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들은 다른 기업에 비해 더 크고 절대적인 경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일하게 대통령과 윈윈 파트너로 지위를 가지는 등 (다른 기업과) 본질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대통령이 불법적 요구를 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부정부패에 대한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삼성의 위치라고 생각됩니다." - 2020년 12월 30일, 강백신 부장검사, 이재용 파기환송심 결심공판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고자 이른 '삼성 신경영' 선언을 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습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합니까." - 2019년 10월 25일, 정준영 서울고법 형사1부 부장판사, 이재용 파기환송심 1차 공판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지난해 재판부가 첫 공판에서 당부한 '재벌총수 이재용의 자세'를 맞받아치듯 말했다. 2017년 2월 박영수 특검팀이 이 부회장을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한 지 3년 10개월 여 만에 열린 마지막 결심공판 자리에서다.
적어도 법정에서 만큼은 '경영인 이재용' 중심의 관점이 아니라, 부정부패를 저지른 '경제 권력 이재용'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관련 기사 : 이재용 향한 재판부의 이상한 당부 "만 51세 이건희는..."). 특검은 이날 이 부회장에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삼성그룹이 최순실 측에 공여했다고 판단한 말 라우싱도 이 부회장으로부터 몰수할 것을 요청했다.
변호인 "합병 과정 조사 예정" vs. 특검 "이제서야? 실효성 없다고 자인"
"현재 운영되고 있는 준법감시제도는 재계 서열 1위이자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관계를 설정하는 삼성 그룹 총수가 무서워할 정도가 아님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검은 재판부가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제도의 허점부터 파고들었다. 준법감시위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세운 전문심리위원단의 판단을 내세웠다. 특검은 "절대 다수의 항목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며 "그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최종적 평가 또한 긍정적으로 도출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특히 심리위원들의 판단 중 이 부회장에 직접 관련된 9개 점검 항목은 "비참할 정도로 부정적인 결과"라면서 경영권 승계 관련 위법행위 방지에 관한 부분은 "3인 위원 모두 부정적 결론을 도출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 설치와 이행을 들어 감경 요소인 '진지한 반성'을 이 부회장에게 적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변호인 측은 이에 "준법감시 제도가 100%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준법감시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은 종전보다 크게 유지될 수 있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도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관련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라고 반박했다.
특검은 앞서 관련 의견에 "변호인들이 보완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부 핵심적인 점검 사항으로, 이제와 보완하겠다는 건 지금까지 안됐다는 것으로 미진하고 실효성이 없다는 걸 자인하는 것"이라고 부연한 바 있다.
불법 승계 재판 예고편? 특검 "이재용은 천문학적 불법 이익 수혜자"
"대법원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삼성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피고인 이재용을 위한 승계작업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특검은 이날 결심공판에서 내년부터 이어질 이 부회장의 또 다른 재판인 불법 경영권 승계 사건에 대한 언급도 남겨뒀다. 대법원도 판시했듯, 전직 대통령인 박근혜씨에게 이 부회장이 뇌물을 공여한 이유는 "승계 작업 과정에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범행"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특검은 또한 "위법부당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 천문학적 이익을 얻은 최대 수혜자로, 엄벌이 필요하다"면서 "개인 이익을 추구하는 뇌물을 제공하면서 개인 소유 자금이 아니라 상장 법인의 거액 자금을 횡령해 자금을 조달, 소수 주주의 고혈을 빨아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하고도 엄청난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고 지적했다.
박씨의 겁박에 못 이겨 수동적 뇌물을 제공했다는 이 부회장 측의 오랜 논리도 '성립될 수 없음'이라고 재차 못 박았다. 특검은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나오고 고발에 따른 수사가 진행된 2016년 10월 당시에도 (최순실의) 영재센터 3차 지원을 시도하기도 했다"면서 "수동적으로 공여한 것이라면 이를 중단하거나 최소한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이에 "삼성은 3차 후원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이에 대한) 뇌물 공여 약속으로 기소된 바도 없다"면서 "대주주 지배권 강화를 위한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과 지배권 강화는 불법이 아니고 계열사 이익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인 아닌 '경제권력' 이재용, 어떤 결론 받을까
"재판부께 다시 간청하는 것은 피고인들에게 무조건 과도한 엄벌을 해달라는 게 아니고 피고인들이 우리 사회에 공헌한 바를 무시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법치주의의 가치와 헌법정신을 수호해달라는 것이다."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특검팀은 최종 구형에 앞서,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헌법 조항 한 구절을 띄웠다. 최근 대학 교수진이 올해의 고사성어로 지정한 '아시타비(我是他非 :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와 속어 '내로남불'도 끌어왔다.
이 부회장의 혐의와 비슷한 다른 횡령죄들이 중형을 선고받고, 삼성그룹의 또 다른 횡령 및 뇌물 사건에 실형이 선고된 사례도 언급했다. '이재용이라고 달라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특검은 "살아있는 권력이든 죽은 권력이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법치주의와 평등의 원리는 아사타비, 내로남불과 대척점에 있는 원리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하며 내려 보낸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는 2심 보다 50억 원 더 많은 86억 원으로, 재판장 재량 밖에선 집행유예 선고를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특검은 "적극적 뇌물이 (대법원에서) 인정됐고 (이 부회장 측이) 계속 허위 주장을 하는 등 양형 가중 사유는 다수 존재한다"면서 "항소심의 양형은 1심보다 높게 양정돼야할 사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변론을 마무리하며 이 부회장의 나이를 강조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이제 만 53세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라면서 "아주 무능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재판부가 달리 봐주실 믿음이 있으면 이재용 피고인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
"제 책임입니다. 죄를 물을 게 있으면 제게 물어주십시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두 달 전 이 회장님의 영결식이 있었다"면서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강렬하게 맴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 정신 자세와 회사문화를 바꾸고 제도를 보완해 외부에서 부당한 압력이 들어와도 거부할 수 있는 준법제도를 만들겠다"고 읍소했다.
한편,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최종 결론은 통상의 선고 일정을 감안할 때, 한 달 여 후에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