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4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습니다. 한국은 그것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기보다 강화시켰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캐나다) 아시아학과(한국학)의 미국인 교수 도널드 베이커(Donald L. Baker)가 11일 페이스북에 쓴 글 중 일부 내용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가 감옥에 갇힌 후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퇴임 후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4명의 대통령(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을 거론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처벌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베이커 교수와 12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1971~1974년 미국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한국에서 활동했고, 1980년 전후에도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에 머물렀다. 2008년엔 외국인 최초로 다산학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다산학술상 학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선 베이커 교수는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도 처벌받지 않았고,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도 2년 만에 석방됐다"라며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투옥이 상대 당을 배려하는 전통을 훼손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 정당이 다른 정당의 전 대통령을 투옥하면 다음에 이것이 반복돼 보복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미국인들 사이에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반대자들의 공격이 확대되는 것을 감수하기보다 차라리 유죄인 대통령의 자유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타협을 위해서 그게 더 낫다고 보는 거죠."
그럼에도 베이커 교수는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같은 규칙을 따르도록 요구한다"며 "만약 권력자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그냥 넘어간다면, 사람들은 평화로운 정치적 경쟁 및 권력의 이전을 가능하게 하는 법에 대해 존경심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사례를 강조했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투옥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한 범죄가 더 이상 용인되지 않을 것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이 처벌받지 않았다면 광주의 분노는 곪아서 한국 남동부(경상도)와 남서부(전라도) 사람들 사이의 화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에 위협이 됐을 것입니다.
이명박·박근혜의 범죄는 전두환·노태우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처벌받지 않았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법체계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 겁니다. 안정된 민주주의는 정의 실현을 기반으로 하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는 것을 요구합니다."
베이커 교수는 "(한국의 사례를) 정치적 보복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그들이 무죄라면 정치 보복으로 부르겠지만 그들의 유죄가 법정에서 증명됐다"라고 말했다.
"사면? 때로는..."
베이커 교수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의 국회의사당 폭동을 두고 "트럼프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는 선거에서 몇 주 동안 거짓말을 해왔고 미국인들이 '조 바이든이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라며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공격하기 전에 트럼프가 집회에서 한 연설은 폭력을 선동하는 범죄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폭넓은 의견들이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생각을 일반화하기 어렵다"면서도 "절반 이상이 국회의사당 공격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다수는 트럼프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아마도 30%가 넘는 상당수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바이든이 '애국자들'로 하여금 국회의사당을 공격하게끔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베이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퇴임 후 감옥엔 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원에선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될 것으로 보이나 (탄핵안이) 민주당이 절반만 장악하고 있는 상원을 통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감옥에 갈지에 대해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뉴욕 주에서는 몇 가지 혐의로 기소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는 적어도 금융 비리나 탈세 혐의 중 하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을 걸로 예측한다"라며 "이는 민주당이 트럼프를 처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 보복이란 평가가 나오지 않을 것이고) 민주주의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베이커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된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선 "그들이 충분히 감옥에 머물러야 하지만 모든 형량을 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두환·노태우는 어느 누구도 법을 어겨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동안 수감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지자들이 분노를 이어가며 타협에 의한 민주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사면이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명박·박근혜가 투옥된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형량을 채우도록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들을 10년 이상 감옥에 가두는 것은 나라를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국민통합이란 명분으로 정의감을 삼키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른 권력자가 처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