대해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습니다.
오체투지를 떠나실 때 스님이 발표한 기도문에는 작금의 상황을 예견해서 경책(警策)한 듯한 말씀도 있습니다.
대통령답게, 기업가답게, 국회의원답게, 공무원으로서 공복답게, 공권력으로서 경찰답게, 종교인으로서 신부는 신부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수행자로서 스님네들은 스님답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직분답게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잘 알 것입니다. 다만 아는 대로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오체투지를 합니다.
결국, 사람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스님께서 오체투지를 통해 '사람의 길'을 찾아 나섰던 이유를, 요즘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길] 삼보일배, 오체투지 하는 참 환경인들을 추천해주세요
하지만 희망도 있습니다. 지금도 4대강 현장에 남아 "여기, 강이 죽어간다" "여기, 생명이 죽어간다"고 외치면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희망의 근거입니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대안에너지를 찾아 나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와 이웃들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오염된 먹거리 식습관도 개선하면서 작은 실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스님처럼 생명, 평화, 사람의 길을 걷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거나, 크게는 온몸을 바쳐 헌신하는 삼보일배, 오체투지인 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공존하기 위해 고행을 자처한 사람들. 이들을 발굴, 포상하면서 어깨동무하려는 '세상과함께'의 오체투지상 제정이 뜻 깊게 다가왔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경 스님,
지금도 삼보일배, 오체투지 정신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이들이 지치지 않고 소중한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부탁드립니다. '세상과함께'가 찾아 나선 참 환경인을 적극 추천해주시고 이 소식도 SNS 등을 통해 널리 퍼트려 주십시오. 사람이 희망입니다. 그 희망을 만드는 길에 함께 나서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지금 4대강은 10년 전과 같지만, 10년 뒤에는 달라야 합니다.
위의 표는 (사)'세상과함께'가 밝힌 오체투지 환경상의 시상 개요입니다.
'세상과 함께'는 오체투지 환경상 공모와 함께, 3개 단체를 대상으로 시의성 있고 긴급하게 해결할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사업비와 운영비 지원사업도 벌입니다. 환경 현장에 기반을 둔 연구 활동, 소규모 연구, 지역 연구사업 지원을 통해 풀뿌리 환경운동의 성장을 도울 예정입니다.
또 공로상과 문화예술, 언론, 영상, 환경교육, 청년, 생활실천 등의 분야에 대한 특별상도 오체투지 환경상에 포함시켜 공모하고 있습니다.
오체투지 환경상과 연구사업 공모 기간은 2020년 9월 1일(화)부터~10월 16일(금) 18시까지입니다. 그 뒤 환경 분야 전문가 및 사회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위원장 이철수 화백)의 심사와 현장 실사 등을 거쳐서 2020년 12월 중에 시상식을 개최합니다.
오체투지 환경상으로 선정되면 상금으로 대상 5천만 원(1인 또는 단체), 환경상 3천만 원(1인 또는 단체), 특별상(7개 부문) 총 6천만 원이 수여됩니다. 연구 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 3개 단체에 각 2천만 원씩 총 6천만 원이 지급됩니다. '세상과함께'는 매년 총 2억 원의 상금을 오체투지 환경상에 내놓을 예정입니다.
오체투지 환경상 추천과 환경사업 지원 요청 제출서류 양식은
'세상과함께' 홈페이지(
www.twtw.or.kr) 공지사항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