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졸업논문 작성을 위해 실험실을 드나들며 연구한 적이 있다. 다니기로 한 연구실에서 대학원생 선배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실험실에 들어선 순간 멈칫했던 기억이 난다. 흔히 실험실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현실은 너무 달랐다. 눈부실 만큼 순백색의 배경에 최신 장비와 깨끗한 기자재 대신, 익숙해지지 않는 유기용매 냄새, 기존에 있던 낡은 것을 개조해 손이 많이 가는 장비, 여기저기 그을음 자국이 있는 기자재들이 나를 반겼다. 당시 사수 선배가 교수님의 은퇴가 얼마 안 남은 만큼 오래된 실험실이라며 머쓱해 했다.
모두 아무렇지 않게 자기 실험에 집중하고 있어 내색하기는 어려웠지만, 실험실에 출근할 때마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다녀야 했다. 뭐 하나만 잘못되어도 큰 사고로 이어지겠구나 싶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까딱하면 터진다, 잘못하면 다친다는 둥 무서운 소리를 곁들이며 화학물질이나 실험장비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사수 옆에서 얼어붙은 채 그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내 실험실 생활은 끝났지만, 이후 크고 작은 실험실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운이 있고 없는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된다. 안전이란, 이상적으로는 위험이 전혀 없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의미는 위험을 줄여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과정에 더 가깝다. 안전한 사회라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위험 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예방 대책을 세워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사고로 인해 피해를 본 사회 구성원은 단순히 운이 나쁘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놓친 피해자며, 따라서 사회로부터 재해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연구실안전법 등 안전을 다루는 법률이 보상제도인 보험을 명시하는 이유다.
지난 10월 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아래 대학원생노조)은 2019년 말 경북대학교 화학실험실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큰 화상을 입은 피해 대학원생의 아버지가 쓴 편지를 대독하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다. 해당 사고로 인해 총 4명의 학생연구원이 다친 한편, 중화상을 입은 학생은 11월 현재 여전히 힘겨운 치료를 버텨내고 있다.
사고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실험실이라면 기업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든 대학에서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든 장소나 신분에 무관하게 수행하는 오래된 시료 폐기 업무 도중 발생했다. 회사연구원이었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아래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았겠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은 대학원생이라는 이유로 연구활동종사자 상해보험(아래 연구자보험)의 보상한도를 넘는 치료비를 두고 오랜 기간 경북대학교와 씨름을 이어가야 했다.
피해자 가족과 대학원생노조 등의 연대와 투쟁을 통해 대학으로부터 치료비 지급 약속을 받은 상태이나, 피해 대학원생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려는 대학을 쉽게 믿을 수 없다. 또한 이 사고가 드러낸 제도상 허점과 함께 여전히 많은 대학원생이 안전 사각지대에 남아있다. 대학원생들이 국회로 간 첫 번째 이유다.
제도상 허점의 기원
"비슷한 실험을 하더라도 연구소에서 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공계 대학원생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이유로 관련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경북대 화학실험실 폭발사고가 드러낸 제도상 허점은 사실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었다. 위 문장은 2004년 5월 KAIST 대학원총학생회(아래 원총) 산하 안전쟁취특별위원회가 그로부터 1년 전 있었던 풍동실험실 폭발사고로 대학원생 두 명이 각각 숨지고 두 다리를 잃은 후에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는커녕 학교 측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자 내놓은 입장이다. (관련 기사 :
KAIST대학원 "실험실 무서워 연구 못하겠다" http://omn.kr/2pw7)
같은 시기 KAIST 원총은 실험실 안전 관련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 대학이 속한 지역구 의원에게 전달하여 연구실안전법이 제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구실안전법을 통해 아무런 보상체계가 없던 과거보다 진일보할 수 있었으나, 위 인용문이 말하는 똑같은 연구를 함에도 대학원생만 산재보험이 아니라 보다 낮은 보상한도를 가진 연구자보험에 가입하는 문제는 여전하다.
당시 연구실안전법 제정 과정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문제가 어디서 기원했는지 작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연구실안전법을 연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과학기술부는 풍동실험실 폭발사고 직후 연구안전환경진흥법(가칭)을 준비했다. 현재 연구실안전법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 이 법안은 국회에 제출되기 전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 등과 중복되기 때문에 일부 기존 법령의 개정으로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입법 추진이 중단됐다(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해설집 및 고시 정비 방안 연구, 한국연구재단 연구보고서). 이후 앞서 언급한 대로 국회의원을 통해 현 연구실안전법이 발의되었는데, 이때 역시 기존 법령과의 중복 문제로 제정이 1년여 늦춰졌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당시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보완하여 연구자들에 대한 안전조치와 보상을 하자고 주장한 한편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는 보험료 부담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법률 적용 범위 중복을 피하고자 부처 간 합의를 거쳐 연구실안전법과 연구자보험은 사실상 대학원생들에게만 적용됐다. 더불어 대학원생노조 신정욱 지부장이 지적했듯이 연구실안전법은 현재 기준으로 적용대상인 대학원생을 연구자원으로 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이 됐다. (연구실안전법 제1조에 해당하는 목적은 2020년 6월 "연구실사고로 인한 피해를 적절하게 보상하여 연구활동종사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문구로 개정됐다. 법의 제정 취지를 고려하면 환영할 일이나, 제정 후 15년이나 걸릴 일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연구실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연구실안전법을 따로 제정한 것은 이해하더라도, 재해보상 체계를 이원화하여 대학원생만 산재보험이 아닌 별도 연구자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대학원생들은 이미 그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 뒤에는 결국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학원생이 각종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4대 보험 가입자가 아니라고 증명해야 하는 것만 보더라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경북대 화학실험실 폭발사고의 피해자가 오래된 시료를 폐기했던 것처럼 실험실 및 연구실이, 더 나아가 대학이 제대로 굴러가는 데 필요한 모든 곳에 대학원생이 있는데, 사회는 이들의 일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제도상 허점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반복되는 사후약방문을 벗어나려면
다행히 대학원생노조가 농성을 시작한 날 학생연구원에 대한 특례로 연구실안전법에서 정의하는 연구활동종사자도 산재보험을 통해 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산재법 개정안이 접수됐다. 여당 주도로 발의된 법안이지만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모두 개정안 취지에 공감한 만큼 조속히 처리되기를 기원한다. 대학원생노조 역시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사후약방문식 제도 개선을 반복하게 될지 씁쓸하기도 하다. 연구실안전법이 있기 전 앞서 언급한 KAIST 풍동실험실 폭발사고 말고도 1999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세 명의 대학원생이 목숨을 잃은 폭발사고가 있었다. 2016년에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학생연구생(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하며 학위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을 의미) 한 명이 실험 중 손가락이 절단당하는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보도되고 나서야 뒤늦게 연구자보험 보장이 확대되고 학생연구생에 한해 근로계약이 이뤄졌다. 요컨대 지금의 연구실안전법을 비롯한 실험실 안전을 다루는 제도는 누군가의 부상과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다.
우리는 '김용균법'을 둘러싼 논의를 통해 산업 현장에서 위험이 외주화되어 가장 취약한 하청 또는 계약직 노동자에게 떠넘겨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목격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연구 현장에서 위험은 누가 짊어지고 있는가. 2018년 연구실 사고 중 80% 이상(발생 건수 기준)이 대학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19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 대학원생이 처한 현실에 주목하고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