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국과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얼마 전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 세계 많은 나라가 코로나19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정도 점점 나빠져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방역에 성공한 나라를 하나 꼽자면 대만을 빼놓을 수 없다.

대만이 코로나19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가 시작될 무렵 대만은 발 빠르게 마스크 수출을 금지했고, 세계 최초로 마스크 실명제를 통해 마스크 배급을 성공적으로 통제했다. 대만은 4월 12일 마지막 지역 감염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1월 23일 중국 정부가 우한 지역의 이동 제한 규제를 시작하기보다 더 앞선 1월 21일 대만은 우한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입국 금지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했다. 보건 전문가들은 대만의 빠른 대응이 성공적 방역에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대만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일상을 더 많이 되찾았다. 지난 10월에는 약 13만 명이 참여한 퀴어 축제가 열렸을 정도다. 매일 아침이면 북적거리는 재래시장,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이뤄지는 결혼식, 퇴근 후 친구들과 기울이는 술 한 잔, 여전히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하다.

코로나19 초기 나는 대만에서 사진관을 운영 중이었다. 대만을 찾는 관광객을 주 고객으로 했기 때문에 제로에 가까워진 매출에 대한 고민에 머리를 싸매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나 또한 대만 보건당국과 대만 사람들의 마스크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스크의 무용(無用)을 말하는 이들의 편에 서지도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말이다.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숫자에 집착하는 시간이 늘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확진자 수는 손 안의 휴대전화 속에서 제각기 다른 불안을 낳았지만, 어떤 마스크도 불안을 걸러주지 못했다. 직장을, 삶의 터전을 잃고 길에 나앉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어느 도시는 시신이 넘쳐나 냉동차까지 동원이 되고 있었다.

손과 입, 소통을 위한 수단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지고 가게 문을 열 때도 표면을 거쳐 간 수많은 손이 머릿속을 스쳤다. 공포는 현실 세계의 반영일까. 오래된 영화를 보아도 마스크 없는 얼굴이 불안해 보였다. 할 일이 없어지고 우울감이 늘어갔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사진을 스스로 찍을 수 있게 케이블을 연결하고, 촬영할 필름 그리고 조명과 카메라를 세팅하고, 미리 맞춰둔 초점 거리만큼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 피사체가 초점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공간을 비웠다. 스스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오롯이 그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의 조건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 혼자일 것.
둘, 마스크를 착용할 것.


먼저 나부터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을 직업으로 하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찍었는데 카메라 앞에 오롯이 혼자 서는 건 처음이었다. 렌즈와 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돌았다. 옷을 온통 검게 입고 머리까지 검은 천을 덮은 뒤에 흰 마스크를 하나 걸쳤다. 보이지 않는 공포와 그 은유로 마스크를 표현하고 싶었다.
 
자화상 대만에서 진행한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사진
자화상대만에서 진행한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사진 ⓒ 정민식
 
그렇게 시작된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100여 명이 넘게 다녀갔다.

렌즈와 홀로 그 렌즈를 마주한 사람 사이의 공기, 매일 밤 필름을 현상하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나는 피사체들과 뒤늦은 눈맞춤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만의 성공적인 방역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건당국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이를 계기로 대만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대만 시민의 자화상 사진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만 시민이 대만의 성공적 방역을 기념하고 있다.
대만 시민의 자화상 사진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만 시민이 대만의 성공적 방역을 기념하고 있다. ⓒ 정민식
 
비행기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는 대만인 케빈(Kevin)씨는 비행이 끝날 때마다 자가격리를 하고 자가격리가 끝나면 다음 비행을 해야 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자신의 어린 아들을 안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케빈씨는 아들과 함께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대만 시민의 자화상 조종사로 근무하는 대만인 케빈(KEVIN) 씨는 비행이 끝날 때마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자신의 어린 아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만 시민의 자화상조종사로 근무하는 대만인 케빈(KEVIN) 씨는 비행이 끝날 때마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자신의 어린 아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정민식
 
대만의 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제인(Jane)씨는 마스크를 쓴 일상의 답답함을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표현했다. 
 
대만 시민의 자화상 사진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제인(Jane)씨는 어디를 가도 마스크를 써야하는 답답함을 자신의 자화상 사진으로 표현했다.
대만 시민의 자화상 사진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제인(Jane)씨는 어디를 가도 마스크를 써야하는 답답함을 자신의 자화상 사진으로 표현했다. ⓒ 정민식
 
대만에서 사진 기자로 일하고 있는 왈리드(Walid)씨는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이, 인간이 만든 세계가 얼마나 쓸모 없고 연약한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작고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은 나약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사태를 혼란스러워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본 것 같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꼭 필요한 만남이 아니면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면서 말이다.
 
왈리드씨의 자화상 사진 사진기자로 대만에서 일하고 있는 왈리드씨의 자화상 사진.
왈리드씨의 자화상 사진사진기자로 대만에서 일하고 있는 왈리드씨의 자화상 사진. ⓒ 정민식
 
웨이 링씨의 자화상 사진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웨이 링(Wei Ling)씨가 코로나 상황 속 자신의 심정을 자화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웨이 링씨의 자화상 사진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웨이 링(Wei Ling)씨가 코로나 상황 속 자신의 심정을 자화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정민식
 
자화상 사진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만 시민이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자화상 사진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만 시민이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 정민식
 
로리안씨의 자화상 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로리안(Lauriane)씨의 자화상 속 그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리안씨의 자화상COVID-19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로리안(Lauriane)씨의 자화상 속 그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정민식
 
앤씨의 자화상 사진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 채 자화상 사진을 찍은 앤(Ann)씨의 자화상 사진.
앤씨의 자화상 사진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 채 자화상 사진을 찍은 앤(Ann)씨의 자화상 사진. ⓒ 정민식
  
Amanda 씨의 자화상 사진 멀리서 찾아온 Amanda 씨의 염원이 담긴 자화상 사진
Amanda 씨의 자화상 사진멀리서 찾아온 Amanda 씨의 염원이 담긴 자화상 사진 ⓒ 정민식
 
순수한 모습의 어린이 사진 프로젝트가 궁금했는지 구경을 온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순수한 모습의 어린이 사진프로젝트가 궁금했는지 구경을 온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 정민식
 
사진관 앞집 원단 가게의 작은 아들 씨아오 왕(Xiao Wang)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로 손님이 없는 탓이지만, 아이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내게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화상 프로젝트가 궁금했는지 기웃거리다 한번 찍어보겠냐는 물음에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스스로 셔터를 누르기엔 악력이 약해 대신 셔터를 눌러줬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답을 찾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기도 했다. 그저 사람들이 바이러스 때문에 돌보지 못한 자신과 주변을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씨아오 왕(Xiao Wang)의 웃음에 마스크를 씌우지 않아도 될 날을 기다리며 기사를 마친다.

(*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자화상과 글귀는 https://www.minimphotostudio.com/covid-19-taiwan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대만#대만코로나#대만방역#자화상사진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