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사람, 10만인’은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들을 찾아나서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 이철수
 
'딱-딱-딱!'

지난 2008년 10월 17일, 죽비소리가 울리면 합장한 채 대여섯 발짝을 뗀 뒤 무릎을 꿇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뒤 팔꿈치도 땅에 댔다. 엎드린 상태에서 이마까지 땅에 내려놓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두 성직자의 뒤에 늘어선 수십 명의 행렬은 소리 없이 아스팔트 바닥을 기었다.

국도의 아스팔트 열기가 얼굴을 감쌌다. 덤프트럭이 매연을 뿜으며 지나갈 때마다, 온몸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차들이 흘린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했다. 음식점으로 흘러나온 구정물 위에 몸을 얹었다. 뱀의 주검을 피해 몸을 눕혔고, 아스팔트 갈라진 틈을 비집고 나온 새싹도 보였다. 속도를 줄였더니 아스팔트 위의 삶과 죽음이 선명했다.

당시 수경 스님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에 맞서 '내 안의 탐욕'부터 성찰한다면서 고행의 길을 떠났다.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이 수경 스님과 함께 말없이 아스팔트 위에서 오체투지를 했다. 자벌레 걸음걸이와 같은 묵언의 느릿한 행렬은 그 어떤 집회나 시위에서의 날선 비판보다 더 큰 울림을 줬다.

당시 오마이TV는 충남 논산을 지나는 오체투지 행렬을 생중계했고, 이철수 화백은 내 앞쪽에서 아무 말 없이 아스팔트 바닥을 기었다. 지난 달 23일, 사단법인 <세상과함께>(이사장 유연 스님)가 제정한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이하 오체투지 환경상)의 심사위원장이 된 이 화백을 만나기 위해 충북 제천시 백운면 자택으로 가면서 떠올린 12년 전의 기억이다.

[관련 기사] '제2의 이명박' 만들지 않으려면... http://omn.kr/qpsh

[존재] 최소한의 예의
 
 판화가 이철수 화백
판화가 이철수 화백 ⓒ 김종술
 
이 화백은 추수를 막 끝낸 들판에 있었다. 1천여 평 논의 한 귀퉁이에서 땅콩을 씻어 건조기에 넣었고, 부인 이여경 여사는 수해를 입은 밭에서 땅콩을 캤다. 서둘러 일손을 정리하고 판화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작업실로 들어가 이 화백과 마주 앉았다. 오체투지 환경상 심사를 맡은 이유부터 물었다.

"현장의 뜨거웠던 열기가 식기 시작할 때, 혹은 싸움이 끝났을 때 썰물 빠지는 것처럼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진 뒤에도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환경 활동가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습니다. 우리사회가 그런 존재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오체투지 행렬은 10년 전에 멈춘 게 아니었다. 이 화백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현장에서 환경과 생명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오체투지를 나무판에 새겨왔던 이 화백은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지켜보면서 그 분들의 인생이 늘 눈에 밟혔다"고 말했다.

"환경문제가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게 그야말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상황에 도달해 있습니다. 이미 멸종된 생명체들이 많고, 멸종위기에 봉착한 생명체들은 더 많습니다. 지금도 인간이라는 종이 서식한 지구를 우리 손으로 망가뜨려,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기에 빠뜨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자살 행위를 자행하고 있죠. 물론 죄 없는 인류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저지른 자해행위이며, 반생명적인 일입니다."

이 화백은 "나 이외의 생명은 배려하지 않는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태도가 아니라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처럼 겸손하게, 낮은 데로 엎드려야만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이런 환경운동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환경을 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10년 묵은 편지와 상금 2억 원... 참 환경인 추천해주세요 http://omn.kr/1oqu2

[인연] 정신적 도반, 수경 스님
 
 수경 스님의 '공약' 소책자와 '공양송' 액자(이철수 화백의 그림판화)
수경 스님의 '공약' 소책자와 '공양송' 액자(이철수 화백의 그림판화) ⓒ 이철수
 
이 화백이 오체투지 환경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데에는 수경 스님과의 각별한 인연도 작용했다. 4대강사업이 한창이던 지난 2010년, 새만금 삼보일배와 4대강 살리기 오체투지를 이어갔던 수경 스님이 돌연 종적을 감췄지만, 이 화백과는 인연을 이어갔다.

지난해 수경 스님은 칠순 때 잔칫상을 차리지 않았다. 대신 '공양송'이라는 작은 나무액자와 '공양'이라는 소책자를 지인 등에게 보시했다. '수경의 글을 이철수가 새긴' 작은 선물이었다. 하루 세끼, 밥을 먹을 때마다 밥과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던진 화두였다.

이 화백은 "지금도 세상 어디에선가는 굶어 죽기도 한다는데, 요즘 우리는 '먹방'이니 '맛 순례'니 하면서 밥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면서 "이런 시대의 성찰이 담긴 공양송을 지어 여기저기 나눠드린 정신적 도반이 옆에 계시다는 게 행복했다"고 말했다.

