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보신각 종소리가 온라인으로 울렸다. 코로나로 기억된 2020년이 지나감과 동시에 2021년의 시작이다.
새해가 되면 금연을 결심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나는 30년을 피웠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담배와 함께한 셈이다. 담배는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衣食住) 중 식(食)에 해당된다고 여겼다. 흡연을 신이 주신 위대한 선물이라 생각했던 내가 금연을 해냈다.
30년 인연, 그 시작
10월의 논산 훈련소 연병장.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간 모자를 눌러쓴 조교가 묵직하니 소리쳤다. "담배 일발 장전!" 지급된 소총을 삼각대 모양으로 거치 후 훈련병들은 '치익'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훗날 30년 지기(知己)가 될 담배와의 첫 만남이었다.
군대에서는 연초가 나왔다. 한 달에 한 번. 15갑씩 지급됐고 애연가와 골초들에겐 항상 모자란 양이었다. 나는 초보 뻐끔이였으니 남은 담배는 관물대 한 구석에 모아뒀다. 이 녀석들을 요긴하게 쓸 데가 있었다.
연초가 지급된 후 20여 일이 지나면 얼굴이 누렇게 뜬 채로 기웃기웃 거리며 담배를 찾아다니는 선임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요 보직을 맡았다. 보일러병은 추운 겨울에 따뜻한 물을 얼마든지 쓸 수 있고 행정병 중 군용물품 담당병(보급)은 군생활 중 소소히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상 2명의 선임병과만 친하게 지내도 군생활이 편할 것이라는 내 생각이 적중했다.
그들이 힘들어서 도저히 못 참을 때쯤 뒷주머니에 담배 두 갑을 찔러 넣어줬다. 순간 선임들의 눈빛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간절한 목마름이 해소된 듯했고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해주겠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때다 싶어 일종의 거래를 했다. 담배 이 녀석과 군 생활 내내 따뜻한 물, 새 전투화, 간식거리 등등을 주기적으로 물물 교환했다.
담배가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다. 유격 훈련과 불시에 이뤄지는 전투준비 태세 훈련, 40km 행군, 육군·공군이 함께하는 공지 합동훈련을 하면서 나눴던 담배 연기 속의 전우애. 얼굴에는 새까만 위장을 하고 온몸은 진흙투성이로 빗물이 섞인 밥을 먹은 후 그들과 함께 했던 담배 한 개비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담배에 대한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전역 후 주변에서 담배를 끊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이 좋은걸 왜 끓어! 식후 연초는 불로장생이라 하잖아"라면서.
사실 나는 금연을 여러 번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니코틴 패치를 붙인 후 일주일을 참아도 보고 금단 증상과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내 참지 못하고 딱 한 모금 담배의 유혹에 넘어가 하얀 연기를 내뿜었을 때의 담배맛은 뇌 속에서 분비되는 엔돌핀의 최고점이었다.
금연을 시작한 이유
"그 어려운 걸 어떻게 끊으셨어요? 무슨 계기라도 있었나요?"
친한 후배가 물었다. 척추 4, 5번이 문제였다. 의사는 내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고 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경험했다. 허리 디스크는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수술은 최후의 방법이고 시술이 현재로선 최선이라 해 세 번의 시술을 받았다. 의사는 흡연이 허리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지만, 아픈 허리를 잡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병원 지하 4층 주차장까지 내려가고 오르기를 반복했다.
침상에 누워 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나 왜 이러고 살고 있지... 평균 수명 80세라고 가정하면 앞으로 30년은 수시로 오는 허리통증을 견디며 살아야 사는데...' 불현듯 엄습해오는 서러움과 좌절감 그리고 불안이 우울로 빠져들게 했다.
담배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불쾌함을 준 적이 많았다. 길거리를 걷다가 피우던 담배연기는 뒤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은 간접흡연을 하게 만들었고, 아파트 계단에서 당당히 태웠던 담배는 계단을 이용하는 이웃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줬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가족이었다.
그동안 너무 이기적이었다. 병원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30년 간 나를 지배했던 담배와 '한판 싸움을 해보자'는 승부욕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 말라'는 옛 농담 속 그 사람이 됐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 담배 한 모금 깊이 흡입하고 싶은 유혹이 나를 끊임없이 흔들었지만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혹자는 이해를 못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정신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마침내 이겨냈다.
그게 그렇게 힘들어?
단순 계산을 해보자. 하루 한 갑을 피운다고 가정하면 4500원 × 30일= 13만5000원. 13만5000원 × 12개월= 162만 원. 162만 원 × 20년 = 3240만 원. 20년이면 웬만한 고급 승용차 한 대 값 정도 되겠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담배를 피운다면 건강은 물론 상당한 금액의 금전적인 손해까지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거지 뭐. 팔십 넘은 할아버지도 담배 태우시는데 건강에 아무 지장도 없더라. 다 자기 팔자를 타고 난 거야."
여전히 골초인 매형의 지론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지만 흡연을 하게 되면 그만큼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담배를 끊었다. 이젠 케케묵은 냄새를 달고 다니지도 않으며 나의 뇌는 항상 맑은 엔돌핀이 흐른다. 금연을 시작한 지 어느새 5년이 다 돼 간다. 건강도 훨씬 좋아졌고 감기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
이제는 담배 연기 근처에만 가도 역겨워 잠시 숨을 참고 지나간다. 금연을 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느낌을 경험해 본 것은 살면서 가장 잘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하루 담배 한 갑 4500원을 한 20년 꾸준히 모아 멋진 고급 승용차와 함께 멋지게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