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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헌법 제정에 찬성하는 칠레 시위대가 4일(현지시간) 수도 산티아고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물대포를 쏘자 들고 있던 플래카드로 몸을 가리고 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제정된 현행 헌법의 폐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내달 26일 시행된다.
새 헌법 제정에 찬성하는 칠레 시위대가 4일(현지시간) 수도 산티아고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물대포를 쏘자 들고 있던 플래카드로 몸을 가리고 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제정된 현행 헌법의 폐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내달 26일 시행된다. ⓒ 연합뉴스/AP

1. 지금까지 칠레에서 일어난 일들

2019년 10월, 우파 정권인 칠리 피녜라 정부는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는 조치를 발표하게 되었고, 이 조치는 지금까지 약 1년동안 이어지는 칠레의 저항운동의 신호탄이 되었다. 칠레인들이 그저 지하철 요금 오른 것 때문에 분노했겠는가? 아옌데의 죽음 이후 피노체트의 그림자에서 누적된 분노와 절망이 폭발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지하철 탑승 거부, 개찰구 점거로 시작되었던 이 운동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정부와 칠레 경찰들의 잔인한 폭력진압에 칠레인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전민항쟁으로 이어지게 됐다. 작년 11월~12월 간에 경찰의 고무탄 사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수백명이나 됐고, 특히 학생들의 희생이 누적되었다. 11월 한 달 동안 이어진 시위는 결국 우파 정권은 꼬리를 내리게 만들었다.

민심이 격양된 것을 확인한 우파정권은 강경책에서 회유책으로 전략을 바꿨다. 10월 20일 인상안을 철회한 후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노동시간 단축, 의료보험과 연금 개선,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칠레인들의 분노는 그저 이러한 회유책으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칠레 사회는 피노체트 이후 큰 문제점이 해결되고 있지 않고 있다. 칠레의 지니계수는 0.4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으며 국가가 국민에게 의료와 교육을 제공할 의무를 명시하지 않고 국가의 개입을 제한시킨 피노체트 헌법 때문에 공공의료보험과 공교육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연금 또한 마찬가지다. 칠레는 연금이 확정기여형 연금제도인데 이 제도는 기여금은 확정되어 있는데 수급할 때 연금의 규모가 확정되어 있지 않는 제도를 지칭한다. 여기에 더해 민영화로 인하여 민간연금 중심으로 운영되고 오로지 노동자들이 연금료를 부담한다. 그러다 보니 칠레인들이 아무리 노력하여 납부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연금을 받는 일이 드물지가 않다. 실제로 칠레민영연금반대단체 NO MAS AFP 에서 칠레인들의 평균 연금은 남성의 경우 기여금의 38%, 여성의 경우 28%였다고 지적하였다. 게다가 민간연금회사가 투자하다가 손실을 입어도 책임지지 않는다.

거기에다 피녜라 정권 이전에 들어선 좌파정권 시절에 아무리 여러가지 개혁정책을 추진해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를 때려 무력화 시킨 전례들이 많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부 미봉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칠레인들은 결국 근본적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면서 "개헌"을 새로운 시위구호로 외치기 시작하였다. 공공서비스의 국유화나 공립교육과 보건시스템의 재구축도 당연히 구호에 포함되었다.

2. 개헌 :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칠레인들의 열망

피녜라 정권과 우파들은 당연히 개헌 요구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시위의 규모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긴 커녕 늘어만 갔다. 결국 작년 11월 11일 정도 되어서야 피녜라 정권은 개헌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으며 16일 칠레 여야가 2020년 4월에 개헌과 제헌의회 설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기로 합의되었다. (그러나 투표 일정은 코로나 사태로 10월 25일로 연기되었다.) 2019년 12월 24일 대통령의 승인으로 국민투표는 공식적으로 진행되게 되었으며, 국민투표는 새 헌법에 찬성하는지 마는지, 신 헌법의 작성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하나는 기존 국회를 배제한 새로운 제헌의회이고 나머지 하는 기존 국회의원과 새로 선출될 위원 반반 섞은 안) 묻는 방식이다.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올해 4월에 투표를 하고 투표에서 찬성이 우세하다면 10월에 제헌의원들을 뽑아야 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국민투표가 10월로 미뤄졌다. 현재 칠레인들의 개헌 열망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현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조사한 결과 72%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고, 59%가 제헌의회 방식에 동의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투표 참여 의지도 매우 높은데 같은 여론조사에서 투표에 꼭 참여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63%, 아마도 참여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22%로 참여하겠다는 비율이 총 85%였다.

