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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시민들의 검체를 봉투에 넣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시민들의 검체를 봉투에 넣고 있다. ⓒ 권우성
 
지금부터 일기를 쓰겠습니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날 선 조롱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쓰고 싶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코로나를 쉬쉬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전 국민의 이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쉬쉬'하는 이슈이기도 하죠. 덮어두고 조용히 넘어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코로나 확진 환자들과 자가격리자들입니다. 그들은 입을 다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들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다수를 '아프게 할지도 모를 사람'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취급을 받으며, 스스로를 변호할 자격조차 잃어버린 듯 미안해하며 숨어지냅니다.

전국민의 이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쉬쉬하는 이슈라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코로나 확진 환자와 자가격리자들의 이야기는 소외된 채, 코로나 현황판에는 확진 환자 수와 그들의 동선만 남았습니다. 뉴스도 통계만 다룹니다.

'○○에서 코로나 신규확진자 36명 무더기'
'□□시 임시선별검사 열흘간 1만 1162명'


우리는 숫자 앞에 공포만 느낄 뿐입니다.

코로나에 걸린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저는 뉴스를 읽을 때마다 두렵긴 했지만, 슬픈 적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확진 환자와 자가격리자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환자는 안 보이고 바이러스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일기를 쓰려 합니다. 비록 일반화할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일기지만, 당사자들의 슬픔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를 쉬쉬하지 않고, 함께 슬퍼하고 이겨내자며 의기투합할 진정한 '전 국민 이슈'가 되길 바라면서요.

아이가 안기려 할 때, '자가격리'를 실감했다 

다니던 직장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모두 진단 검사를 받게 됐어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에 들어갔습니다.

보건소 직원분께서 긴 면봉으로 검체를 채취하실 때부터 자가격리 생활이 걱정됐습니다. 제 아이들은 4살, 6살로 아직 많이 어리고, 59㎡ 집은 외출 없이 나흘을 지내기엔 작습니다. 우리 네 식구, 집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요? 면봉이 훑고 가니 코 속이 시큰해져 해롱대면서도 벌써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가격리란, 지루함과 싸우는 느긋한 생활 정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깨달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4살 둘째 아이가 저를 안으려고 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금 엄마 만지면 안 돼!"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자가격리자는 답답함과 싸우지 않습니다.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검사 중 입었던 옷을 모두 세탁하고 온몸을 씻고 나서야, 두 딸과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아줄 수도, 뽀뽀해줄 수도 없었습니다. 양치를 시켜줄 수도, 내복을 갈아 입혀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음성일까, 양성일까?'

음성이라 확신할 수만 있었다면 자가격리하는 동안, 집은 지루한 감옥일 뿐이었겠지요. 하지만 양성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지겹긴커녕 아이들과 보내는 순간들이 곧 스러질 자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서로 떨어져 병원에서 치료받을 긴 시간을 상상했습니다. 아이들과 남편도 함께 걸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속상해 눈물이 났습니다.

자가격리 중의 한 줌 자유를 움켜쥐고 어떻게든 아이들을 두 눈에 담았습니다. 저는 '양성'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 이 순간들이 몹시도 소중해 자가격리가 답답할 겨를이 없었어요.

일상을 더 일상답게 살았습니다. 일상의 농도는 더 진해졌습니다. 만둣국, 구운 고등어, 여러 야채를 넣은 카레로 든든하고 뜨끈한 식사를 했습니다. 밥은 꼭 잘 챙겨 먹었습니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시작했죠. 일하던 중, 친정엄마께서 전화주셨습니다.

"식당에서 해물찜을 포장했는데 양이 너무 많네. 나눠 먹자. 집 앞에 냄비 두면 덜어두고 갈게."

30분 뒤, 엄마는 현관 밖에서 남편이 둔 냄비에 해물찜과 반찬을 두고 가셨습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왔다며 현관문을 두드리며 아기 원숭이들처럼 꺅꺅댔지만, 서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 나이 서른셋, 엄마에게 여전히 사랑 많이 받고 크는 딸이란 걸 알았으니 얼굴을 못 봬도 만족스럽습니다.
 
 자가격리 중인 딸의 집에, 엄마가 해물찜을 놓고 가셨습니다. 먹을만큼 덜어서 맛있게 먹었어요. 서른셋, 새삼스럽게 사랑 많이 받고 자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자가격리 중인 딸의 집에, 엄마가 해물찜을 놓고 가셨습니다. 먹을만큼 덜어서 맛있게 먹었어요. 서른셋, 새삼스럽게 사랑 많이 받고 자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 최다혜
 
친정엄마의 해물찜 선물을 만끽했습니다. 코로나가 두렵지 않아서 여유부린 건 아니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린다면, 작은 집에서 보낸 가족들과의 단순한 생활이 가장 그리워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밥해주고, 설거지하는 남편을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눈에 담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금세 해가 저물었습니다. 하루가 가버렸습니다.

저는 종일 자유로웠습니다. 자가격리자가 되어보니 한편으론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판정 전, 어쩌면 지금 있는 이곳이야말로 가장 넓고, 사랑하는 이가 있으며, 익숙한 공간이니까요.

게으른 긍정주의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살아 있는 매 순간에 충실해지듯, 진단 결과를 비관할수록 두 아이와 남편하고 함께 있는 자가격리 기간이 소중할 뿐이었습니다. 코로나 환자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생각하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갑갑한 현실조차 애틋했어요.
 
 자가격리 기간 동안, 해는 빨리 저물었습니다. 어찌할 도리 없이 시간이 서둘러 흘러갔습니다. 매일 저녁, 하루가 짧아 속상했습니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해는 빨리 저물었습니다. 어찌할 도리 없이 시간이 서둘러 흘러갔습니다. 매일 저녁, 하루가 짧아 속상했습니다. ⓒ 최다혜
 
'메멘토 코로나'를 하며 살아가기

자가격리 나흘 후,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검사결과 ▶음성-정상◀입니다. (이하 생략)"

문자에 대고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환호하고, 남편과 포옹한 후, 아이들에게 실컷 뽀뽀해줬습니다. 엄마가 이제부터 마음 놓고 안아줄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입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살아 있는 매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싶어집니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마련된 것이죠.

자가격리를 경험한 이후, 저는 '메멘토 코로나'를 하며 살게 됐습니다. 코로나를 기억함으로써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마스크도 써야 하고 산책 한 번 마음 편하게 하지 못하지만, 코로나 시대에서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을 때가 가장 자유로운 때임을 되새기며 삽니다.

메멘토 코로나를 하게 된 후, 확진 환자들을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어졌습니다. 확진 환자들이 병실에서 보내는 나날은 얼마나 치열할까 가늠하고 나서야, 더 이상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몸은 얼마나 아플 것이며 죄책감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요. 생계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을 가중시키는 뒷담화에는 어떻게 맞서 싸우고 있는 걸까요.

저는 여전히 코로나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를 마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만약 내가 내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하고 질문합니다.

돌아오는 답은 늘 같습니다. 무탈한 일상에 집중하고 감사하기.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존엄한 확진 환자들을 응원하기.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코로나에 걸린 사람 모두에게 너그러운 코로나 시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코로나19#자가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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