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 정치에 없는 몇 가지: 영예로운 상과 공정한 평가
어느 나라든 연말은 시상식의 계절이다. 받는 이의 환희와 보는 이들의 축하가 넘친다. 아직까지도 12월 마지막날의 풍경은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올해의 가수상이나 연기상, 연예대상을 보면서 세대별·취향별로 수상자에 대해 박수를 보내거나 은근슬쩍 깎아내리면서 새해를 맞곤 한다.
정치 영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12월이 되면서 언론보도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러저러한 상을 받았음을 홍보하는 정치인들의 메시지가 넘쳐난다. 거기에는 '자랑스런 한국인 인물 대상'이나 '대한민국 의정대상' '지방자치 의정대상' '국회 의정대상'과 같은 거창한 이름도 있고, 시민단체나 학계가 수여하는 '참 정치인상' '녹색정치인상' '여성정치인상'과 같은 소박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큰 상이든 작은 상이든 수상은 본인은 물론 함께한 동료와 가족들 모두에게 축하와 격려를 주고받을 만한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개근상이라도 받아본 우리 역시 그 벅찬 느낌을 알기에, 그렇게 유명한 연예인들의 다소 장황한 수상 소감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그리고 지방의원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의 수상을 마냥 축하해 줄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시비를 걸 만한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적지 않은 사례에서 심사비나 후원금, 홍보비와 발전기금 등의 은밀한 '돈 주고 상 따기' 거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 8월까지 지자체·공공기관이 상을 받기 위해 지출한 돈이 지자체 약 49억4000만 원, 공공기관 43억8000만 원 등 무려 93억 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 돈의 출처는 모두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회와 정당 그리고 지방의회가 빠져 있기 때문에, 수상을 매개로 한 수상한 돈 거래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2. 신뢰와 존경의 조건: 객관적 기준과 공정한 평가
어느 영역이든지 3대니 4대니 하는 소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상들이 있다. 영화로는 세계 3대 국제 영화제(칸, 베네치아, 베를린)가 있고, 국내에도 청룡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이 거론된다. 최근 저작권 문제로 수상 거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3대(이상, 동인, 현대) 문학상은 글 쓰는 작가에게는 여전히 염원의 대상이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에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대학 강단의 선생이나 연구자들에게 소속 학회가 주는 각 분야별 학술상은 여전히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진다.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이든 지방의원이든 정치인들은 이 코미디의 가해자라기보다는 공모자이고, 더 우호적으로 보자면 피해자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국회이든 지방의회이든 정치의 영역만 객관적 기준도 없고 이에 따라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심판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웬만한 기업에서는 직원의 근무 실적과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인사고과(업무평가)가 있고, 공공기관에서는 근무(성적)평정이 공개돼 있다. 대학교원의 경우 연구·교육·산학 등에 따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한 기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물론 그것이 승진과 성과급 지급 등에 얼마나 공정하게 적용되는가는 별도의 문제이지만, 적어도 대상자들은 중요 내용과 기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입법 활동과 의정실적을 평가할 수 있는 공개된 기준도, 권위 있는 기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 때마다 겪는 공천파동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나마 상을 주는 기관이 양심적이거나 투명하다면, 통상적인 의정 모니터링의 양적 기준(법안이나 조례 재·개정 건수, 출석일수, 상임위나 본회의 발언 건수 등)을 근거로 삼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구 하나 문장 하나 고치는 단순 수정안이나 동료의원과의 품앗이 제출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개혁 입법과 민생 조례를 제정한 우수의원을 판별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더구나 의원외유나 식물국회로 늘 언론의 손쉬운 먹잇감인 정치인들에게 언론사가 주는 상은 다음 선거의 치적을 쌓고 홍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
늘 그렇듯 제 맘대로 벌 주고 상도 주는 이 막장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는 보수언론이다. 위에 인용한 경실련 자료에 따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헤럴드경제> 등 7개 언론사가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약 64억 원을 받고 600개의 상을 줬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경실련에 "조선일보 환경대상, 한일 국제환경상, 만해 대상,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 등의 시상식이 돈을 받고 상을 주는 사업이라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라고 반박하며 보도자료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실련은 "30여 개의 상 가운데 4개의 사례를 들며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한국언론인연합회가 2001년도부터 주관해 나름 전통과 지명도가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의 정치행정 부문 수상자 명단이다. 문화와 교육 등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정치 분야의 공정성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겠다.
3. 학계와 국회의 역할
'적폐 청산'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의 '관행 근절' 차원에서 이제 여와 야,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공모 중인 정치인들의 수상(殊常)한 수상(受賞)을 전면 쇄신할 때다.
이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공정한 평가 지표의 구축이다. 민주화 이후 세계적으로 이 분야는 활황 산업이다. 사회과학 영역에 한정해도 부패 지수, 평화 지수, 민주화 지수, 인간발전 지수, 행복 지수, 정보화 지수, 세계화 지수, 경쟁력 지수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동안 메니페스토나 일부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의원 및 의정 평가 지표를 발표해왔지만, 신뢰도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당장 내년부터라도 한국 정치학회와 행정학회 그리고 헌법학회 등 3대 유관 학회가 중심이 되고 국회사무처와 한국연구재단 등이 후원하는 형태로 의정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표준화된 평가 지표를 만드는 일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평가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현장에서 눈을 부릅뜨고 꼼꼼히 모니터링 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몫이다. 이를 통해 국민의 혈세를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개별 정당들이 이를 공천과 당직 인선에 적극 활용한다면 정치와 정책의 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생활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