앞서 말하였듯이 칠레인들을 짖누르고 있는 피노체트의 어두운 유산은 칠레의 사회경제 구조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이 헌법은 칠레의 민주화 운동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이후 피노체트와 민주화 세력 간의 타협으로 폐기 되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은 정권이양을 조건으로 피노체트 헌법을 암묵적으로 수용했었다. 그렇다보니 칠레인들은 피노체트 헌법을 폐기 시키고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새롭게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이미 더 나은 미래를 기달릴 수 없어 칠레인들은 먼저 움직이고 있다. 또한 개헌은 칠레의 역사청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피노체트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21세기 칠레는 개헌을 통해 이러한 역사와 절연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3. 계속되는 경찰폭력 아니 국가폭력의 잔인함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합의 이후에도 그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칠레 경찰들의 폭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고무탄과 최루탄은 기본으로 사용됐고, 폭력진압과 성폭력 사건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개헌 합의 이후에도 시위는 계속됐다. 시위대는 개헌과 별도로 여러 가지 개혁입법을 주장하면서 피녜라 정권을 압박하였고 매일매일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일어났다. 칠레 경찰은 시위대를 매우 잔인하게 진압하였으며, UN에서도 비판 받는 등 국제적으로 많은 규탄을 당하게 된다.

특히 성폭력 문제가 심각했는데 칠레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칠레 경찰의 성폭력을 규탄하는 시위와 퍼포먼스를 펼쳤고, 피녜라 대통령이 일부 인정하면서 사실상 칠레 경찰은 칠레 사회 내 '적폐'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비난 비판 속에도 불구하고 칠레 경찰의 잔혹성은 나아지긴 커녕 더 강화되고 있는데 올해 1월 31일에는 칠레 경찰이 축구 팬클럽 회원을 차량으로 치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여 축구 팬클럽과 난투극이 일어났으며, 차량을 운전한 사람이 가벼운 징계로 끝나자 경찰서를 향한 보복적 방화가 일어났다.

올해 10월 4일에는 16세 소년을 다리 밑으로 던져버리는 사태가 터졌다. 다행히 소년은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소년이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영상이 대중에게 공개되자 대중적 공분을 사고 있다. 어째서 칠레 경찰은 개헌 합의 이후에도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사실 칠레 경찰은 2011년까지 군 소속이다. 2011년 이후가 되어서야 칠레 경찰은 내무부 산하로 재편되었다. 이는 많은 것을 함의한다. 칠레 경찰은 피노체트로 상징되는 군부의 휘하에서 움직였으며 당연히 많은 부분이 경찰이라기 보다는 군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피노체트 시절부터 내려오는 무자비한 태도가 경찰조직에 까지 뿌리깊게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칠레 경찰이 유독 잔인한 이유는 결국 칠레가 역사청산에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개헌은 이러한 역사를 청산할 큰 기회가 될 것이다.

4. 칠레의 개헌, 우리와 너무나도 닮으면서 너무나도 다른

한국도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기회가 2번 있었다. 한 번은 87년이었고 한 번은 2016년 촛불항쟁 때였다. 모두 정권에 대항하는 전민항쟁이었고,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국가폭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때 일어났다는 점에서 칠레의 1년간의 항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7년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와 절차적 민주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는 투쟁이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완의 혁명이라고 평하였다. 2016년 촛불항쟁은 이러한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저항이었으나 그 정권을 필연적으로 나오게 만든 87년 체제를 무너뜨리지 못하였다. 피노체트 헌법이 피노체트 말기에 민주화 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이었듯이 87년 체제는 타협책이었다. 칠레는 1년 간의 투쟁으로 이제 역사의 잘못된 타협을 역사 속으로 보내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 쯤 87년 체제를 역사 속으로 보내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게 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 쯤이면 사회 공동체의 공공성이 자본의 이윤보다 먼저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 때를 기다린다.

#칠레#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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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사, 사회복지 관련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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