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수술실CCTV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권대희 사건'이 검찰송치가 된 뒤 국회를 통해 수술실CCTV 설치요구를 해온 지 2년 만에 느낀 가장 뜨거운 관심입니다. 법안은 여전히 국회 첫 문턱인 제1법안소위원회에 걸려 있지만, 분위기는 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가장 다른 건 '언론'이지요. 여러 언론이 나서 연일 수술실CCTV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고작 한두 곳이 어쩌다 기사를 내는 정도였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놀라울 만큼 달라진 상황을 느끼게 됩니다.
주변에서 수술실CCTV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많이 늘었습니다. 처음엔 수술실CCTV라고 하면 다들 당연히 설치된 게 아니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왜 법이 필요한지부터 법이 없어 생기는 문제들을 하나씩 설명하다 보면 당혹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죠. 세상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경기도, 수술실 CCTV의 효과를 보여주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수술실CCTV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관련된 조사부터 발생할 수 있는 갈등까지 경기도가 선제적으로 방안들을 제시하면서, 국회에서 법이 논의될 근거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만약 경기도가 여론조사도, 의료원 시행도, 민간병원 공모도 하지 않았다면 수술실CCTV는 여전히 구호로만 남았을 겁니다.
경기도의 사례를 통해 수술실CCTV가 실보다는 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증명됐지요. 일부에서 주장했던 부작용, 무분별한 열람 요청으로 병원이 혼란을 겪을 거란 주장도 기우로 판명됐습니다. 경기도 6개 의료원에서 CCTV를 열람 요청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즉, 의료범죄 등 특수한 사례에서만 CCTV를 요구했다는 겁니다.
만족도도 크게 높았습니다. 지난 2020년 말, 경기도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경기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95% 신뢰수준, ±2.19%p)에서 수술실CCTV 정책 만족도는 92.1%로 도내 모든 정책 중 2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수술실CCTV 확대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경기도가 수술실CCTV 설치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는데, 단 2개 병원만이 공모에 참여했습니다. 그마저도 1곳은 수술실CCTV만 설치해 놓고 단 한 번도 촬영을 못 했다고 합니다. 환자가 원해도 담당 의사가 반대하면 찍을 수 없는 법 때문이었다지요. 국회의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의 입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만나다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다시 한번 통과되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단 한 번 논의 없이 폐기됐지만, 여당이 180석을 차지했으니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통과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CCTV를 수술실 안이 아니라 입구에 설치하는 방안으로 완화해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였습니다. 2월 18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에서는 입구 CCTV 설치에 대해 의원 간 의견 일치가 있었고, 보건복지부 또한 입구 설치를 중재안으로 내놓았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수술실 내 범죄와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하자는 것인데 수술실 입구에 설치한다니요. 이에 어머님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김민석 의원에게 연락을 넣으셨습니다. 전에 잠시 만나 뵌 적도 있었고, 위원장이란 중책을 맡으신 분께서 책임 있는 발언을 해주길 기대한 겁니다. 연락이 쉽게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어머니께선 1인시위를 시작하셨습니다.
2월 26일 금요일, 1인시위 나흘째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던 어머니께 김 위원장이 드디어 연락을 주셨습니다. 본 회의 중 잠시 시간이 났다며 지금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에서 만나 수술실 CCTV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셨죠. 그렇게 김민석 의원과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김 의원은 본인도 수술실 CCTV 필요성에 적극 공감한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더라도 특정 법안에 대한 투표권은 다른 국회의원들과 동일하게 한 표라며, 법안 통과에 대한 어려움을 표하셨죠.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서 수술실CCTV법이 필요한 이유를 계속해서 설득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단독 처리가 가능한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데,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김 의원은 여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설치 장소, 설치비용, 병원 진료과목별로 상이한 수술환경 등을 둘러싼 의견이 다양해서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다 하셨죠. 입법을 단독으로 강행했을 때 국민의힘에서 보일 태도도 우려가 된다고 하며 설득이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와 어머니는 저희대로 수술실 내 CCTV설치가 필요한 이유를 말씀해드렸고요. 특히 수술실 입구에 CCTV를 달자는 방안에 대한 환자 유족들과 국민들의 반대가 크다고 했습니다.
마취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의료인 범죄, 일탈 행위를 막는 것이 법안 취지인데 수술실 바깥에 CCTV를 달면 환자가 보호받을 길이 없다고 했죠. 김민석 의원님은 잘 참고하겠다고 하시며, 몇 차례 연속해 통과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술실 '안에' CCTV를 설치하는 법안을 이번 3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 시켜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면담을 마쳤습니다. 국회와 더불어민주당에 드리는 당부의 편지를 전달하면서 말이죠.
김민석 상임위원장님, 김성주 간사님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수술실에서 벌어진 의사들의 범죄로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국민입니다.
의원님들께 민주주의를 묻고 싶습니다
국민 90%가 찬성하는 수술실 CCTV법이 국회에서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우리 사회에서 다른 의견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대 국회 때부터 다른 의견이 있었고 수년째 진지한 토론이 꽤 많이 있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합의의 부재로 제도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를 기본 법칙으로 한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헌법에는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의사결정 원리가 반복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선거도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됩니다. 그런데 국민의 90%가 찬성하는 법안이 국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국회에서 반대 의견이 있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매체는 국회에서 CCTV 설치 의무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중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을 합의 처리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CCTV 설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국민의 생명은 입법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언론이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은 남습니다. 다수결의 원리로 구성되고 그 원리를 가장 잘 활용할 수도 있는 21대 국회가, 다수결의 원리를 무시하는 기록을 남기지 않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랍니다.