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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째 계속되는 또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방역 업무로 인한 피로 그리고 방역 지침을 잘 지키지 않는 아이들과의 갈등 등으로 퇴근 무렵이 되면 심신이 지쳐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다. 그럴 때면 '릴렉스~ 릴렉스~'하고 중얼중얼 거려 보지만 '릴렉스' 되지는 않는다.

 입에 밥을 문 채로 큰 소리로 떠드는 아이들과 한바탕 씨름으로 지쳐 '릴렉스~ 릴렉스~'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같이 지도한 선생님이 그런 나를 보더니 "힘들죠?"한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도 힘든 것을 숨기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그렇죠 뭐"하고 대충 얼버무리자 선생님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2/3 등교가 가능하다고 교육부가 발표했던 데요."
"네. 19일부터죠."
"그런데 선생님 아이들이 등교하는 게 정상이긴 한데 또 한쪽에선 불안하기도 해요. 지금도 아이들 지도하기 힘든데..."
 "그렇긴 한데..."
 "아무튼 선생님이 더 힘들어지겠어요.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저만 고생하나요. 모두 고생이죠. 빨리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끝나야 하는데..."


지난주 목요일(15일) 두 학년 등교에 따라 점심시간 배식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를 했다. 보건교사와 몇몇 선생님들이 방역이 최우선이므로 급식소에서 감염이 이뤄지지 않도록 3학년은 3교시 끝나고 먹고, 1학년은 4교시 끝나고 먹는 시차 배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몇몇 선생님들은 시차 배식을 하면 일과 시간의 혼란이 오고 무엇보다 이미 복도나 교실에서 접촉이 이뤄지고 있는데 급식 시간만 달리하는 것은 큰 실효성이 없다고 하였다. 방역담당자로서 난 두 주장이 이상과 현실 사이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지 어느 한 주장은 옳고 또 한 주장은 틀린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꽤 오랜 격론 끝에 급식 시간에 차이를 두는 시차 배식은 하지 않되 학년별로 배식을 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두 개 학년 등교...온도 낮게 측정되는 열화상 카메라 
 
 전국 유·초·중·고의 등교 인원 제한이 3분의 2로 완화된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전국 유·초·중·고의 등교 인원 제한이 3분의 2로 완화된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드디어 오늘 두 개 학년이 오는구나. 괜찮을까?' 걱정이 걱정을 낳아 잠을 설치고 이른 아침 출근했다. 전투를 치르기 전 잠깐의 여유를 갖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등교 시간이 한 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벌써 몇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자가진단을 했는지 확인을 하는데 버벅거리길래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니 1학년이라고 했다. 등교 시간 혼잡과 감염 예방을 위해 3학년은 8시 20분부터 8시 40분까지, 1학년은 8시 40분부터 9시까지 등교하는 건데 왜 이리 일찍 왔냐고 하니 아빠가 출근하는 길에 태워 주셨단다. 쌀쌀한 날씨에 시간이 안 됐다고 대기시키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돌아다니지 말고, 마스크 내리지 말고..." 몇 가지 주의를 주고 들여보내는데 행정실장님이 체온 측정용 열화상 카메라를 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고장이에요."
 "날씨가 추워 아이들 체온이 낮아서 온도가 너무 낮게 나와요. 어떡하죠?"
 "그러네요. 30도가 안 되는 아이들도 있고, 대부분 32도 내외네요. 이러면 37도 이상 되는 아이를 거를 수 없겠는 데요."
 "출입 위치를 바꿀까요? 서쪽 현관으로 들어와 중앙현관까지 걷다 보면 좀 낫지 않을까요?"
 "큰 효과는 없을 것 같긴 한데... 어쩔 수 없죠. 그렇게라도 해야죠."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학교 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첫 번째 방벽이 쓸모 없어졌구나 싶었다. 열화상 카메라가 여름에는 아이들 뜨거운 햇볕을 받아 점심시간 발열체크 때 계속 울려 문제였는데 겨울이 가까이 되니 쌀쌀한 아침 시간이 문제였다. 갈수록 기온은 내려갈 텐데 걱정이었다. 체온계로 측정을 바꾸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선생님들이 더 힘들어질 텐데... 게다가 체온계도 추운 실외에서 제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본격적인 등교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말 그대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두 개 학년 등교가 걱정이 되어 자발적으로 나와서 도와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원만히 등교 지도를 마칠 수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또 걱정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수용인원이 적은 식당이 문제였다. 좌석수가 가뜩이나 학생들 수에 비해 적은데, 코로나 19 감염 예방을 위해 한 칸을 비우다 보니 더 부족했다. 1/3 등교일 땐 어찌어찌해서 버텼는데 2/3 등교한 오늘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었다.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자 정해진 순서에 따라 아이들이 식당으로 왔다. 4교시에 수업을 하신 선생님들 중 몇 분은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을 직접 인솔해서 데려오기도 했다. 영양교사 선생님은 2층과 3층을 뛰어다니며 급식 인원과 속도를 조절하고, 오늘 급식지도 담당 선생님은 차분히 아이들을 자리에 안내하고, 학년부장 선생님은 남은 음식을 버리는 아이들을 지도해 주시고... 정해진 자리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자리에서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예상한 시간보다 빨리 아무 문제없이 급식을 마칠 수 있었다. 식당을 나오는데 교감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장님, 어때요 오늘처럼 하면 되겠어요?"
 "네. 교감선생님. 1학년은 조금 어수선했지만 식당 이용을 많이 안 해봐서 그런 거구요.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적극 도와주셔서..."
 "그래요? 다행이네요. 고생했어요. 1학년은 점점 좋아지겠죠."


 밝게 웃으며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기나긴 하루를 되돌아봤다. 걱정만 가득했지 대비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는데,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걱정했던 내가 우스웠다. 선생님들이 다 도와주실 것인데... 선생님들이 있어 참 다행이고 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코로나 19#학교 방역#열화상 카메라#급식 지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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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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