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코노미스트의 말에 의하면 주식투자는 물 위에 떠 있는 게임이라고 한다. 물 위에 잘만 떠 있으면 언젠간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런데 대부분이 더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내다 무리하여 중간에 빠진다고. 무리하지 않는데 나의 처절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기자말] |
"다시는 안 해!"
주식 시장에서 한 번 데고 나면 으레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뒤따라 나오는 말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다시는 안 하는 상황은 쉽게 오지 않는다.
"... 본전만 찾으면..."
주식 시장의 영향력 안에 한 번이라도 발을 들인 사람은 그 강렬한 중력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마치 행성을 떠나지 못하는 위성 마냥 주위를 맴돌게 된다. 하락기에 쓴맛을 보고 상승기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다, 절정기에 뛰어드는 이 과정은 무한궤도와 같다.
떨칠 수 없는 '본전' 생각
손실이 나면 으레 드는 생각이 본전 생각이다. '오를 것 같다'는 나의 느낌을 근거로 '내일 오른다'는 계획을 세웠건만 손실이 나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계획엔 없었지만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차선책인 '물타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물타기'가 거듭될수록 저 높이 있던 수익에 대한 바람은 사라지고 본전만이라도 챙기자는 간절함이 커진다. 본전을 참 애타게도 불러 댔다.
본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객관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상당히 강한 어조로 확언할 수 있다. 우선 본전을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아직도 부족하다는 반증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잃어서 본전을 생각하고 있는 판국에, 앞으로는 딸 수 있을 거란 믿음은 대부분은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내 몸 구석구석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자꾸 샘솟는다. 나도 희망적으로 보고 싶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수차례 겪고 보니, 어느 순간 더 이상은 부정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본전을 찾는 사람들에겐 두 가지가 없을 확률이 높다. 첫째로 원하는 수익률과 감당할 손실률이 없을 가능성이다. 수익과 손실의 구간, 혹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어느 정도 산정한 상태라면 본전을 기다리지 않는다. 수익이든 손실이든 확정을 지을 뿐이다. 애초에 '본전치기'란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 본전 치기 하려고 주식 시작했어!"라는 사람을 아직까진 본 적이 없다.
두 번째로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다. 사실 이건 가능성이라기보단 팩트로 보는 게 맞다. 여유롭기 힘들다. 손실의 빈 자리 덕분인지 몸과 마음이 하염없이 나부낀다. 집중하기도 힘들고 진득하기도 힘들다. 천재일우로 어쩌다 본전이 돌아오고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비록 개미이지만 마음만은 베짱이일 필요가 있는데, 주식하면서 여유를 갖는다는 건, 세상 어려운 오만가지 중 단연 으뜸에 든다.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손실이 나면 아깝다. 개인마다 그 기준이 달라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나의 신경을 긁고 있다면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다는 신호다. 이럴 땐, 공부를 더해 믿음을 쌓든 비중을 줄여 부담을 덜든 어떤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이런 조치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한 방'의 유혹이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아 넌지시 말을 거니까.
본전 심리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한 방 심리다. 보통은 이것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투자금의 크기만큼 여유를 사라지게 하고, 한 방을 향한 시도로 인해 한 방에 가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본전을 향한 발악, '한 방'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로 촉발된 전장(전자장비) 테마. 이것으로 대선 테마주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받고 싶었다. 무척이나 조급했으며 성급했다. 연일 상한가를 찍는 OO전자를 바닥에서부터 4배가 넘게 오른 상황에서 샀다. 딱 10%. 10%가 목표였다. 잊히지 않는 2017년 4월 4일의 일이다. 그동안 수백 %가 올랐기에 소박하게(?) 10%만 더 올라 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10%. 혹 떼려다가 혹을 되려 붙였다.
당시, 진짜 문제는 100만 원의 추가 손실이 아니었다. 800만 원을 잃은 후, 100만 원은 적게 느껴지는 심리와 속은 쓰렸지만 뭔가 내성이 생겨 버린 나의 상태가 진짜 문제였다. 걱정이 되면서도 또 다른 한 방이 있을 거라는, 이렇게 잃으면 이렇게 딸 수도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위로를 했다는 게 소름 끼치는 사실이다.
코로 들어가는 밥도 애써 웃으며 삼킬 수 있는 멘탈을 장착하게 된 그 날 이후, 커지는 손실을 단번에 만회하려는 수많은 한 방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뻗는 한 방 한 방은 미약하기 그지없었고, 크게 휘두르는 바람에 활짝 열린 가드 사이로 수많은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잽 한 방도 버티지 못해 걸핏하면 녹다운되고 마는 상황이 됐다. 갈수록 커지는 두려움에 스스로 흰 수건을 집어 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그 한 방의 구렁텅이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널브러져 있었을 거라 확신해도 될 듯하다.
한 번의 성공으로 인생이 뒤바뀔 것 같은 상상을 하곤 한다. 이번 한 번만 제대로 하면 뭔가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은 느낌. 주식 시장에 발을 담그고 이것저것 보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상상이다. 그런데 과연, 한 번의 성공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한 방을 꿈꾸며 원대한 계획을 세우던 수많은 영화 주인공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이번 한 번만 크게 한 건 하면...."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본다. 좋게 끝나는 영화가 있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