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 떠나간 검사 김홍영이 법무부에게... '지금 대한민국은 정의로운가' http://omn.kr/1ovoh
상사의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검사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 측 답변서에는 이렇게 담겨 있다.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망인은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선 노력 대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이러한 점은 국가의 책임을 제한한다고 할 것이므로 배상책임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참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2020년 1월 8일)
답변서 내용이 평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피고 측에서 제출하는 답변서에 담길 만한 평범한 내용이지만, 이 내용이 그저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 사건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 김홍영은 사법연수원 수료 후 군법무관을 마치고 2015년 4월 대한민국 검사로 임명되어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부임했다. 부임 후 휴가를 하루도 쓰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초임 검사의 패기로 버텼다. 같은 해 6월 22일에 진행된 '신임검사 부모님' 초청행사에 참석한 어머니의 말처럼 그는 사명감을 갖고 나라에 충성했다.
"얼마 전에 검찰청에서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모습을 그린 TV드라마 '펀치'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검사 욕을 하는 걸 들었어요. '우리 아들 검사 시키길 잘못했나'하고 걱정을 했었죠. 그런데 오늘 검찰청, 법정에서 검사님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그런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대한민국의 검사가 된 걸로 평생의 효도는 다 했으니 앞으로는 아들이 검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나라에 충성하길 빌겠습니다." (법률신문, 2015년 6월 25일 "집무실 산더미 서류 보니 검사가 어떤 일 하는지 실감")
그러나 검사 김홍영은 2016년 1월 새로 부임한 형사2부장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나라에 충성이 아닌 개인에 충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습적인 폭언, 폭행 등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검찰청도 이런 사실을 알고 2016년 4월 형사 2부장의 동향을 파악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막지 못했고,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들 검사 시키길 잘못했나'는 어머니의 걱정은 이렇게 슬픈 현실이 되었다.
이후 검사 김홍영은 잘못된 검찰 조직문화 피해자의 상징이 되었다.
"새내기검사 김홍영이 희망과 의욕을 포기한 채 좌절과 절망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떠난 것을 그저 개인의 불운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온 조직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추미애 장관)
"향후 검사 조직문화, 검사 교육 및 승진제도를 제대로 바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김홍영 검사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국 전 장관)
검사 김홍영의 죽음이 평범하지 않기에 피고 대한민국 답변서의 내용도 우리는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다면 평범하지 않은 피고 대한민국 답변서의 내용에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피고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 법무부 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은 이 사건에 대해 서울고등검찰청 소속 검사, 공익법무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소속 직원을 소송수행자로 지정하였고, 정부법무공단에 소송대리를 맡겼다. 지난 1월 8일 자 답변서는 정부법무공단에서 제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답변서 내용의 책임은 정부법무공단에 있을까? 소송수행자 검사, 공익법무관, 직원에게 있을까? 관련자 모두가 책임이 있겠지만 피고 대한민국의 대표자 법무부 장관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국가소송법) 제2조에는 아래와 같은 규정이 있다.
국가소송법 제2조(국가의 대표자)
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이하 "국가소송"이라 한다)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국가를 대표한다.
회사의 잘못에 대해 대표이사가 나와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한다고 발표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 법무부의 해명(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에 위임했기에 법무부는 답변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은 있었지만 이 답변서 내용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한다는 발표는 없다.
회사의 잘못에 대해 대표이사가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한다는 그 뻔한 공식도 지겹지만, 국가의 잘못에 대해 대표자들이 그 뻔한 공식도 따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무겁다. 더 마음이 무거운 건 이 사건 소송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위임하고 법무부는 손 놓고 있을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송 지휘하는 조상철 고검장은 가해 부장의 직속 상관
올해 8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한 조상철 고검장은 이전 고검장에 이어 이 사건 국가배상소송을 지휘하고 있다. 그런데 조상철 고검장은 2016년 김홍영 검사를 괴롭힌 형사 2부장의 직속 상관인 차장검사였고, 상사들의 조직적 방조 책임까지 묻는 위 국가배상소송에서 유족 측이 신청한 증인이다. 또한 국가배상소송결과에 따라 국가의 구상권 행사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조상철 고검장의 지휘가 불법은 아니지만, 회피하는 것이 검사윤리강령 제9조(사건의 회피) 상 맞다. 하지만 지금까지 회피하지 않고 계속 이 사건 소송 지휘를 하고 있다.
검사윤리강령
제9조(사건의 회피) ① 검사는 취급 중인 사건의 피의자, 피해자 기타 사건 관계인(당사자가 법인인 경우 대표이사 또는 지배주주)과 민법 제777조의 친족관계에 있거나 그들의 변호인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을 때 또는 당해 사건과 자신의 이해가 관련되었을 때에는 그 사건을 회피한다.
국가소송법 시행령 제15조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청의 장은 행정청에 대해 국가소송 및 행정소송 등의 수행에 관련된 업무처리 실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사항을 지도·교육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시행규칙 제33조는 "사회의 이목을 끌 만한 국가소송 사건에 대해 접수, 진행 상황, 재판 결과를 지체 없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따라 법무부가 이 국가배상소송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최정규님은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이며, 고 김홍영 검사 유족측을 대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