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교제살인 기획을 통해 최소한 열흘에 한 명이 교제 상대에게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법·사법·행정 각 분야에 걸쳐 대안을 제시합니다. 물론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변화와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 보도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편집자말] |
눈물이 핏물로 떨어졌습니다.
가장 믿었거나 의지했던 상대방의 교제폭력, 그 끝은 죽음이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그렇게 죽임을 당한 여성은 모두 108명이었습니다. 저희가 판결문 108건을 통해 확인한 바로만 그렇습니다. 이런 비극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산 덕천 지하상가에서 쓰러진 여성을 구타하는 그 CCTV 장면이 이를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매달렸습니다. 가장 믿었거나 의지했던 상대의 협박과 폭력,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친구가 보는 앞에서 끔찍하게 맞아 죽었습니다. 오빠나 친척이 그러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끝내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가해자와 맞서려던 엄마도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도망갈 곳도 없었고 더 이상 매달릴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얼굴은 108명의 얼굴입니다.
핏물
그 중에는 경찰에 매달린 이들도 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한 후 3개월 안에 살해당한 피해자가 12명이나 있었습니다. 판결문에 나와 있었습니다. 협박, 폭행, 주거침입, 감금, 방화, 살인미수 등으로 가해자가 형사 입건된 경우가 무려 19건이나 있었습니다. 저희는 판결문을 보며 화가 났습니다. 왜, 이렇게 살인의 전조가 뚜렷했는데도, 이를 분명히 인지했던 공권력은 대체 뭘 했던 걸까요.
살인의 전조가 뚜렷이 드러난 가해자를 추적하고 관리하는 것이 공권력의 책임 아닌가요. 그런 위험에 명백하게 노출된 피해자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입니다. 제4조 1항입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지원 등을 위하여 필요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공권력이 인지한 살인의 전조, 여기에 노출된 여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은 이미 구축됐어야 합니다. 법대로 그렇게 했다면, 그 '힘'이 그리 작동했다면 최소한 108명 중 19명은 핏물로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열흘에 한 명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겁니다. 안타까웠습니다.
행정적 책임
게다가, 그런 시스템은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미국 미네소타주 둘루스에 있었습니다. 1980년 형사사법 제도를 개혁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이 조직의 이름은 DAIP(Domestic Abuse Intervention Programs, 가정폭력 개입 프로그램, 다이프)입니다. 2014년 유엔여성(UN Women)으로부터 여성 폭력을 근절한 공로로 세계최고정책상을 받았을 정도로 그 신뢰도가 검증된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네트워크입니다. 911, 경찰, 검찰, 보호관찰관, 피해자 지원 단체, 병원 등이 긴급 상황을 포함해 범죄 정보를 공유하고 DAIP를 통해 각 기관별로 어떻게 개입할지 조율하고 적절한 자원을 지원합니다. 둘째, 그 네트워크는 철저히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현지에 다녀온 한국여성의전화는 보고서를 통해 "피해자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역사회로 이동시킨다는 원칙 아래 다자 협력을 이끌어내는 협력적 대응"으로 이 시스템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셋째,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주체입니다. 여러 협력기관의 대응 사무를 조정하는 사무를 이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와는 그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경찰과의 정보 공유가 어렵습니다. 저희가 만난 한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수사 정보 공유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지자체 관계자 역시 저희와의 만남에서 "법적으로 교제폭력의 경우는 경찰과의 범죄 정보 공유가 안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말도 있었습니다. "기존에 있는 법과 기존에 있는 조직을 활용하는 것이 행정력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희는 이 말을 듣고 여성폭력방지기본법처럼 아동의 안전과 보호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고 규정한 아동복지법을 찾아봤습니다. 제27조의 2, 1항을 보니 "사법경찰관리는 아동 사망 및 상해 사건, 가정 폭력 사건 등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경우 아동학대가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시ㆍ도지사, 시장ㆍ군수ㆍ구청장 또는 보장원의 장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저희와의 인터뷰에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법이 바뀌는데는 오래 걸립니다. 법이 바뀔 때까지 교제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또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저희는 법과 현실 사이의 그 공백을 최소화하는 책임이 행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방법은 그동안 여러 지자체 여성정책 보고서를 통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상담 관리를 가정 폭력 범주에 두고 상담 및 의료·법률지원을 하는 방안, 해바라기센터와 협조하여 의료 지원과 수사 진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또는 여성 긴급전화 1366의 현장 상담과 연계 기능을 강화하여 의료비 및 법률 서비스 등의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전담 인력을 두는 방안 등을 놓고 지역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파악됨." (2019년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 데이트폭력 현황 및 그 대응 방안 중에서)
친화
앞서 보고서에 언급됐듯 지역에도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있으며, 여성긴급전화 1366, 해바라기 센터도 지역마다 있습니다. 물론 경찰도 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엮어내느냐는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지자체에 둘루스 모델과 같은 네트워크 전담 기구를 설치해주십시오.
▲해당 기구를 피해자 지원단체가 주도하여 운영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 기구에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자치경찰제도를 적극 결합해주십시오.
이 의견서는 17개 광역지자체에 발송할 것입니다. 더불어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돼 있는 92개 지자체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서로 사이좋게 잘 어울림'을 위해서는 우선 살아 있어야 하니까요. 이재명 경기지사가 11월 25일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전하고자 하는 바 또한 그렇다고 믿습니다.
"최소 열흘에 한 명의 여성이 데이트폭력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결론은 빙산의 일각일 겁니다. 술에 취했다고, 술을 그만 마시라고 했다고, 적어도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여성들이 존엄을 잃는 일은 없어져야지요."
눈물이 핏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독립편집부 이음 : 이주연 기자,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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