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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의 일이다. 양평 언니네 집 근처에 고양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한 번은 언니와 아이 손을 잡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건너 마을을 지나면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싶다는 아이 말에 참치 캔(고양이 간식용)도 하나 챙겼다.

늘 가던 길을 두고 샛길로 돌아 들어갔더니 새끼 강아지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었다. 한 집엔 네 마리, 그 건너 집에는 다섯 마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기 강아지를 끼고 있는 어미를 보니, 이 또한 계절의 결실인가 싶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른 강아지들이 작고 동그란 몸으로 걸어 다녔다. 움직임에 미숙한지 걸어가다 저 혼자 빙그르르 옆구르기를 했다. 아기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릴 보고 쪼르륵 달려 오다가도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섰다. 우리가 다가가려 하자 어미 개가 요란하게 짖어 댔다.

어느덧 고양이 마을로 접어들었다. 고양이 열 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데 알고 보니 밥을 챙겨주는 아주머니가 있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이미 밥을 주었으면 배부른 고양이들이 흩어져버려 참치 캔도 소용없을 것이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걸어가는데 일전에 마주친 적이 있는 아기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몸 전체가 하얘서 '흰설탕'이라고 이름 붙여주었던 고양이. '흰설탕'이 덤불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는 유독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를 통해 자신과 다른 타자의 세계을 배우고 생명의 신비를 경험한다. 그런 경험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무해한 존재가 되도록 이끈다.
아이는 유독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를 통해 자신과 다른 타자의 세계을 배우고 생명의 신비를 경험한다. 그런 경험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무해한 존재가 되도록 이끈다. ⓒ 김현진
 
나무 덤불 맞은 편에도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언니가 참치 캔을 따서 나뭇잎 위에 덜어 놓자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서너 마리의 고양이가 우르르 달려들었다. 덩치 큰 고양이들이 참치로 몰려들자 흰설탕은 겁을 먹고 덤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고양이 서너 마리가 참치를 먹는 사이 계속해서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어떻게 알았을까. 언덕 위에서, 수풀 속에서, 고양이들이 소리 없이 튀어나왔다. 어느 순간 새어 보니 열 세 마리나 되었다. 흰색, 까만색, 황토색 줄무늬, 갈색 얼룩 무늬, 색도 제각각, 크기도 제각각인 고양이들이 줄줄이 등장한 것이다. 순식간에 참치 캔은 바닥이 났다. 괜히 아이들 입맛만 다시게 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시공간이 비틀어져 우리가 고양이의 세계로 들어간 게 아닐까. 사뿐사뿐 몸을 옮기는 고양이의 발걸음 사이로 알 수 없는 보드라움이 번졌다. 윤기가 흐르는 털에서는 햇살의 온기가 흘러 나왔다. 무엇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무심히 공기를 가르는 몸에는 무게도 없었다.

좁은 골목에서 마주한 '고양이의 세계'는 기쁨이자 경이였다. 타자의 세계가 무섭고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없이 따스하고 포근할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반대로 우리 자신이 '경계해야 하는 무서운 타자'가 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우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고양이들은 움찔했다. 고양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우리는 숨소리도 죽인 채 얼음처럼 멈춰 서 있었다.

우리보다 작지만 자기만의 우주를 가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걸 아이 또한 감지했을까. 커다란 고양이가 참치에 달려들자 흰설탕이 뒤로 물러섰던 건 세계에는 힘의 질서가 있기 때문이고, 이모가 흰설탕을 위해 따로 참치를 덜어내 주었던 건, 약자에게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걸, 아이는 헤아릴 수 있었을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양이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던 비밀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먹이를 주고 싶어했던 아이 덕분에 무심했던 어른의 마음마저 말랑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 <후와후와>라는 그림책이 하나 있다. 거기에는 하루키가 어릴적 키웠던 고양이에 대한 추억과 생명에 대한 예찬이 담겨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아기자기한 그림이 따스함을 덧입힌다.
 
 고양이털은 이미 해의 온기를 잔뜩 머금은 채, 생명이라는 것의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부분에 관해 내게 가르쳐준다. 그런 생명의 일부가 무수히 모여서 이 세계의 일부 또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준다.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 다른 공간에도 존재한다.
- <후와후와> 글 무라카미 하루키

아이가 태어나던 해,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보았던 책이다. 싸개에 싸인 아기가 새근새근 숨을 쉴 때마다 '생명'이라는 추상적 단어가 손과 가슴으로 느껴졌다. 세상을 이루는 생명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감각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수시로 그걸 마주하며 자랐다. 방에서 키웠던 병아리들, 집안과 마당에서 길렀던 고양이와 강아지, 길에서 마주쳤던 비둘기와 참새. 특히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고 감탄하면서, 우리는 '생명'이라는 추상을 느끼고 만졌다.

'아, 귀여워!' 하는 감탄은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였고 작지만 뜨거운 몸을 끌어안으면서 생명과 생명이 만나 세상이 된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살지 않더라도 어떤 공간에든 생명이 존재함을 무의식적으로 배웠다.

'후와후와'는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이나 고양이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뒤뚱거리다 떼구르르 구르던 강아지의 모습이 '후와후와'였고 소리없이 먹이를 먹으러 다가오던 고양이들의 발걸음이 '후와후와'였다.

아침 잠이 덜 깬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하루치의 따스함이 채워지는 것 같은데 그것도 '후와후와'였던 거다. '후와후와'한 세계가 우리를 너그럽게 만들어준다. 우리를 무해한 존재가 되도록 이끌어준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고양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조만간 아이 손을 잡고 찾아가봐야 겠다.

#아이와함께자라는엄마#고양이를향한마음#생명에대한존중#타자에대한너그러움#무해한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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