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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4일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서울 전역 실내외 마스크 의무착용 행정명령을 내렸다.
지난 8월 24일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서울 전역 실내외 마스크 의무착용 행정명령을 내렸다. ⓒ 연합뉴스

1997년 1월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한국의 기업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해 제대를 한 나는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뒤로 하고 다시 펼쳐질 캠퍼스의 낭만에 집중하고 있었다. 교직원으로 근무하던 아버지 덕분에 연일 보도되는 한국경제의 위기는 남의 나라 일 같았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가 나의 위기로 전이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년 만에 찾은 캠퍼스도 사회 분위기와 덩달아 우울했으며, 복학하지 않은 동기의 빈 자리가 늘어났다. 열풍처럼 불어닥친 어학연수의 바람도 잦아들고 있었다.

IMF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으며, 청춘들은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중년들은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 쫓겨났고, 노년층은 안락한 노후를 포기하고 자식들을 위해 쌈짓돈을 풀어야만 했다.

대기업이 쓰러지면 뉴스에라도 나왔지만, 중소기업은 주위의 관심 한 번 받지 못하고 도산했다. 모두가 자기 살길을 찾기에도 급급한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나 힘내라는 말이 소용없었지만, 돌아보니 우리는 누구보다 난관을 잘 지나왔다.

그리고, 2020년의 벽두에 시작된 코로나는 또다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IMF 초장기처럼 약간의 안일함과 남의 일이라는 안도감도 있었다. 그러나 소리도 냄새도 없는 바이러스는 IMF 시절에는 없었던 5G의 속도로 우리 삶의 지형을 바꿔 놓고 있다.

낮잠 잘 때도 마스크... 코로나가 불러온 변화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이 되자 회사 점심시간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이전 몇 차례의 위기 때만 해도 점심시간만은 활기찬 일상의 모습이었다. 퇴근 후 회식이나 모임을 자제했지만, 고단한 회사 생활의 유일한 브레이크 타임인 점심시간만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광복절 이후 코로나 검사를 받는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두들 음성 판정을 받긴 했지만, 죽음의 바이러스가 마치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기분이랄까? 다음 날 오전 11시 50분이 되었는데도,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부서별로 몇 명만이 1층으로 내려갈 뿐이다.

11시 55분이 되면 빌딩 정문 앞은 배달을 온 라이더와 빌딩에서 배달음식을 맞으러 나온 이들로 장터처럼 북적인다. 코로나 이전에는 동료들과 함께 빈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나 이제는 도시락을 들고 각자의 자리로 향한다.
 
 코로나 이후, 도시락을 각자 먹는다.
코로나 이후, 도시락을 각자 먹는다. ⓒ pixabay

몇 년 전 사라졌던 책상 칸막이가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부활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칸막이 안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같은 공간에서 혼밥을 하는 기이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회사에서 허용한 유일한 자유시간인 점심시간은 모두에게 기쁨이다. 특히 나는 그 시간을 누구보다 좋아했다(관련 기사 : 말 없이 밥만 먹는 팀장님에게 차마 못한 말).

점심을 먹고 나면 산책하는 이들,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 단잠을 자는 등 각자의 모습으로 식사 후 시간을 즐겼다. 그 중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나는 코로나가 무섭지 않다'던 박 부장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그날 이후 그는 의자를 젖히고 낮잠을 잘 때도 마스크를 꼭 낀다. 그의 모습이 짠하다. 차라리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

코로나가 종식되는 그 날이 온다면  

IMF와 코로나의 시대는 닮은 구석이 많다. 우리의 삶이 계속 팍팍해지는 와중에도 서로 작은 힘을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진상짓'을 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극복해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IMF 위기 속의 우리도 용감했지만, 당시 국가 신용등급이 계속해서 떨어지자 세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의 우리는 세계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선도적 위치에 있다. 각 개인의 발전과 성장 없이 국가 혼자 해낸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한 몫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나라는 재벌회장이나 소수의 정치가에 의해서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매일 출근하고 야근하며 개미처럼 일하는 당신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잠시 당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당신이 건너온 시련이라는 강과 뛰어넘어온 운명이라는 벽이 보일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당신은 더 단단해졌다.

나는 확신한다. 업그레이드된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것처럼 단단해진 우리는 또 한 번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당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것임을. 그리고, 나는 약속한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은 채 회사로 출근하는 날, 부서 모두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을 쏠 것이다.

#코로나#IMF#코로나점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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