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제한적인 양일 수 있지만, 백신의 국내 생산은 한국의 집단 면역 정책에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한국이 백신 접종을 늦게 시작했지만 백신 접종을 가장 먼저 완료할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백신 접종의 완료 시기는 국내 인프라의 가동 속도와 밀접하게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8일자 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The Diplomat)>의 '왜 한국은 백신 접종을 아직 시행하지 않았나(Why South Korea Still Hasn't Vaccinated Anyone, 저스틴 펜도스 동서대 교수)'란 한국발 기사의 결론이다. 한국 정부가 외국 백신 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백신의 국내 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결과적으로 백신 접종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쏟아진 비판 여론에도 이러한 '백신 주권'이 향후 한국의 집단 면역을 앞당길 것이란 전망이었다.
영미권 언론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에 주목 중이다. 지난달 8일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은 '왜 늦을까? 백신 상황을 지켜보는 나라들(Why the delay? The nations waiting to see how Covid vaccinations unfold)'이란 기사에서 호주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백신 도입을 서둘러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라거나 "개발된 적 없는 백신이 몸에 잘 맞는지 주시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매체는 한국 역시 서구권 국가의 데이터를 수집하며 백신 접종 시점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 <블룸버그(Bloomberg)>도 같은 달 15일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왜 백신 도입에 신중한가(Why Many Asian Countries Are Being Cautious on Vaccines)' 기사에서 "한국은 백신의 위험을 확인하기 전에 백신과 관련한 계약을 서두를 생각이 없고 그럴 위급한 상황도 아니다"라는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터뷰를 전했다.
이들 외신은 공통으로 백신의 빠른 접종 시기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갖가지 공세들
이유도 갖가지였다. 그간 백신을 빨리 못 구했다고, 왜 하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먼저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등' 아니냐고 정부와 방역당국을 타박하던 이들의 트집잡기 말이다. 오는 26일과 27일 각각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화이자 백신 접종을 앞두고, 이들이 또 다시 불안을 조장하고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SBS <8뉴스>의 '"부작용? 백신 맞느니 사표"… 일부 의료진 거부' 보도는 극히 일부 의견을 침소봉대한 전형적인 불안 조장 보도였다. 안정성을 이유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이라는 일반적인 상황을 최대한 부풀린 모양새라고 할까.
SBS 보도의 근거는 일부 수도권 노인 요양병원 간호사나 간호사 온라인 커뮤니티 의견, 그리고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장 인터뷰 및 천 명 넘게 동참했다는 의료 관계자들의 서명 등이었다. 이 중 의료 관계자들의 '백신 거부' 서명의 경우 참여자가 이름, 이메일 등 매우 간단한 정보만 기재하도록 한 것을 두고 중복 서명 등 조작이 용이하다는 지적이 나온 상태였다.
이틀 후 정부 발표를 보면, 전국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코로나19 치료병원의 환자, 그리고 의료진과 요양보호사 등 근무자들로 확정된 국내 1차 접종 대상자 34만 4천여 명 중 백신 접종에 동의한 이들이 93.8%에 달했다고 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동의율은 93.6%, 화이자 백신의 동의율은 94.6%였다고 한다.
보수야당은 어떤가. 일례로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일부 외신 보도를 인용하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에 비해 효능 면에서 월등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심각하다"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실제 효과가 입증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22일(현지 시각) 가디언과 BBC 등 외신은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팀과 스코틀랜드 공중보건국 연구팀 연구 결과를 인용, 접종하지 않은 집단과 비교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자들의 병원 입원 위험이 94%가 줄었다고 보도했다. 효능이나 부작용이 심각하단 지적이 무색해지는 결과였다.
국민의힘이 애초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에서 65세를 제외한 것을 두고 백신의 효능과 부작용을 지적하고 나선 것 역시 안정성 문제가 아닌 임상결과 숫자가 적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을 외면한 엉뚱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백신 물량부터 백신 종류, 접종 시기까지, 그야말로 사사건건 트집이었다. 그것이 과연 '백신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공세였는지 의문이다. 이런 공세가 과연 국민 안전을 고려하고 백신 관련 정부 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우려였을까? 지난해 독감 백신 쟁점화를 연상시키는 '백신의 정치화'이자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느낀 국민이 상당수 아니었을까?
'대통령 1호 접종'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이스라엘 등 대통령이 첫 번째로 백신을 접종한 국가들의 경우, 각국의 상황과 현실에 맞는 전략을 택했을 뿐이다. 이를 무시한 채 유승민 전 의원은 앞서 소개한 SBS 보도 다음날 "대통령이 먼저 맞으라"며 공세를 폈고,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이언주 전 의원 등이 "내가 먼저 맞겠다"라고 나섰다.
논란이 커지자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2일 "현재로서는 정해진 순서에 맞춰서 접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일축했다. 정 청장이나 방역당국은 물론 다수 국민들 또한 영화 <곡성>의 "뭣이 중한디?"란 유행어를 떠올렸음직한 비생산적인 일대 소동극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백신의 정치화
최근 총파업까지 앞세워 백신 접종 중단 검토를 볼모로 잡은 대한의사협회의 행태는 이러한 '백신의 정치화'의 정점이라 할 만했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한 의료법 개정안에 반발하는 것도 모자라 백신 접종 중단을 내건 대한의사협회와 최대집 회장이 여론의 역풍을 맞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터. 최근 다음 총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는 최 회장의 이러한 행보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의아한 것은 국민의힘의 동조다. 20년 전 존재했고, 이미 수년간 논의돼왔으며, 여야 합의로 상정된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왜 지금 의사들 심기를 건드렸느냐"라며 의사협회가 아닌 여당을 비판한 것이다. '백신의 정치화'에 열심이던 국민의힘이 '백신 접종 중단'을 볼모로 잡겠다는 의사협회를 두둔하고 나온 것을 그저 초록은 동색이라 치부하면 그만일까.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백신 접종 현황에 대한 글로벌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의 집단면역 형성 시기는 내년 중반이 되리라고 전망한다고 한다. 비교적 빠르게 접종을 시작한 미국과 EU를 포함해, 각 국가의 집단면역이 예상보다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었다.
정은경 청장은 정례브리핑에서 "70% 접종률은 감염 재생산지수 2를 포함했을 때 달성이 가능한 것으로 일단 판단을 한 것"이라며 전 국민의 70% 이상이 백신을 접종할 경우 코로나19 확산 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집단면역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날 영국 <가디언>이 공개한 기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또한 "오는 3분기 말까지 국민 70%를 대상으로 백신 예방 접종을 첫 번째 완료하는 것이 목표고, 가능하다고 믿는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목표치는 방역 당국은 물론 전 국민이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도달 가능한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대상자의 50% 이상이 백신 접종을 마쳤는데도 지속적으로 3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 중이다. 백신 접종 이후에도 안심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강력한 방역 대책이 수반돼야 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백신 접종을 앞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 몇 달간 백신 접종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조장하는 세력이다. 1년 전 '우한 폐렴' 표현을 고집하고 '중국 봉쇄'를 주장하던 이들의 기세는 아직 꺾이지 않았고, 백신의 정치화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야말로 정부와 방역 당국, 국민 전체가 힘을 쏟고 있는 코로나19 집단 면역으로 가는 길의 훼방꾼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