오체투지의 정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경 스님이 10여 년 전에 절을 떠나서 길바닥에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오체투지가 탁발의 다른 형태라고 봤습니다. 세상의 무엇을 바루에 담고 싶었던 것일까요? 반성이고 참회였습니다. 성찰이었습니다."

이 화백은 "수경 스님은 오체투지 환경상을 제정한 '세상과함께'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면서 "아직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스님이 오체투지 환경상 자문위원단 맨 앞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해 확약을 받고 심사위원장을 수락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이 화백은 "최근 환경 의제는 분출하는데 이에 대응하고 길을 찾아갈 운동 조직은 너무 허약하고 작다"면서 "스님다운 방식으로 몇몇 길동무들과 함께 우리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던 수경 스님의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실천을 기릴 수 있는 '오체투지 환경상'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반갑게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현장] 자연 파괴와 평범한 삶의 언저리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 이철수
 
이 화백이 유독 강조한 것은 '현장'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환경운동의 현장이 궁금했다.

"저는 오랫동안 망가지는 자연의 옆이 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대한 체제가, 권력의 욕심이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연을 훼손하는 현장을 봐왔기 때문입니다. 4대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지내면서 보니 현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언저리도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이 화백은 "자연 파괴행위만이 아니라 개인이 끌고 다니는 자동차를 비롯해서 냉난방 시설에서 쏟아내는 생활오수, 곳곳에 버려지는 일회용 용기와 비닐 봉투도 우리들의 일상적인 환경오염의 현장"이라면서 "이는 누구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하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고 말했다.

오체투지 환경상이 대상(상금 5천만 원. 1인 또는 단체), 환경상(상금 3천만 원. 1인 또는 단체)과 함께 환경교육, 청년, 생활실천, 문화예술, 언론, 영상, 공로상 등 7개 부문의 특별상(총 6천만 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 화백은 "이 상이 각 영역에서 우리의 일상적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고, 의식을 환기시키면서 각성을 유도하는 역할까지 했으면 좋겠다"면서 "청소년들과 가족들이 함께 동참하는 환경 캠페인 등에 대해서도 응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상은 특정한 행위의 결과와 성과에 주어진다. 하지만 오체투지 환경상은 '과정'도 중시한다. 이럴 때 상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동참을 의미한다. 상을 주는 행위 자체가 곧 '운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의 성패를 떠나서 현재진행형인 환경 활동이나 연구, 캠페인 등 일의 과정에도 응원을 보낼 것입니다. 또 환경 활동의 연속성이 필요한 데라면 일회성 상금을 주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연속해서 지원하겠습니다. 시상이 곧 '운동'이자 환경 실천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오체투지 환경상 '연구 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된 3개 단체에 각 2천만 원씩 총 6천만 원을 지급한다.
  
[상금 2억 원] 참 좋은 한의사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 이철수
 
'세상과함께'가 매년 지급할 총 상금 2억 원의 재원은 정부나 기업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최근 분출하는 환경 의제에 대응하고 길을 찾아갈 운동 조직은 너무 허약하고 작습니다. 온통 시장판처럼 변해버린 사회이기에 운동에도 자금이 필요하죠. 그동안 투명하게 재정을 공개해왔고,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용되는 '세상과함께'의 정제된 재정으로 환경 실천을 칭송하는 상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과함께'는 지난 2015년에 창립해서 그동안 국내 소외계층과 해외 빈곤층의 삶의 질 향상과 자립기반을 마련해온 단체이다. 미얀마 학교 건립 및 어린이 돕기, 국내 장애인 돕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왔다.

이 화백은 "이 상을 제정한 단체는 세상과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참 좋은 한의사들로부터 시작을 했는데, 최근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한의임상진료 자료집(대표 저자, 송옥규 '세상과 함께' 환경위원장)도 냈다"면서 "사회적 책임감이 돋보이고, 생태계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한의사들이 환경운동에 응원을 보내는 재정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희망의 바이러스] "고맙다"
  
 판화가 이철수 화백
판화가 이철수 화백 ⓒ 김종술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 이철수
 
이 화백은 "화가로서 사는 인생의 황혼은 '환경'과 '평화', 두 단어 속에 있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섣부르게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희망을 품기 어렵죠. 결국 개개인들이 마음을 돌려 '회심'을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바이러스도 상당수 국민들이 면역력을 가져야만 창궐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상당한 사람들이 본능과 욕망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겠지요. 희망의 바이러스, 우리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이 화백이 오체투지 환경상의 심사를 맡은 것은 "자기 이익을 돌보지 않고 옳은 길로 들어선 분들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오체투지 환경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옳은 길이지만, 들어서고 보면 난관이 많고, 불이익도 감수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을 벗어나면 안 될 것 같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항상 의기양양하고 칭송만 받는 길은 아닐 겁니다. 지금도 번민하면서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분들에게 그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제 1회 오체투지 환경상 공모 기간은 오는 10월 16일까지이다.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웹자보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웹자보 ⓒ 세상과함께
 
[안내] 오체투지 환경상 제출서류 양식 : '세상과함께' 홈페이지(www.twtw.or.kr)

[이철수 화백과 함께] 10만인클럽 가입하기 http://omn.kr/1m9k7

#이철수#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세상과함께#수경 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