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적정한 기후환경에서만 살 수 있다. 기후조건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변하면 지금의 기후조건에서 번창한 모든 생명체는 멸종을 피할 수 없다. 기후변화를 모르면 그 변화를 조절할 힘(기술)도 가질 수 없다. 제대로 모르는 자연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극이 싹튼다.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에 우리는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기후변화가 브레이크 없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기후재난을 겪게 될까? '김해동의 투모로우'에서 이런 문제를 다뤄본다.[편집자말] |
지난 8월 말에 시작한 기후 변화 이야기를 이번 회로 마감한다. 연재를 통해서 소개한 바 있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인간 멸종을 우려할 만한 심각한 기후 위기가 여러 차례 지나갔다.
다행히도 인간은 기후 위기를 매번 슬기롭게 극복한 덕분에 위기가 지난 후엔 그 이전에 비하여 오히려 큰 도약을 맞았다. 지금 인류가 맞고 있는 3대 위기인 기후변화, 환경오염, 역병 창궐도 인류의 멸종과 새로운 번창의 갈림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연재의 마지막 이야기로 기후변화와 역병 창궐의 문제를 살펴보고 우리의 바람직한 대처를 얘기하려 한다.
기후변화, 역병 창궐 그리고 환경오염 문제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서로 다르지만 그것의 발생 원인은 모두 산업혁명 이후에 급증한 인간 활동에 있다.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 그리고 교역의 활성화로 코로나19와 같은 역병이 창궐할 수 있는 호조건이 조성되었다. 그래서 지금을 역병 황금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 세계 석학들, 종교인, 정치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내린 처방은 자연과의 공생, 보편 복지의 세상, 주류경제학(성장 경제)에서의 탈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이 3가지 처방을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에 대한 근본 대책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이 처방을 따를 수 있다면 지금의 위기는 인류의 장래에 오히려 축복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서광이 보일 듯하자 V자형의 경제 성장에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역병은 특정 기후 조건을 갖춘 한정된 지역의 풍토병으로 존재하다가 기후 변화로 그곳과 유사한 기후 조건을 갖춘 지역이 발생하면 영역을 확대한다. 교통의 발달로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역병이 유행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풍토병이란 어떤 제한된 지역에서 발생하는 경향을 보이는 전염병을 가리킨다. 과거에 말라리아는 아프리카 내륙 지역과 같은 열대 지역에서만 발병했는데 이곳은 말라리아 원충을 운반하는 모기(anopheles)의 서식지와 일치했다. 기온, 강수량과 지리 조건이 모기의 서식에 알맞다. 말라리아는 질병과 기후와의 관련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외에도 열대 지역에는 열대병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질병이 있는데 주로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유행한다. 졸림병, 황열(黃熱)병, 뎅기열 등이 이에 속한다. 수년 전에 필리핀으로 도박 원정을 갔던 어떤 연예인의 거짓말 소동으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던 황열병, 뎅기열 같은 전염병은 일본에까지 상륙했다.
역병의 온상이 될지도 모를 북극권
한편 1930년대 말에 사라졌던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유럽과 미국에서 1990년대 말부터 다시 유행하여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의 뇌를 훼손하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 바이러스처럼 과거에 사라졌던 것이 재차 유행하는 이유도 기후 변화로 과거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시기의 기후가 복원된 것에 기인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의 온도는 193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약 40년간 하강하였는데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유행했던 1937년경은 20세기 동안에 기온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 기온 하강으로 사라졌던 바이러스가 기후 변화로 재차 고온기를 맞이한 1990년대 말에 다시 나타났다.
아주 오랜 옛날 고온 환경에서 맹위를 떨쳤던 각종 바이러스가 기온 하강기를 맞아 양 극지방의 빙하 속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들 옛날 바이러스가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로 방출되어 재유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극의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잠들었던 미지의 미생물이 나온다는 사실은 기후변화에 따른 역병 창궐이라는 점에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다. 지구 기온이 상승할수록 북극 설빙의 해빙은 빨라지기에 북극권이 역병의 온상이 될지도 모른다. 북극을 경유하는 화물 운송과 여행이 증가할수록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새로운 병원균이 현대인의 삶의 공간으로 유입되어올 가능성을 우려하는 경고도 나온다.
이에 따라 북극과 그 밖의 지역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생물 감시 대책의 수립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장 내년에도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큰 역병이 세상을 덮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어쩌면 2021년에 많은 사람이 홍역을 앓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내용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에 발표한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전 세계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될까 전전긍긍하다가 홍역 예방 접종을 놓쳤다고 한다. WHO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10월 말까지 전 세계 26개국에서 예방 접종 캠페인이 지연되면서 약 9400만 명의 어린이들이 홍역 백신 접종의 기회를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여파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식량 부족 문제도 홍역의 대유행을 부채질할 수 있다. WHO는 올해 초 기근이 들고 백신 접종률이 낮았던 콩고에서 홍역이 발생해 약 30만 명이 감염됐고 그중 6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올해 11월 말에 나온 유엔 산하기관인 IPBES(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 플랫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바이러스의 규모는 엄청나다. 포유류‧조류 등 생물체 속에 약 170만 개에 달하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최근의 인간 활동으로 자연 및 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는 탓에 바이러스가 종(種)을 건너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로 인해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올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의 수가 82만 7000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자연 파괴로 야생 동물, 가축, 병원체 그리고 사람 간의 접촉이 많아지는 탓에 바이러스가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서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처럼 팬데믹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고는 IPBES 보고서가 처음이 아니다. 올 상반기에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시기에 세계적 영장류학자인 제인 구달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의 이유가 동물 학대와 자연 경시에 있다고 지적했다. 제인 구달의 지적이 IPBES의 보고서를 통해서 재차 확인된 셈이다.
한편 기후변화로 인한 전염병의 대유행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은 역병을 발생시키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기후 조건에 더하여 인간 쪽에서 제공하는 여러 조건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유행이 시작된다고 한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주거용 땅을 만들기 위해 삼림을 훼손시켜 야생동물들을 좁은 궁지로 쫓아내고 경제성장을 위해 국제교류를 강화하는 일이 전염병의 유행에 충분조건을 주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삶을 고집한다면 기후변화와 역병의 시대를 막을 수 없다. 기후변화와 역병 창궐이 인류에게 주는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인류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해동 기자는 계명대학교 지구환경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