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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시민신문

지난해 개교한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의 서연고등학교에는 부엉이가 산다. 매일 아침과 점심, 이 학교에 출현하는 부엉이의 이름은 '서여니'이다. 직접 제작한 부엉이 탈을 쓰고 매일 학생들을 만나는 박길훈 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해 11월 서연고등학교를 찾았다.

처음 이 부엉이가 시작된 계기는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등교가 늦어진 것과 연관이 있다. 기다렸던 서연고등학교의 첫 학생들의 등교를 축하하기 위해 교무부장, 수석 교사와 함께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올 4월에서야 첫 등교를 시작한 학생들의 위해, 세 개의 탈을 각자 빌려 쓰고 아침 교문 지도를 했다.

이때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박길훈 교장은 '단발적인 이벤트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을 직접 제작해서 매일 학생들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탈 모양은 학교의 교조(校鳥)인 부엉이를 본 따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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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 학교에서는 교조로 부엉이를 선택하곤 합니다. 독수리가 상징하는 '최고'의 의미가 이전 세대의 학교에서는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최고의 학생, 최고의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이 학교의 목표였던 때였죠. 하지만 저는 부엉이가 의미하는 '남다름'을 지향합니다. 다른 학생을 누르고 최고의 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특별함을 가진 학생이자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합니다. 이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기에 탈도 부엉이 모양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웃음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지난해 9월 3일 부엉이가 첫 선을 보인 이후로 박길훈 교장은 매일 두 번씩 '서여니'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손목에 찬 휴대폰에는 최신 유행하는 댄스곡들을 잔뜩 넣어두고, 아침에는 교문 지도를 하고 점심에는 급식실 앞에서 식사 지도를 한다. 주로 학생들과 인사를 하지만 가끔은 음악에 맞춰 막춤을 추면서 지나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웃기기도 한다. 그에게 '서여니'로서의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철학자 니체의 말 중 '웃음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마음이 기쁜 상태여야만 몸도 머리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을 의미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학교는 즐거운 공간이 아닙니다. 매일 만나는 교사들은 물론이고, 저와 같은 교장은 더더욱 즐거운 존재는 아니죠. '서여니'라는 존재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를 즐거운 공간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들어설 때나 점심 먹으러 갈 때, 저를 보고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성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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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위해 부엉이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박길훈 교장은 탈속에서 학생을 관찰하고 컨디션을 살핀다.

"부엉이 탈속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살핍니다. 확실히 그날그날 학생들의 기운이 다른 게 느껴지더라고요. 즐거운 일이 있으면 확실히 전체적으로 흥이 많고, 시험 때나 사건이 일어났던 날은 다들 기분이 다운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의 매일을 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그의 이러한 교육철학은 그가 머무르는 교장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교장실은 보통 크기의 1/3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처음 학교의 공간을 구성할 때부터 교장실의 대부분을 학생들을 위한 카페 공간으로 개조했기 때문이다. 카페 안에는 TV와 냉장고, 커피 머신기도 구비되어 있어, 학생들이 마음대로 들어와 TV를 보고 간식도 먹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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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실과 카페 사이에는 유리벽과 문을 두어서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나중에는 학생들이 저를 너무 의식하질 않아서 따로 블라인드를 두긴 했지만요. (웃음) 교장실이 좀 좁아지긴 했지만,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대화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 좋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학교를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각자 잘하는 게 다를 뿐이다

박길훈 교장은 수학 교사로 교직에 들어섰다. 그 역시 그가 왕성하게 교직 생활을 하던 때에는, 지금과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그의 교직 목표였던 적도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벌도 흔하던 때였다.

장학사를 거쳐 첫 교감으로 발령받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교육철학이 갖춰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의 관리자로서 문제 학생들을 자주 만나고 상담한 경험, 동료 교사들과의 소통, 수시 선발 중심으로 바뀐 대입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면서 조금씩 학생 중심의 교육관이 생겨났다.

"저는 학생들이 무엇이든 남들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서로 잘하는 게 다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잘하는 게 다를 뿐이잖아요. 지금은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지 자신만의 재능이 나타날 것이라는 응원을 해 주고 싶습니다.

또 모든 학생이 자존감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명령이나 힘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결국 가장 피해 보는 건 힘이 없고 소심한 학생들입니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학생들이 차라리 낫지, 오히려 아무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학생들이 더 위험합니다. 심해지면 자기 자신을 해하는 일도 생기거든요."


부엉이 '서여니'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내 교직 생활이 다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이 부엉이 탈은 제가 산 옷 중에서 가장 비쌉니다. 하지만 매일 두 번씩이나 이 옷을 입으니 전혀 아깝지 않죠. 앞으로 제 교직 생활이 몇 년 남지 않았는데, 그때까지는 계속 입을 생각입니다. 그동안 우리 학생들이 '베스트가 아닌 유니크한 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게 안 되면 적어도 우리 학교의 교조(校鳥)가 부엉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지난해 화성시마을자치센터 공모사업으로 진행한 마을잡지 '오롯'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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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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